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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몬 Aug 02. 2023

서울사람이시잖아요!

나 서울 사람 맞지.

한 2년쯤 전 일이다. 명동의 롯데호텔에서 회사 행사가 있었다. 그날의 행사가 끝난 후, 난 동료 한 사람과 광화문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호텔에서 광화문 쪽 도착지까지 지도를 찾아보니 15분 정도 걸렸다. 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가방은 조금 무거웠지만, 하루 종일 행사장에서 앉아있었던 탓에 조금 걷고 싶기도 했고 걷기에 좋은 날씨이기도 했다.


그날 행사 중 있었던 일을 정신없이 이야기하며 걷던 중, 발걸음을 멈추고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기다리는데,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광화문 쪽에서 더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랄까? 난 동료에게 물었다. "이쪽이 맞는 걸까요?" 그녀는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보며 나를 따라 걸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어? 난 그녀를 따라왔을 뿐인데?


그녀는 내게 말했다. "서울 사람이시잖아요!" 아 그렇지. 나 서울 사람이지. 심지어 난 서울 시청역에서 내려 중학교를 다녔으니, 내가 서 있던 그곳, 명동, 광화문, 종로 이 동네를 참 많이도 돌아다녔던 사람이다. 이제 나의 고백의 시간. "저 길치입니다."

 "서울 사람이시잖아요!"


"저 길치입니다."

그녀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리며 그제야 길을 찾는 나를 믿지 못하겠는지 지도앱을 켠다. 분명 15분 거리에서 출발했는데, 이제 도착지까지 걸리는 시간은 30분이었다. 한참을 걸었는데, 반대방향으로 걸었던 것. 이제 그녀는 지도를 틈틈이 보며 내게 길을 안내했다. 이쪽이라며.


분명 그녀도 내게 길치라고 말했는데, 두 명의 길치가 만나면, 슈퍼 파워 길치와 평범한 길치로 구분이 되는 모양. 긴 산책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운동을 한 셈이니, 건강해졌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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