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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삼삼 Apr 02. 2023

종이책과 전자책, 둘 다 필요한 이유

 종이책과 전자책 중에 어떤 걸 더 좋아하시나요? 저는 원래 아날로그형 인간 이책을 훨씬 더 좋아했는데요. 즘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받는다이렇게 답할 것 같아요. "쪼꼬미 아들이 깨어 있을 땐 종이책이 더 좋고요. 아들이 잠들어 있을 땐 전자책이 더 좋니다"라고요.


  종이책을 좋아해온 이유는 단순합니다. 책을 어디까지 읽었는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데다, 책을 다 읽고 탁 덮을 때 세상 홀가분한 기분이 거든. 게다가 마음 내키는 대로 책 모퉁이에 표시할 수 있는 것도 제겐 매력 포인트였습니다. 다이어리를 꾸미는 걸 '다꾸'라고 한다면 '책꾸'라고 해야 할까요. 책 읽다 떠오른 단상을 적기도 하고, 중요한 곳에는 밑줄도 치는데 이왕이면 예쁘게 표시하고 싶더군요.


 그래서 여러 색 조합의 인덱스를 구비해두고, 각각의 책을 읽을 때마다 책표지와 비슷한 톤의 인덱스를 붙이곤 했습니다. 밑줄을 그을 땐 가급적 샤프나 연필로 자를 대서 그었어요. 남에게 보여주기 머쓱한 단상을 적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샤프로 책 모퉁이에 쓰거나 볼펜으로 쓸 땐 투명 포스트잇 위에다 썼어요. 그래야 나중에 책을 기부하거나 중고서점에라도 되팔 때 제 기록을 지우기 수월했거든요.  


 

 성동혁 시인의 산문집 <뉘앙스>의 공감되는 문장에 밑줄 친 사진. by 아삼삼


 이렇게 표시를 해둔 책들은, 나중에 읽으면 마치 과거의 제가 미래의 제게 보내는 선물 같기도 했습니다. 미래의 전 보통 그 책을 읽었는지조차 기억이 안날 정도로 유난한 기억력을 가졌는데, 과거의 저는 그 책을 읽었을 때의 기분과 생각까지 정리해서 알려주더군요. 물론 그렇다고 들을 다시 펼쳐볼 때마다 그런 친절함만 느끼는 건 아니었습니다. '별표에 밑줄 쫙'을 남발한 대목을 읽다보면 '응? 대체 왜?' 할 때도 많습니다. 심지어는 왜 샀는지도 모르겠는 책에다 물개박수치며 감탄한 저를 발견할 땐 손발이 오그라 들더라고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데 그렇다고 제가 숨을 순 없으니, 제의 장본인 잡아다가(?) 책장 깊숙한 곳에다가 숨겨뒀지요.

 어느 날은 이런 적도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책장을 훑어보는데, 똑같은 시집 두 권이 나란히 꽂혀 있었어요. 이것도 종이책 애정의 흔적인가, 싶었지만 그냥 기억력이 나빠 산 책 또 산 걸 인정했습니다. 여전한 저의 기억력과 함께, 똑같은 시집을 두 번이나 집을 정도의 확고한 취향을, 종이책을 애정한 제 또다른 취향 덕분에 새삼 깨달았던 순간이었죠.  

 이렇게 종이책을 좋아하던 저는 요즘 전자책도 애용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밤에 쪼꼬미 아들이 잘 때 책장 넘기는 소리 없이, 별도의 조명도 없이 조용히 책을 볼 수 있거든요. 쪼꼬미 아들은 제 숨소리 하나, 발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는 소머즈 귀를 갖고 있습니다. 아들이 잠들면 제가 자동으로 좀도둑 모드로 전환돼야 하는 이유지요. 남의 집에 들어와 까치발로 조심조심 돌아다녀야 하는 좀도둑으로선, 종이 책장을 넘기는 천하태평 소리를 낸다는 건 언감생심입니다. (이미 책장을 넘기다가, 심기 불편한 집주인의 단잠을 깨워 혼쭐 난 전력이 여러 번 있었거든요. 쿨럭.)


 이렇게 좀도둑 같은 제 전자책은 늘 든든한 공범 같았습니다. 책장 넘기는 소리는 무음에 가깝고, 빛은 빛대로 밝기를 조절할 수 있어서 집주인에게 들키지 않고 탐독이 가능했거든. 그리고 책은 재밌어 보이는데, 막상 사면 돈 아까울까봐 걱정되는 책들을 전자도서관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습니다. 어디 멀리 갈 때 그 전자책 하나만 있으면 내키는 대로 이 책 저 책 볼 수 있는 것도 마음 든든하더라고. 

 는 전자책을 읽을 때 주로 전자책 리더기를 쓰는데요. 리더기의 단점이 있다면 액정이 주 약한 '설탕 액정'이라, 신줏단지 모시듯 봐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자책으로 볼 수 없는 책들도 꽤 있. 옛날 책들과 학술, 연구서적 같은 인기 없는 책들이요. (타깝게도 제가 종종 보고 싶어하는 책들이기도 합니다.) 특히 시집은 최신 작품이라 하더라도 전자책으로 아예 구매할 수도, 빌려볼 수도 없는 것 같라고요. 제가 검색을 못해서 못 찾은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시집만큼은 아날로그로 읽으라는 출판업계의 깊은 뜻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뭐, 종이책이 됐든 전자책이 됐든 어떻습니까. 읽고 싶은 글이 있다는 게 더 중요하지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집 곳곳에 종이책을 놓아두고(실은 던져두고) 전자책 리더기도 미리 잭을 꽂아 충전해두고 있습니다. 행복한 육아를 하면서도 호시탐탐 육퇴를 노리는 제게, 책은 언제든 다른 세상으로 뿅 이동시켜주 아이템이거든요.





* 사진 참고 : 깨끗한 첫눈 같은 글을 읽고 싶어서 올해 첫 책으로 골랐던 성동혁 시인의 산문집 <뉘앙스>의 한 구절. "당신이 어떠한 책을 만나길 진심으로 바라요. 그리고 그 책이 부디 당신의 표정에 작은 균열을 내고 잠자고 있던 감각과 감정을 깨우길 바라요. 그렇게 책과 우정을 쌓길 바라요."


- <뉘앙스>, 성동혁, 수오서재, 20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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