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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몬 Dec 07. 2023

요리 배틀: 당신의 전략은?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였다. 우리 가족은 보통 명절 때 놀러 가는데, 이런저런 제약이 따랐다. 그래서 부모님 집에 모여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식구들이 모이게 되면, 엄마가 대부분의 식사를 준비하게 된다는 점. 아빠는 청소나 빨래는 열심히 하는 분이지만, 요리는 구황작물(옥수수-최애, 고구마-차애)을 익히는 것 외엔 하지 않고, 나나 동생들도 엄마를 도울 뿐, 집에서 나서서 요리를 하진 않게 되니까. 당시는 코로나로 인해 외식도 좀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궁리를 하다 "가족들 요리 대회"를 제안했다. 다들 그러자고 수락했다. 


먼저 순번을 정해야 했다. 엄마가 첫째 날 점심 > 나는 그날 저녁 > 아빠가 설날 아침 > 여동생이 설날 점심 > 남동생이 설날 저녁을 하기로 했다. 순서는 메뉴 선정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각자 메뉴를 고심하기 시작했다. 참가비는 2만 원, 우승자에게 몰빵 해 주기로 한다!

먼저 첫 번째 도전자인 엄마는 아귀찜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여동생이 도착한다는 시간보다 늦어져서 아귀찜이 완성되었을 때 짠! 하고 먹을 수가 없었다. 여동생이 도착한 후 식은 아귀찜을 다시 데워 내놓게 되었다. 거기다 엄마가 긴장했는지, 평소에 뚝딱뚝딱 만들었을 때만큼 맛이 미묘하게 덜했다. 엄마는 "이거 식었다 다시 데운 거라는 걸 감안해 줘."라며 억울해했다. 



이제 내 차례! 나는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대충 보아하니, 다들 한식을 준비하는 듯했다. 이럴 때 좀 상큼하고 이국적인 걸 한 번 먹어줄 차례 아닐까? 평가란 상대적인데, 무거운 식사로 지쳤을 때 가벼운 한 끼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으니까. 거기다 타코는 취향 껏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선택한 타코와 퀘사디아. 타코만 만들려다, 따듯한 음식이 없으면 또 밀리게 될 것 같은 불안감에 퀘사디아도 부랴부랴 만들었다. 아보카도로 과카몰리까지 만들어 함께 대접! 평가는 나쁘지 않았지만... 어쩐지 불안한 느낌.


이제 설날 아침이 되었다. 아빠는 떡국을 끓이겠다며, 전날부터 떡을 썰었다. 그런데 아빠는 솔직히 반칙이다. 고명은 전부 엄마의 솜씨니까. 거기에 엄마가 설날 아침이라고 갈비찜에 이런저런 전까지 만들어 상을 차렸다. 나는 가족들에게 강조했다. "떡국만 심사 대상이라는 걸 기억해!" 아빠는 소고기가 비싼 한우라는 점을 강조했고, 떡을 무슨 좋은 쌀로 만든 떡으로 공수해 왔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떡 썰기가 힘들었다며 어필까지... 


이제 설날 점심. 여동생은 나처럼 전략적 선택을 했다. 무거운 식사에 지쳤을 거라 생각하고, 가벼운 김치말이 국수를 준비한 것. 거기다 열무국수로 유명한 집에서 미리 열무김치와 동치미를 공수해 왔다. 점심 준비로 한 건 그저 소면을 삶는 일. 가족들의 반응이 좋았다. 좋은 메뉴 선정. 거기에 힘도 들이지 않다니... 여동생은 좋은 선택을 했다. 내 타코가 위협받는 지점...



이제 마지막 참가자인 남동생의 저녁 차례. 남동생은 설날 새벽부터 수산시장을 가자고 난리였다. 남동생은 생선을 통으로 튀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리고 수산시장에 가서는 횟감인 커다란 참돔과 가자미 두 마리를 샀다. 솔직히 이렇게 재료에 투자하는 건 반칙 아닌가...? 맛이 없을 수 없는 식사였다. 나의 패배를 실감한 순간. 

저녁 식사가 끝나자 남동생이 평가표를 나누어주었다. 식사의 재료, 맛, 데코를 각각 10점 만점으로 해, 총 30점 만점인 평가표였다. 예상대로 남동생이 우승이었다. 그런데 남동생은 가족 모두에게 이상한 상 이름을 만들어 10만 원씩 용돈을 주었다. 다들 크게 웃고 나서, 아직 학생인 남동생에게 그 용돈이 다시 쥐어줬다. 남동생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단 한차례의 거절도 없이 넙죽 받아갔다. 


요리대회는 성황리에 잘 끝났다. 엄마는 우리가 정리한 주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즐거워하시는 듯했다. 다들 생각보다 진심으로 대회에 임하다니... 다음에 다시 도전하게 된다면, 조금 더 재료에 투자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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