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의 비밀
내가 처음 추리소설에 빠지게 된 건 초등학생 때였다. 당시 아빠가 모아둔 셜록홈즈 단편 전집(40권으로 기억)이 있었는데, 아주 얇은 책이었고 읽기도 쉬웠다. 난 정말 그때 홈즈 같은 어른으로 크고 싶었다. 홈즈 같은 어른이란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당시의 나처럼(지금의 나도 그렇지만) 어리둥절해하는 게 아니라 모든 걸 간파하고 그 표면적 사건 이면까지 이해하는 날카로운 지성을 갖춘 어른! 그때 그 책을 읽고 또 읽으며 난 감탄만 하는 왓슨이 아니라 모든 걸 꿰뚫어 보는 홈즈 같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러다 사람 마음을 꿰뚫어 보겠다며 초등학생이 프로이트 책을 사달라고 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다. 프로이트 꿈의 해석을 사준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그 책을 사주셨을까?).
그러다 중학생이 되었고, 학교 도서관에서 홈즈 장편을 빌리게 되었다. 나로서는 신세계가 펼쳐진 셈. 내가 읽지 않은 홈즈 이야기가 있다니!! 두근두근 책을 펼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나는 경악을 하게 되는데, 그건... 홈즈가 마약을 했기 때문. 내가 초등학생 때 읽었던 책이 딱히 어린이용으로 각색된 건 아니었지만, 일종의 검열이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책에서도 마약을 하는 모습은 없었기 때문. 당시의 나는 그전 권을 다 읽고 또 읽었기 때문에 어떤 장면에서도 마약이 나오지 않았다는 걸 자신할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그런 충격은 받지 않았을 거다. 그 책이 쓰인 사회적 상황에선 이런 모습이 일상이구나 그렇게 넘겼을 듯, 그러나 중1 소녀는 매우 충격을 받았고, 다른 작가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건 아가사크리스티!
아가스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이 학교 도서관에 몇 권 있었는데, 해문출판사로 기억하고, 책의 날개라고 해야 할까? 그 부분에 책 목록이 80권의 제목이 소개되어 있었다. 헐. 화수분 같은 느낌이랄까? 읽어도 읽어도 읽을거리가 남아있어 신나는 기분. 중고등학생 시절 그 80권을 여러 곳에서 공수해서 읽었는데, 학교 도서관에서도 빌리고, 지역 도서관을 찾기도 하고, 몇 권은 새책을 사기도 했고, 헌책방을 찾기도 했다. 나는 엘큐르포와로보다는 미스마플파였다. 미스마플은 사건의 단서를 쫒는다기 보다(쫓기도 하지만), 사람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났는데, 난 그 점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계속 같은 작가의 추리소설을 읽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범인을 맞출 수 있었다. 작가의 트릭이랄까? 범인이 아닌 사람들을 수상하게 묘사하고, 범인은 보호해 두려는 패턴이 어느 순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으니까.
그러다 대학에 가고 대학 도서관에서 새로운 추리소설을 접하게 되었고, 지금 회사 도서관에서도 주로 추리소설을 빌리는데, 뭐 어린 시절만큼 집중해서 읽진 못한다. 그러다 회사 도서관에서 낯선 제목의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을 한 권 발견했다. 오호, 내가 읽지 못한 소설이 있었구먼. 즐거운 마음에 책을 빌렸다. 요즘엔 사실 책을 예전만큼 빠져서 읽지 못하는데, 그 책은 어릴 때 기억도 나고 꽤 재밌게 읽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읽는데도 불구하고, 범인이 누군지 짐작이 갔다. 오! 정말 이 사람이 범인일까? 싶어 재빠르게 읽어나가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자꾸 다음 장면이 상상되는 것. 그리고 그 기대한 장면이 정말 등장하는 것 아니겠는가? 나 천잰가 싶다가, 마지막 몇 페이지를 남겨두고 깨달았다. 아 이 책 읽었던 거구나~ 하고. 그래도 범인이 누군지 알겠는데도 재밌었다면? 내가 아니라 작가가 천재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