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것들
어느 주말이었다. 가능할 만큼 가장 멀리 미루고 싶었던 일들을 해야 하는 날이다. 오늘이 아니면 어느날 갑자기 눈덩이처럼 불어나 배가 되어 나를 덮칠 것이 분명했다. 가장 먼저 눈앞에 보이는 건 아슬아슬하게 쌓인 스티로폼 탑. 마켓컬리를 즐겨 시키는 나는 냉동, 냉장에 따라 커다란 스티로폼 상자에 공기를 가득 담아 주는 정성 덕분에 손쉽게 하얀 탑을 쌓을 수 있었다. 이 거대한 탑은 외출을 하거나 집으로 들어올 때 나에게 늘 알 수 없는 죄책감을 주곤 했는데, 하루에 최소 2번 불편한 감정을 느껴야 했던 나는 마침내 이 탑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했다.
개운했다. 스티로폼을 치우기만 했을 뿐인데 집이 1평은 넓어진 것 같았다. 다음은 타깃은 화장실 청소였다. 본가에 갈 때마다 아빠의 혀를 끌끌 차게 만드는 나의 머리카락은 샤워 한 번에도 배수구 위에 가득 쌓이곤 했다. 매일매일 버려주면 참 좋을 텐데 나는 배수구를 향해 허리 숙이는 일을 가장 힘겨워했다. 하지만 화장실 청소는 자주 나의 우선순위에 들곤 했는데, 청소 후 깨끗한 거울에 비친 날 바라보고 있으면 꽤나 정돈된 삶을 사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게 포인트였다. 정돈된 삶.
자주 괴로웠다. 세상에 비해 너무 왜소한 나 때문이었다. 원래 사회생활은 그런 거야.라고 말하는 것에 깊은 박탈감을 느끼면서도 순응하는 방법을 택하곤 했다. 회피에 가까웠다. 내가 배울 사람들은 유별난 사람,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들이었다. 왜 굳이 일을 저렇게 크게 만들까, 힘들게 할까 했던 사람들이 무언가를 이뤄내고 있었다. ‘굳이’가 세상을 바꾸고 있었던 것이다. 무언가에 불만을 느끼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열심히 해왔던 자들이라는 걸 이제 깨달았다.
자주 베이고 가끔 완전했던 생채기 난 삶 가운데에서 어느 상처부터 연고를 발라줘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정성스레 쌓인 모래성 위에 자주 소나기를 만났다. 힘이 빠진 손으로 다시 모래를 모으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할 일을 잃어버리는 일을 반복하던 터였다. 거창하고 어려운 건 나를 더 낙담하게 만들었고,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중에 우습게도 화장실 청소가 큰 자리를 차지했다. 나 스스로를 대접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깨끗한 거울에 비친 나를 볼 수 있게 하는 일은.
정돈된 삶에 기여하는 또 다른 일이 있었다. 일기였다. 만 3년간 이어지고 있는 이 행위는 어느 초등학생의 일기와 다르지 않은 코로나 초반 확진자의 동선 같은 일기의 내용이지만, 채워지는 일기장의 모양이 좋았다. 1년이 지나 처음의 모습보다 퉁퉁하고 지저분해진 일기장은 나의 찰나의 감정들을 품고 가득 부풀어있었다.
몇 주 전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었다. 오랜만에 처음 2페이지를 읽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책을 만났다. 저자인 문유석 판사는 고백과 같은 자조적인 문장을 첫 프롤로그에 실었다. 114 상담사가 “사랑합니다, 고객님” 하자 “왜요?”라고 되물었던 그. 혐오에 가까운 인간에 대한 본인의 가치관을 법관이라는 본인의 직업과의 적합성에 의문을 품었던 사람. 어쩌면 가장 숨기고 싶은 일을 가장 첫 페이지에 담아내는 그의 대담함과 솔직함에 반했다. 그는 본인 스스로를 이기적이고 무심하고 영악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거울 뉴런의 작용, 옥시토신 호르몬의 분비 등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말하는 모습에서,
지하주차장에서 힘겹게 공부하는 젊은이가 부잣집 사모님 앞에서 무릎 꿇고 고개 숙이는 모습에 분노하는 모습에서,
한남대교 옆 ‘실종된 송혜의를 좀 찾아주세요’ 현수막에 출처 없는 책임감을 느끼는 모습에서 사람 냄새를 가득히 풍겼다.
내가 저자를 생각하는 게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과 닮아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착하지 않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했지만 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소리를 내는 사람이었다. 유난스럽지 않게 사람을 챙기고 지나치게 상처받지 않았다. 그런 그가 좋다. 내가 해내지 못하는 일들을 해내는 그에게 존경의 모양을 띤 사랑으로 대리만족을 느끼곤 했다. 친한 동료에서 빌려서 읽는 책이었지만, 두장을 읽고 결심했다. 이 책은 사야겠다. 그리고 두고두고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름의 밤은 더디게 찾아온다. 따뜻한 밤이 찾아왔음에 익숙해질 찰나 서늘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친다. 그렇게 또 여름이 간다.
크게 애쓰지 않아도 시간은 흐르고, 행복과 불행 모두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이른 겨울 땅에 닿은 눈처럼 찰나의 순간이라는 걸 이제 알겠다.
요새 나의 5년 후, 10년 후 모습을 자주 그려보곤 한다. 나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평온한 자유를 꿈꾼다. 수고스럽지만 나를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일들에 소속되어 기꺼이 내 인생을 내어주는 일. 그게 내가 정의하는 자유다. 아침 7시면 울리는 모닝콜로부터, 화장실을 다녀오면 내 자리 앞에 앉아있는 민원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우연히 튼 유튜브 선곡플레이리스트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이 연이어 나오는 일. 창문을 열면 고요한 세상에 한가운데, 집중한 순간 울려 퍼지는 새소리.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낼 것이다.
완전한 여름이 왔다. 이번 주말에도 화장실 청소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