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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되지 않은 하루

by 레모몬


어젯밤 꿈에 남동생 여동생과 함께 어느 시골집에 무려 사주를 보러 갔다. TV에서 보던 시골집이었다. 시멘트로 마당이 발라져 있었고, 웃풍이 좀 있을 것 같아 보이는 창이 보였고, 창고 같은 여유공간도 있었다. 내게 시골 할머니가 계신 것도 아닌데, 그냥 상상 속의 시골 할머니 집 같았다. 마당 한편엔 상추 같은 게 자라고 있고, 무심하게 자란 풀과 꽃도 있었다. 낡은 집이었지만, 물건도 좀 어지럽게 놓여있었지만, 묘하게 다듬어지고 정돈된 보였다.

그 집엔 할아버지 도사님이 계셨는데, 키가 큰 마른 체형에 머리가 길고 수염도 자라 있었지만, 그렇다고 개량 한복을 입으시진 않으셨다. 뭐 엄청나게 범상치 않아 보이는 도사님 같진 않았다. 그런 그가 우리에게 “어쩌지? 오늘 밖에서 볼일이 있는데, 저녁까지 좀 기다리고 있어”하더니 집 열쇠를 맡기고 나가버리셨다.

나는 동생들에게 우리도 돌아가자고 했다. 그때가 오전이었는데, 언제 저녁까지 기다리냐고 했다. 그런데 이것들은 이미 그 집 거실 한편에 자리를 잡고 뒹굴거리며 누워있었다. 사주를 꼭 봐야겠다는 간절함따위도 없는 것들이 그냥 뜨듯한 장판에 몸을 지지고 있었다. “기왕 왔는데, 기다리자!” 뭐 이런 소리를 했던 것 같다.

나는 놀랍게도 그 집에서 밥도 차려먹고 티비도 보고 퀘퀘한 먼지냄새가 나는 담요를 덮고 빈둥거렸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문을 드르륵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도사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이제 사주를 봐주시겠다며 한자가 잔뜩 써진 고서 느낌의 책과 앉은뱅이 책상을 가져오셨다. 고민이 없던 나는 뭘 물어볼까 고민하다 눈을 떴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도대체 이런 꿈은 왜 꾸는지 웃음이 났다. 꿈속에서 도사님을 만났으면 뭐 엄청난 인생의 무엇이라도 듣고 깨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아침에 나올 준비를 했다. 토요일 아침이라 거리는 한산했고, 오늘 왜 이렇게 이른 시간에 약속을 잡았을까…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사주팔자를 상담하라는 전단지가 한 장 붙어 있었다.

영화 도입부 같았다. 주인공이 이상한 꿈을 꾸고는 또 우연히 수상한 점집에 찾아가게 되는 이야기의 시작 같았다. 거기에 가면, 이상한 일에 연루되고, 이상한 사람을 만나고, 내 인생이 소용돌이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현실의 나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될 뻔한 나를 원래의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에 태웠다. 평화롭고 단조로운 하루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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