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직업 특성상 일을 할 때 여러 종류의 글을 읽습니다. 기사, 사설, 칼럼, 보도자료를 포함한 각종 참고 자료, 그리고 업무(=취재)와 관련이 있다는 전제 하에 책과 논문도 살펴보죠. 아침에 출근하면서는 주요 조간 신문들을 사설까지 훑어보고, 퇴근을 전후해선 주요 방송사의 메인뉴스를 찾아봅니다. 신문을 볼 땐 모든 기사를 정독하진 못하지만 적어도 제가 맡은 분야의 기사는 꼼꼼히 확인하려 합니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제가 취재차 발품팔아 찾아내야 하는 자료 외에도, 틈틈이 다른 언론사의 기사들을 읽습니다. 혹시 제가 놓친 팩트가 있다면, 추가 업무(=팩트 확인 취재)를 곧바로 해치우기 위해서입니다. 하루 일과가 글 읽기로 시작해서 글 읽기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상이죠.
그런 일상을 10년 넘게 반복하며 살다 보니, 이젠 이런 루틴도 익숙해졌습니다. '그럼 퇴근 후에는 글을 쳐다보기도 싫겠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딱히 그렇진 않습니다. 외견상 똑같은 글일지언정 업무와 무관한 글을 읽는 건 오히려 제겐 휴식과 같더군요. 퇴근 후에 기사와 관련한 텍스트를 붙들고 있다면 그건 업무이겠지만, 기사와 전혀 관련 없는 텍스트를 보고 있다면 그건 격하게 쉬고 있다는 방증이 되죠.
시든 소설이든 에세이든, 글은 퇴근 후 녹초가 된 저를 쉬게 해줍니다. 그저 업무와 관련이 없고, 좀 재밌어야 한다는 필요 조건만 충족하면요. 저는 그런 글 몇 편만으로도 금세 다른 세상으로 순간이동해서, 퍽퍽한 업무의 잔상을 털어내곤 합니다. 일단 읽었다 하면 글의 매력에 퐁 빠져드는 '금사빠'인 셈이죠. 그래서 제게, 업무와 무관한 데다 재밌기까지 한 글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독서, 그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퇴근 무렵 유독 피곤이 몰려오는 일상 속 도피처이자, 재미를 갈구하는 제게 찐 위로를 전하는 휴식법이니까요.
제가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 서점에 가는 이유도 똑같습니다. 바로 이 휴식법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서점에 일단 들어서면 업무 관련 분야는 그저 어떤 신간이 나왔는지만 살짝 훑어보고, 곧바로 다른 코너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그러면 자칫 '저 책 내용도 내가 알아야 하는데'라는 강박과 스트레스가 뒤엉켜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머리를 비우려고 새로운 글을 찾아 서점에 갈 때면, 여러 코너 중에서 딱 두 코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합니다. 평소에 관심 있던 분야나, 아니면 전혀 관심 없던 분야의 코너에서요.
평소에 관심 있던 분야의 책을 고르는 건 제가 원래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하려는 취향의 숙성이고, 전혀 관심 없던 분야의 책을 집어드는 건 제가 모르던 걸 이제라도 한 번 알아보려는 지적 호기심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취향을 더 공고히 해주는 숙성의 기쁨이 더 크기도, 모르던 것을 깨우쳐주는 앎의 기쁨이 더 크기도 합니다. 이렇게 두 종류의 즐거움을 저울질하며 책을 고르다 보면, 신기하게도 안개낀 듯 답답했던 제 머릿 속이 훤히 보이는 기분이 듭니다. 제가 스스로 해답처럼 집어든 책을 통해서, 제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던 원인이 뭐였는지를 역으로 알게 되는 것이죠. 마치 의사의 진단 결과를 듣고 나서야, 내 몸 상태가 어떤지를 정확히 알게 되는 것처럼요.
어떨 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서점을 아무리 열심히 돌아봐도 딱히 눈에 들어오거나 사고 싶은 책이 안 보일 때요. 그럴 때는 스스로 평소 어떤 인물에게 관심이 있었는지를 잠시 떠올린 뒤, 그 인물의 평전이나 에세이를 찾아서 읽어봅니다. 국내외 정치인이나 사회 운동가, 위인, 경제인, 석학 같은 엘리트의 평전뿐 아니라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는 분들의 소소한 일상 에세이를요. 그렇게 평소 궁금했던 인물의 일생 혹은 일상이 담긴 책을 보면, 적어도 나중에 후회할 일은 없더라고요. 알고 싶던 인물에 대한 궁금증도 해소하고, 그의 삶을 간접 체험해볼 수도 있으니까요.
울리히 슈나벨이라는 독일 기자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휴식은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가장 깊숙한 내면과 만나는 시간"이라고요. 휴식이 그저 드러눕고 쉬기만 하는 수동적 의미만 갖는 게 아니라, 자기 내면과 소통하는 동적이고, 능동적인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지요. 이 문장도 물론 공감되지만, 저는 '휴식'이라는 주어를 '독서'라고 바꿔봐도 퍽 맞는 말처럼 들립니다. "독서는 자기 자신과 대화하며 깊숙한 내면을 만나는 시간이다." 어떠신가요. 여러분이 듣기에도, 독서의 또다른 이름이 휴식 같으신가요?
※ 참고 : 『휴식 (행복의 중심)』, 저자 울리히 슈나벨, 번역 김희상, 출판 걷는나무, 2011/6/20.
※ 사진 참고 : 지난해 제주에 여행 갔을 때 들렀던 독립책방 '소리소문'. 한적한 동네에 있는 서점이지만, 큐레이션은 전혀 한가롭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성인지감수성, 누리호, 차별금지법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엿보였던 곳이에요. 제주를 찾는, 책을 좋아하는 분들께 꼭 한 번쯤은 방문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