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삼삼 Apr 07. 2023

책 정리와 노후 대책의 상관 관계

feat.김연수 작가

 "어휴. 이제 진짜 책 넣을 데가 없다. 팔든지 기부하든지 해야지."


 편이 책장에다 책을 힘겹게 꽂으며 말했다.


 "응? 그런가?"


 몰랐다는 딴청 피우다가 곁눈질로 책장을 봤다. 확실히 빽빽하고 비좁다. 책상이며, 거실 탁자며, 침머리맡이며 온갖 곳에 을 널브러뜨렸지만, 책장은 여전히 포화상태다. 심지어 침대 아래 책을 수납했건만, 책들이 머물 공간은 턱없이 부족보였다.


 "책은 안 많은데 수납 공간이 좁서 그래."


 "뭐? 책장을 사자고?"


 "아니, 꼭 그런 건 아닌데.  책장 높이만 높고 가로는 좁잖아. 런 거 말고 촘촘하게 책 많이 들어가는 책장 있으면  것 같 해."


 "그러니까 새 책장을 들이자는 , 지금?"


 남편의 눈썹이 꿈틀린다. 책장 소리 한 번만 더 다간 책들을 홀랑 팔아버릴 기세다.


 "아? 내가 책들 정리할 거 걱정 말 한 건데?"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걱정 내가 하고 있었다. 책장 정리 어떻게 할지가 걱정되는 게 아니고, 어제 주문한 책들킬까봐 걱정다. 간밤에 남편 몰래 책 18권을 주문했는데, 그 택배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오해는 마시길. 죄다 중고책이어서 18권 사는데 배송비까지 포함 2만 3천 원 들었다. 훗) 그러나 내가 산 게 신간이든 중고책이든 이 사실을 남편이 알게 된다면, 분서갱유일어고도 남을 판이었다.


 래서 그 날부터 틀간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책 택배를 목놓아 기다렸다. 동시에 남편 퇴근 시간 '저녁식사를 대령해놓겠다'는 명분 하에 틈틈이 체크했다.  예상 도착 시간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 택배는 자로 나뉘어 발송됐는데, 다행히  모두 들키지 않고 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이스 타이밍.


  하지만 다고 안심  없었다. 남편에게 들키지 않 치밀하게 숨는 게 최종 목니까.  책들을 이곳 저곳에,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존재인 것마냥 전략적으로 배치했다. 주로 슷한 부류의 책들 사이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워 넣었. 빛바랜 중고책이라 그런화감 없이 다른 책들과 잘 어우러졌다. 지, 양이 좀 늘어나면서 자칫하면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다행히도 퇴근한 남편은 모르는 눈치였다.  "무슨 이런 오래된 책을 읽고 있어?"라는 간담 서늘한 한 마디를 투척하고 지나가긴 했지만, 미션 성공이었다.


 실 나의 은닉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자책을 읽는 남편에게, 나는 늘 종이책 폭탄 사태를 일으키는 요주의 인이어서, 남편의 눈을 피해 책을 사수하려면 은닉을 시도할 수밖에 없. 어느 날은 남편이 직접 큰 종이 상자 3개를 가져오고선, 그 안에 책들을 몽땅 집어넣은 적도 있었다. 선전 포고도 않 적군의 선제 공격 난 버럭 화를 냈만, 남편  행세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 생기는 도서관에 우리 안 읽는 것 좀 기부하는 거야. 도서관이 기부해달라고 공지 띄웠는데, 아직도 많이 부족한가봐. 우리 도와주면 좋을 것 같아."


 그렇게 숨기고, 적발 서 내쳐지고, 또 숨기기를 반복하 어제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을 읽다가 예상치 못하게 중대한 대목을 만다. 책장 정리에 대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게 만든 대목이었다.


 "내 서가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한 부분은 읽은 소설, 또 한 부분은 읽은 비소설, 나머지는 읽지 않은 책들이다. 읽은 책들은 내가 보기에 좋은 순서대로 꽂는다. 그러니까 제일 좋은 책이 맨 앞에 있고, 뒤를 이어서 그 다음 좋은 순서대로 책들이 쭉 꽂힌다. 물론 판단은 주관적이다. 그렇게 해서 평생에 걸쳐서 소설 365권과 비소설 365권을 선정한 뒤 일흔살이 지나면 매일 한 권의 소설과 한 권의 비소설을 읽으면서 지내고 싶다. 그러니 내 노후대책이라면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730권의 책을 마련하는 것이랄까."


 니. 이런 멋진 노후대책이라니. 그것도 겨운 장 정리 재밌게 해가면서 준비할 수 있는 노후대책니. 신박한 발상이었다. 원래 내 책장의 정리 기준은 '분야별'로 묶어서 보관하는 것이었는데 (카오스에도 나름 질서는 있었다), 그러다보니 읽은 책과 안 읽은 책이 뒤섞이고 내 선호도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그 분야에 관심이 안 가면 아예 그쪽 책들에 손이 가지 않는 역효과 생겼다.


 그런데 그의 조언대로 읽은 것과 안 읽은 것, 소설과 비소설, 그리고 나의 선호도라는 세 가지의 기준으로 교차해서 정리한다면, 내가 어떤 책을 가장 좋아하는지, 어떤 책을 사놓고 안 읽었는지, 그리고 당장 내다팔아도 안 아까운 책이 뭔지를 한눈에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책장에 꽂으면서 '이 책은 내 몇 번째 인생책이지?'하며 순위를 매기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았다. 난 책장 정리하며 재미를 느끼고, 남편은 그런 날 보며 개과천선했다고 여기고. 일석이조의 솔로몬 해법이었다.  


 당장 이번 주말부터 실행에 옮겨겠노라 다짐했다. 단, 지금은 널브러진 책들이 많아 감당이 안 되므로 천천히, 책으로 밸런스 게임을 한다는 마음으로 정리해볼 생각이다. 그렇게 조금씩 내 책의 선호도를 구분짓다보면, 지금의 책장, 그리고 앞으로의 책장 배열이 얼마나 바뀔지도 알 수 있겠지?


 내침김에 매해 일정한 시점마다 사진을 찍어서 비교봐도 좋겠다 싶었다. 어떤 해는 "1년간 읽은 책들이 이렇게나 없었어?" 라며 스스로를 타박하고, 어떤 해는 "내가 이렇게나 많이 읽다니"라며 대견해하기도 할테지. "내가 이런 책을 맨 앞에 뒀었다고?", "왜 이책이 맨 뒤에 있어?" 라며 과거의 형편없는 안목에 쥐구멍에 숨고 싶기도 할 것이다. 안 봐도 눈에 선한 재미들이다.  정리를 귀찮아 하던 내가 책 한 권 읽고 정리하고 싶어 몸이 근질 근질하다니. 역시 인생 책도, 오래 살고 볼 일이다.





 

 * 책 참고 :  「소설가의 일」, 김연수, 문학동네, 2014/11/05.


 * 대문 사진 : 우리집 책장 아니고 중고 책방. 언젠가 나도 잘 정리된 책장 사진을 공유하는 게 소소한 꿈이다. 이뤄질 수 있겠지? 

 





이전 06화 종이책과 전자책, 둘 다 필요한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