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유명 화가를 남편으로 뒀지만, 종국에는 그의 명성을 뛰어넘는 독보적 예술 세계를 구축한 아티스트. 세상을 뜨기 얼마 전,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반미 집회를 찾아 "양키 고홈"을 외쳤던 공산주의 활동가. 하굣길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버스의 철제 난간이 몸을 관통해 온몸이 으스러지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소녀. 유산으로 고통 받던 시기마저 자신의 여동생을 남편의 상간녀로 마주해야 했던 아내.
단 한 문장으로 삶을 요약하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더욱 빛나는 그녀는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입니다. 자화상으로 유명하지만, 실은 그녀가 그린 그림 중에 자화상은 3분의 1에 불과하죠. 그녀는 자신의 생일이 1910년 7월 7일 멕시코 혁명일이라고 주장해 온 민족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남녀 차별이 만연했던 20세기 초, 한 남편의 아내를 뛰어넘은 페미니스트이자 아티스트, 그리고 정치 활동가까지. 그야말로 불도저처럼 운명을 개척해온 인물이었죠.
그런 그녀가 1954년 7월 13일 47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8일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이 바로 이것입니다. 다양한 모양으로 제각각 잘려나간 수박들. 제목도, 그리고 수박 위에 쓴 글귀도 'Viva la vida (인생이여 만세)' 입니다. 생명의 빛이 꺼져갈 때 남긴 그림이 삶의 찬미라니. 삶을 관조하는 그녀의 너른 도량이, 범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지요.
프리다 칼로가 숨지기 8일 전에 그린 마지막 작품. Viva la vida (인생이여 만세). 프리다 칼로 사진전에서 촬영. 2023.3.21 by 아삼삼
그런데 왜 하필 수박 정물일까요? 그 부분이 궁금해서 여러 자료를 찾아봤는데 이런 해석들이 있더군요. 수박은 멕시코의 전통적인 행사인 죽은 자의 날 (Día de Muertos) 과 관련이 있다는 것과 탄생과 죽음의 순환을 수박의 동그란 원이 이를 상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 동안 수박은 종종 죽은 자와의 연결을 상징하거나, 죽은 사람이 먹는 것을 상징하는 데 쓰여왔다고 하네요.
이런 해석들도 물론 일리가 있었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봤습니다. 수박의 겉은 딱딱한데 속은 부드럽고 달콤하죠. 이렇게 깨어 먹든, 저렇게 깨어 먹든 결국 달콤하고 부드러운 건 똑같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 각자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많고 적은지를 떠나, 그리고 우리 각자의 고통이 얼마나 크고 작은지를 떠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자체는 모두 소중합니다. 소중한 것을 달콤한 것이라고 치환한다면, 시간, 즉 우리네 인생은 수박과 같은 것이 됩니다. 달콤한 인생이지요.
그렇게 본다면 그림 속 수박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시간이 됩니다. 누군가는 너무나 어린 아기여서 단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동그란 생명, 즉 완전체의 동그란 수박이고, 누군가는 고통 속에 절반의 시간이 툭 잘려나간 영혼이 되죠. 그리고 누군가는 죽음이 임박해 삶의 많은 부분을 잃은 존재, 즉 그림 맨 앞에 놓인 가장 작은 크기의 수박 조각이 됩니다. 그건 프리다 칼로이겠지요. 그녀가 실제로 가장 작게 잘려나간 수박의 과육 위에 '인생이여 만세'라고 적은 것도, 어쩌면 세상을 떠나기 8일 전의 시선으로 봐도 인생은 결국 달콤하더라는 역설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 참고 : 프리다 칼로 사진전.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르 클레지오 저자, 백선희 번역, 다빈치 출판. 2011년 12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