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득히
작은 동거인을 만난 후 삶이 변했다는 말이 부족하다 여겨질 만큼 엄청난 변화가 우리를 덮쳤다.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단 말은 지금을 위한 말일까.
나의 몸과 생각, 관심사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계획이 너로 인해 변할 것이란 걸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익숙했던 모든 계절도 너를 만난 이후 모두 처음이 되었다. 모든 것들이 익숙한 듯 낯설었다. 첫눈, 첫 벚꽃, 첫 바다. 너의 모든 처음에 우리가 있었다.
너는 나의 천사가 아닌 천국이었다.
나에게 어떠한 존재가 되었다긴 보단 그저 나를 그곳으로 데려다주었다.
그곳은 따스하고 보드라웠다가 가끔은 몽글함이 차오르기도 하는 곳이었다. 대게는 평생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5분짜리 유튜브 영상도 진득하게 보지 못하는 내가 너는 흐르는 눈물모양 따라 날리는 속눈썹의 흐름 따라 유심히도 본다. 오늘 너의 기분이 어떤지 뭐가 불편한지 뭘 하고 싶은지 그리도 궁금해한다.
지난봄 오랜 친구가 아기를 보러 먼 길을 와주었다. 임출산을 핑계로 만남의 텀이 꽤나 길었기에 우리는 서로의 공백을 채워나가기 바빴다.
- 육아휴직하니 어때? 아기 키우는 거 힘들지?
걱정스레 묻는 그녀의 말에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다 덤덤히 말을 이었다.
- 일 하는 것도 꽤 힘들었던 거 같은데.. 아기 키우는 건 그냥 ’귀한‘ 일인 것 같아. 회사에서 난 수백 명의 대리 중 한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이 아이는 나뿐이야. 내가 없으면 큰일 나.
말을 내뱉고 나니 내가 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우쭐해졌다.
세상 밖의 내 직업은 직급과 연봉에 따라 가치가 매겨지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그에 따른 직급도 보수도 없었다. 그저 엄마라는 이름 아래 매어진 무거운 책임감뿐. 눈에 보이는 숫자의 크기에 익숙한 우리는 가끔 이 직업의 귀함을 소홀하게 되는 것 같다.
그 덕에 아이의 시간은 재깍재깍 흐르는데 나의 시간은 어딘가 머물러 있는 느낌을 받곤 했다.
멈춰진 시간 속에 가끔은 외롭고, 또 가끔은 펑펑 울고 싶은 순간이 닥치더라도 서로에게 끝없이 사랑을 표하는 지금이 아이와 나의 가장 찬란하고 충만한 순간임을 안다.
아이의 투정에 힘든 하루를 보내다가도 내가 잊어버리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면 순간을 고이고이 그려 주머니 가장 깊은 곳에 담아두고 싶을 만큼 소중해지기도 하는 요즘.
그렇게 나의 31살에 네가 그리도 깊숙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