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더 필요하신 건 없으실까요?”

by 레모몬

토요일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아홉 시에 병원 예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환절기여서인지 코와 목이 간질간질하고 재채기도 잦았다. 나는 원래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는데, 내가 불편함을 느끼고 병원을 찾아가면 의사 선생님은 늘 “꽤 심하네요”라고 말씀하신다. 평소엔 가벼운 증상쯤은 일상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결국 좀 심해져야 병원을 찾게 된다.


이 이비인후과를 다닌 지도 벌써 스무 해쯤 된 것 같다. 여름 몇 달을 제외하곤 자주 들를 수밖에 없는데, 이쯤 되면 의사 선생님도 간호사 선생님도 이웃처럼 느껴진다. 가끔 출장 갔다가 사온 초콜릿을 전해드리기도 하고,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진료를 마치고 약을 받아 나오니 열 시를 조금 넘었다. 오늘은 오후 두 시에 친구와 약속이 있었다. 잠시 과제를 하며 시간을 보내려 근처 스타벅스로 향했다.

이층으로 된 매장이었는데,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했다. 주문하려고 줄을 섰더니 내 앞에는 손님이 한 명뿐이었다. 금세 내 차례가 오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 손님이 말했다.

“음… 아이스 아메리카노 여덟 잔이랑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단체 주문이었다.


나는 재빨리 폰을 꺼내 스타벅스 앱을 켰다. 커피 한 잔에 빵 하나면 충분한데, 저 단체 주문 뒤로 밀릴 순 없었다. 오늘따라 로딩이 왜 이렇게 긴가.

앞 손님은 버벅거리지도 않고 주문을 척척했다. 음료는 미리 적어온 것인지, 줄줄 부르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장바구니에 담고, 이어서 샌드위치를 고르려는데— 다행히 그 손님이 케이크 진열장을 보며 고민을 시작했다.

‘됐네.’


망설일 틈 없이, 언제나 실패가 없는 ‘멜팅 치즈 베이컨 토스트’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제 결제만 남았다.


그런데 카드 잔액이 없었다.

지금 이 중요한 순간에 충전까지 해야 한다니. 왜 자동 충전을 안 해뒀을까. 후회할 시간도 없었다. 3만 원을 빠르게 충전했다.

그 사이, 앞 손님은 빵을 여러 개 더 주문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이제 내가 새치기할 수 있겠다.


그런데 또 포스기 앞에서 직원이 말했다.

“주문 다시 한 번 확인해드리겠습니다.”

랩처럼 빠른 속도로 여덟 잔의 음료와 여러 개의 빵이 낭독됐다.

‘좀 천천히 하면 안 되나…’

이게 뭐라고, 괜히 긴장됐다.


하지만 승부를 시작한 이상,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했다.

나는 카드 충전을 마쳤고, 결제 버튼만 누르면 됐다.

아… 그러나 앞 손님이 먼저 카드를 꽂았다.


그 찰나에 나는 별별 생각을 다 했다.

왜 내 폰은 이렇게 느리지?

아이폰 17로 바꿀 때가 된 걸까.

이 모든 생각을 1초 만에 했다니, 나도 놀라웠다.


졌다고 생각했다.

포스기에 꽂힌 카드를 보며, ‘이건 졌다’ 싶었다.

결국 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 하나를 저 모든 단체 주문이 끝난 뒤에야 받을 수 있겠지. 분주하게 마음을 쓴 내가 우습기도, 조금 허탈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직원이 물었다.

“더 필요하신 건 없으실까요?”


아직 결제가 끝나지 않은 거였다.

그 순간 내 폰은 주문 완료 화면으로 바뀌었다.


이겼다.

정말 이겼다.


옆에 누구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겼다고 오두방정을 떨고 싶었다.


태연한 척 자리에 앉아 커피를 기다렸다. 괜히 승부를 펼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뭔가 이뤄낸 기분이었다.


“ 고객님,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샌드위치 준비됐습니다.”


나는 그 외침을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대단한 승부를 치른 장군이라도 된 마음으로 커피를 가지러 갔다.

그 옆에는, 아까 그 단체 주문 손님이 여전히 자신의 커피를 기다리고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