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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몬 Sep 11. 2023

물속으로: 물장구반에서 발차기반까지

어릴 때 일이다. 초등학생 때 수영장에 갔는데, 물이 무서워 물에 들어가길 거부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물에 들어가는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머리를 물속에 넣는 게 싫었다. 물에 들어가면 특유의 차단되는 느낌이 싫었던 것 같다. 수영을 배우는 과정에서 처음 3~4일은 물가에 앉아 물장구를 치고 물에 들어가서 물에 친숙해지는 연습을 한다. 나는 머리를 물에 넣길 거부해 그 '물장구 반'에에 계속 남아있었다. 


같이 수영장에 간 동생은 이미 발차기반으로 승급해 열심히 수영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압박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고개를 물속에 넣기가 무서웠다. 거기다 엄마는 처음부터 하기 싫다고 하면 들어주지 않았지만, 해보고 난 다음에도 싫다고 하면 강요하진 않았기 때문에, 이제 곧 '싫다고 하기'가 먹힐 참이었다.


3주쯤 시간이 흘렀을까? 내게 "발차기를 해보자", "물에 들어가 보자" 권유하던 수영선생님은 수영장 가에 앉아 물장구를 치는 내 옆에 바싹 다가와 앉았다. 그날은 뭔가 분위기가 달랐다. 나는 물에 들어가자고 더 강하게 권유하겠거니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스무고개가 시작되었다.


수영 선생님은 "선생님은 수영 잘하는 것 같아?"라고 물었다. 왜 당연한 걸 물어보지 싶었지만 "네, 잘하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선생님이 힘이 센 것 같아 아닌 것 같아?" 물었다. 뭔가에 말려드는 기분이 들었지만 "힘이 센 것 같아요"라고 일단 대답했다. 그 뒤로도 이런 쓸데없어 보이는 질문들이 몇 가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다 마지막으로 물은 건 "그럼 네가 물에 빠지면, 내가 너를 구해주지 못할 것 같아?"라는 질문이었다. 


모든 건 이 마지막 질문을 위한 빌드업이었다. 나는 이미 수영도 잘하고 힘도 세다고 대답을 해버렸으니, 나를 구해주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았다. "구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답할 수밖에. 거기다 난 어린이였지만 이 수영선생님에게 내가 골칫덩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민폐가 되는 기분은 싫으니까, 거기다 초딩을 설득하려고 전략을 준비한 선생님의 성의를 보아서도 이제 물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수영 선생님은 여러 번 강조했다. 본인이 꼭 나를 구해줄 테니 물에 한 번 들어가 보자고. 내가 그 순간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사람들이 알면 웃을 텐데, 난 정말 큰 결심을 했다. 눈을 꼭 감고 물속에 고개를 집어넣었던 순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에 고개를 넣고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발차기를 몇 번 하자마자 몸이 마법처럼 물에 떴다. 그 수영선생님은 나를 곧바로 발차기 반에 보내셨다. 발차기반에서 킥판을 가지고 발차기를 하며 방금 전까지 무서워하던 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막상 해보니 정말 별일 아니었고, 오히려 재미있었다.

때때로 물속에 고개 넣기처럼 두려운 순간을 만난다. 도망가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순간들. 그럴 때 난 물속에 머리를 넣기 위해 용기 냈던 기억을 떠올린다. 해보면 별 것 아닐 것이라고, 오히려 좋아하게 될 거라고 되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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