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내 시간
나는 취향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어서 영화를 재밌게 보는 편이다. 재밌게 봐주려는 마음이 있으면 사실 어느 정도는 더 재밌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재미란 같이 간 사람과 간식도 사 먹고 극장에서 나와 이런저런 영화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도 나누는 것까지 포함이다. 영화 자체의 재미는 덜 하지만 같이 간 사람이 재밌을 수도 있고, 간식이 그날따라 더 맛있을 수도 있고, 극장 안에 나타난 어떤 빌런에 대해 신나게 욕하는 재미가 있을 수도 있고 그런 것이니까.
그런데 그런 모든 걸 고려하더라도 정말 재미없는 영화가 간혹 있다. 지금 떠오르는 몇 편이 있는데, 스토리가 개연성이 없으려면, 화려한 액션이나 웅장한 대자연이라도 보여주던지, 아니면 깨알같이 재밌는 대사라도 있던지, 그것도 아니면 매력적인 캐릭터라도 보여주던지, 그냥 무엇하나 건질 수 없고, 내 시간과 내 돈이 너무나 아까워지는 그런 영화. 그런 영화를 볼 땐, 어두군 극장에서의 2-3시간이 고문과 같아지고, 피로도가 상승하고, 그 영화를 고른 나의 선택을 후회하게 된다.
그날도 그런 영화를 보았다. 반지의 제왕 때문에 나는 이미 서양 중세 배경의 판타지 영화에 대한 눈이 엄청 높아졌는데, 그 영화는 중세 배경의 영웅물이었지만, 스토리는 너무나 판에 박힌 내용이었고, 고뇌에 찬 주인공의 서사도 뭔가 펼쳐지는 듯하다 말았으며, CG도 영화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다. 거기다 할리우드 식의 2편을 예고하는 듯한 결말은 영화 전체를 무엇도 아니게 만들어버렸다. (그 뒤로 그 영화 속편 제작 소식은 전혀 들은 적이 없는 걸로 봐서, 성공하진 못했던 듯).
영화를 같이 봤던 친구와도 정말 재미없었다는 이야기를 서로 했던 것 같다. 그날 저녁이었을까? 다음날 아침이었을까? 엄마랑 밥을 먹으면서 그 얘기를 꺼냈던 것 같다. 영화를 한 편 봤는데, 정말 재미가 없었다고. 엄마가 "다음엔 재밌게 만들겠지 뭐"하셨는데, 순간 내가 되게 못되게 느껴졌다. 나도 평소보다 못하는 날도 있고, 망하는 날도 있으면서, 나는 마치 언제나 완벽하게 잘 해내는 양 군 것 같아서.
망한 영화를 보면 지금도 불평을 한다. 아오 재미없다! 그치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 내가 망한 영화를 봐준 일이 "다음엔 잘 만들길"하는 약간의 응원이 되길 바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