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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호레 Jun 26. 2024

잊지 않겠다는 말을 잊는 것

장엄함은 존재해


난 유난히 떠난 것에 대한 감정의 동요가 짙은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정이라 했고, 또 다른 이는 미련이라 했다. 나는 후자에 조금 더 가깝다 생각했다. 정이라고 하기엔 충분히 다정하지도, 따뜻하지도 않았기에.



떠난 이들은 남겨진 이들에게 잊지 않겠다 감히 말한다. 그럼 남겨진 이들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떠난 이들의 발끝이 다시 나를 향하길 기다린다. 잊지 않는다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며, 잊힌다는 건 무의식 속에 일어난다. 세간을 들썩이게 했던 유명인의 죽음, 여러 사연을 품고 평범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몇 번의 자연재해, 탑배우의 수차례에 거친 프로토콜의 투입. 더 큰 자극이 자극을 덮고 시간이 시간을 쌓아 잊히듯. 벌써 그렇게 시간이 흘렀구나라는 말과 함께 흘러가는 일 중 하나가 되는 일. 그게 미련이든, 정이든 가끔은 진득하게 마음속에 품어주는 일. 그런 마음의 공간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난밤 담담히 고민을 말하는 남편의 모습이 떠오른다. 10년 가까이 일했던 분야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느끼는 어려움, 책임감이 생각보다 더 힘들다는 것. 그의 목소리엔 피곤함이 가득했지만, 나는 이상한 벅참을 느꼈다. 지난 6년 간 수많은 그의 도전과 성공을 봐서일까. 지금 그의 고민이 그를 잠식시키는 게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 같았다. 내가 느끼는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었다. 내가 이루지 못하는 것들을 해내는 사람. 나는 휘몰아치는 불안함을 피해 눈과 귀를 막아버리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보고 하나씩 깨나 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내가 느끼는 감정은 대리만족에 가까웠으리라. 지난밤 그의 힘 빠진 눈빛에서 나는 아스라이 반짝임을 느꼈다.



다음날 아침, 또다시 전쟁터로 돌아간 남편의 빈자리를 보며 지난밤 더 꼭 안아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들었다. 안쓰러움과 고마움, 존경심 사이의 감정일까. 한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이었다. 그저 더 단단한 목소리로 멋지다 말해주지 아쉬움이 들뿐 이상하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내게 그런 사람인가 보다.



나는 오늘의 내 마음을 잊지 않겠노라 말하고 싶다. 당신은 나에게 빛나는 사람이라는 것. 우리에게 수많은 고난이 찾아와도, 이 말을 잊지 않겠다는 말을 잊지 않으리. 미련이 습관인 내가 감히 다짐해 본다.



몇 해의 계절, 몇 번의 이사, 수 천 시간을 지나 6개의 도를 꽉 채운 초본을 완성한 나는 전국에 미련의 흔적들을 남기고 왔다. 난 그저 ‘끝’이라는 단어에서 주는 냉정함을 견디지 못하는, 영원한 것에는 소원해지는 간사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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