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책방 투어

반드시 읽지 않아도 좋을......

by MinZhu

장사 머리가 없는 줄은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지만, 그래도 혹시 회사를 나와 내 사업을 하게 된다면 종목은 무조건 책으로 할 것이다. ‘내 서점’은 아무래도 가능성 낮은 소망일 뿐이라면 ‘내 서재’는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이사에는 반드시!’, 의지를 다지는 중이다. 책으로 채워진 장소가 좋다. 좋은 것이 과연 책인지,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인지, 어쩌면 이미 주객은 전도되었을지 모른다. 이러니 어떤 이유로든 책과 연관되어 소문이 난 곳이면 기꺼이 찾아가기도 하고 우연히 발견한 독립서점은 쉬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리고 이것은 외국에 나가서도 마찬가지다. 외국어가 능하지 못해 실제 ‘읽는 행위’는 거의 일어날 일 없으면서도 그렇다. 계획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포르투갈에서 들렀던 책방도 열 군데가 넘는다. 그중 몇 곳을 소개한다.




베르트랑 서점 Livraria Bertrand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으로 2016년 기네스 북에 공식 등재된 곳이다. 1732년 페드로 포르 Pedro Faure가 최초 설립했고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인해 잠시 운영이 멈췄으나 1773년 그의 사위, 피에르 베르트랑 Pierre Bertrand이 리스본 시아두 Chiado 지역에 다시 문을 열었다고 한다. 워낙 번화한 거리인 데다 간판이 눈에 띄는 것은 아니어서 못 찾을 뻔했는데 쇼윈도에 전시된 캘리그래피 북커버에 눈을 뺏겨 걸음을 멈추니 거기가 바로 베르트랑 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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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2 @ Livraria Bertrand - Chiado, Lisboa


We witnessed :

ONE EARTHQUAKE
ONE CIVIL WAR
NINE KINGS
......
THE UNIFICATION OF EUROPE
CHANGING TO EURO

And we have the books to tell you all about


솔직히 말하면 너무 현대적인 인테리어에 첫인상은 조금 실망이었다. 그러다 통로 벽에 쓰인 글에서 삼백 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서점의 자부심을 보았다. 실망은 전적으로 내 편견에서 왔던 것이다. 지켜져야 하는 것은 설립 당시의 외관이 아니라 정신일 것인데 예스럽지 않은 모습을 탓하다니. 현재 베르트랑 서점은 포르투갈 전역에 오십여 개 매장이 있다고 한다. 나만 해도 여행 중 네다섯 번은 본 것 같다. 서점은 시대에 맞춰 변하면서 고유의 역할은 잃어버리지 않고 포르투갈 가장 큰 서점 체인으로 성장했다. 실망이 아니라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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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30 @ Livraria Ler Devagar, Lisboa


연륜의 베르트랑이라면 레르 데바가르 Livraria Ler Devagar는 젊은 공간이다. 이 곳은 LX 팩토리 LX Factory 안에 있는데 알칸타라 Alcântara 지역의 방치된 공장들을 개조해 만든 복합 문화공간이다. 공중의 장식과 여기저기 그려진 그라피티, 개성을 한껏 드러낸 가게들까지 요즘 말로 힙 hip 한데, 그중에서도 단연 레르 데바가르 서점이 눈에 띈다. 보통의 삼 층은 되어 보이는 높은 천장까지 가득 채운 책과 아래 위층을 연결하는 V자 철제 계단을 배경으로 자전거를 탄 사람이 하늘을 날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2층에는 모체인 인쇄소 흔적들을 남겨 놓은 채 각종 디자인 작품들을 전시해 두었고 한쪽에는 카페도 있다. 그야말로 최신 트렌드를 완벽히 따르는 곳이었다. Ler Devagar는 포르투갈어로 ‘천천히 읽기’라는 뜻인데 어떤 의도였을까. 오직 책에만 집중하기에는 보는 재미가 너무 커서 아무튼 ‘빨리 읽기’는 어렵지 않을까? 혼자 웃고 말았다.




‘매년 문학 축제가 열리고, 이 작은 마을에 커다란 서점이 두 개나 있다.’

책 [당신의 포르투갈은 어떤가요]에서 이 문장을 보지 않았다면 나는 이 도시를 구태여 찾지 않았을 것이다. 소개된 서점 두 곳만 보고 와도 족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비두스 Óbidos 에는 그 이상의 장소들이 있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학의 도시답다.


2019.05.03 @ Livraria do Mercado Biológico, Óbidos

메르카도 비올로코 서점 Livraria do Mercado Biológico 은 그 이름처럼 살아있는 느낌이 고스란한 헌책방이었다. 열린 문을 통해 보이는 안쪽 가득 빼곡한 책에 나를 포함해 무심히 지나던 행인들은 걸음을 멈췄다. 내부는 밖에서 짐작한 것보다 훨씬 넓은데 사면이 빈틈없이 책이다. 주인아저씨께 저절로 존경의 눈길이 갔다. 단정한 책장이 아닌 나무로 된 사과 박스를 활용해 꽂힌 책들은 조금 투박한데, 너무 세련되면 헌책방 정서가 아니지, 색이 바래 얼룩진 책이 깊은 구석 어딘가에서 제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고서를 시간을 잊은 채 찾고 싶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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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3 @ The Literary man Óbidos Hotel, Óbidos


여행 중 어떤 날은 좋은 구경도 내키지가 않고 그저 종일 책이나 읽으며 고요한 여유를 누리고 싶다. 더 리터러리 맨 호텔 The Literary man Óbidos Hotel은 과연 어떤 방해도 없이 책에 파묻힐 수 있는 곳이다. 입구에서 프런트가 있는 곳까지만 봤을 뿐인데 거의 모든 공간에 책이 비치되어 있었다. 객실은 과연 어떠한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듣기로 약 5만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문학 호텔이라고 한다. 오비두스를 하루 일정으로 온 게 많이 아쉬워졌다. 이 곳에서의 하루를 위해 한 번은 포르투갈에 다시 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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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8 @ Livraria Timtim por Timtim, Porto


땡땡 Tintin을 아는가? 만화 [땡땡의 모험: Les Aventures de Tintin]의 주인공 땡땡을 온전히 담은 서점을 포르투 Porto 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라면 말할 것도 없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캐릭터 전문점은 워낙 볼거리가 많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게 된다. 땡땡을 위한 땡땡 서점 Livraria Timtim por Timtim도 그랬다. 원서와 간행물, 원화와 도록, 피규어까지 정말 땡땡의 모든 것이 있었다. 캐릭터만 겨우 알 뿐인 나도 한참 있었는데 땡땡을 좋아한다면 작정하고 방문하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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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8 @ Livraria Lello, Porto


오픈 시간이 되어 드디어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조금 떨렸던 것도 같다. ‘아름답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말이어서 함부로 최상급을 붙여서는 안 되는데 감히 그리 하였다는 것은 자신감이니까. 렐루 서점 Livraria Lello 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나무 바닥에 가구도 짙은 빛깔 목재여서 고풍스럽고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비추는 빛은 서점을 은은하게 채웠다. 입구 정면의 세르반테스 Miguel de Cervantes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의 두상은 그곳에 품격을 더했다. 해리포터 Harry Potter 마법 계단의 시작으로 유명한 중앙 계단은 마치 융단을 깐 듯 빨간 바닥에 부드러운 곡선으로 난간을 세웠다. 같은 것을 봐도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같지 않은 법이니 여전히 조앤 롤링 Joan K. Rowling 에게 경의를 표하나 계단의 선이 너무 고와서 ‘움직임’을 떠올리기에 충분해 보인다. 서점은 과연 아름다웠다. 그런데 오래 머물게 되지는 않았다. 사람이 너무 많고 관광객을 타깃으로 하는 배치가 너무 노골적이어서 좀 거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뭐라 탓할 수는 없다. 나도 결국 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광객이니까. 현재 렐루 서점은 바우처를 구입해야 입장할 수 있다. 책을 사면 그 금액만큼 할인해 주기 때문에 입장료라고 할 수는 없고, 김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씩 구입한다. 서점이 관광지가 되는 것에 누구보다 서점 관리인들이 안타까워했을 것이고 그래서 취한 대안이었을 것이다. 서점으로서의 본질은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태며 나도 돈키호테 Don Quichotte de la Manche를 팔에 끼고 나왔다.




소개하지 않았지만 리스본의 고서점 사 다 코스타 서점 Livraria Sá da Costa이나 오래된 성당을 개조해 만든 오비두스 산티아고 서점 Livraria de Santiago도 못지않게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가보지 않았지만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작가 주제 사라미구 Jose Saramago의 기념관 Casa dos Bicos도 리스본에 있다. 정말 작정하고 책 여행을 해도 좋을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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