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여행하기엔 오비두스가 최고인 것 같아”

결코 심심하지는 않아요.

by MinZhu

얼마 전 [배틀 트립]에서 배우 이엘과 이설의 포르투갈 여행이 방송됐다. 마지막 밤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가지를 서로 꼽는데 이엘은 ‘오비두스가 꿈만 같았다.’고 했다. 둘의 여행은 2박 3일로 길지 않아서 포르투갈 여러 지역을 다니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그녀의 말을 ‘포르투갈에서 오비두스가 제일’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나부터도 다른 대답을 할 테니까. 다만 그녀가 전망대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며 했던 말에는 완전히 공감한다.


“느긋하게 여행하기엔 오비두스가 최고인 것 같아”




서점 두 곳, 오비두스를 찾은 이유는 그뿐이었다. 처음 마을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는 왕비, 그래서 통 크게 그 마을을 선물했다는 왕의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13세기 어느 왕비의 취향이 나와 같으리라 확신하기에는 시간도, 신분도 간극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물론 21세기 파워 여행 블로거들 사이에서도 칭찬이 많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는 ‘유럽 예쁜 소도시’라는 문구를 ‘사진 배경 맞춤 도시’ 정도로 읽었다. 그랬으니 오비두스라는 도시 자체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리 없다. 그래서였을까, 성벽 아치 문을 지나 마을을 처음 보았을 때 감탄도 하지 않았지만,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못하다고 실망도 되지 않았다. 크지 않은 마을이니 가다 보면 찾는 서점도 만나겠지, 하고 길이 난 곳을 따라 천천히 걸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마음이 편안해졌다. 느림이 주는 행복이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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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3 @ Óbidos


성벽 길을 따라 꼭대기에 오르니 ‘오비두스’라는 이름이 생각난다. ‘성곽’을 뜻하는 라틴어 ‘오피둠 Oppidum’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양팔로 감싸 안긴 품에서 얌전히 잠든 아기처럼 성곽에 둘러싸인 마을이 평화롭다. 마을은 정말 작아서 꼭대기까지 왔다고 하지만 입구에서부터 십 분 남짓 지났을 뿐이다. 뒤로 시간이 충분하다는 사실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평화의 기원을 찾아 붉은 기와가 품은 세월을 마냥 그려 볼 수 있어서, 반드시 이유를 찾을 필요 없이 그 고요한 평화를 실컷 누리기만 해도 되어서, 좋다마다 따지는 것마저 그만두고 의식은 오직 바람이 간지럽다 뿐인 멍 때리기여도 상관없어서...... 한없이 느려도 괜찮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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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3 @ Óbidos


한번 느긋해지니 성벽에서 내려와 마을을 다닐 때에도 속도가 빨라지지 않았다. 흰 벽에 노랑, 파랑 띠를 두른 골목을 ‘너무 예쁘다’는 호들갑도 없이, 그렇다고 ‘별거 아니네’ 비죽 거림도 없이 좀 무심하다시피 그냥 걸었다. 그게 또 나쁘지 않았다. 어느 날 동네 산책을 나갔는데, 평소와 다르지 않은 길인데도 유독 좀 더 오래 걸어도 좋겠다 느껴지는 날과 비슷했다. 오비두스의 골목은 내 생애 처음이었지만 새로움이 아니라 편안함으로 나를 즐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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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3 @ International Chocolate Festival, Óbidos


여기까지 쓰고 보니 사람에 따라 ‘심심하다.’로 읽힐 수도 있겠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비두스는 매력적인 책의 도시*이고, 그리고 달콤한 초콜릿 마을이기도 하다. 오비두스에서 꼭 맛봐야 할 것이 진자 ginja인 줄은 익히 들었다. 초콜릿 잔에 담아 마신다고 했을 때 진한 술이 남긴 아릿함을 달래줄 서브 Sub라고만 생각했지 초콜릿이 오비두스의 특산물인 것은 몰랐는데, 마침 초콜릿 축제 중이었다. 막대 초콜릿, 초콜릿을 입힌 페스츄리, 초코 타르트, 등 각종 초콜릿 상점이 이어졌고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가볍게 액티비티를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대형 돔 텐트의 메인 행사장에 들어갔는데, 거기 그가 있었다. 엔지니어 사회는 남초라 포르투갈 여행을 얘기했을 때 적어도 반은 그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바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Cristiano Ronaldo. 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의 관심사는 전혀 아니었는데, 금빛 초콜릿의 호날두를 만날 줄이야. 앞으로 TV에 그가 나오면 나는 축구장이 아니라 어쩌면 오비두스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크게 한번 웃고 다시 메인 거리로 나왔다. 지역 특산물 축제가 결국 장삿속인 줄을 모르지 않지만, 초콜릿의 달콤한 유혹을 단호히 거절할 재간이 없다. 당연히 진자도 빼먹지 않는다. 코끝의 체리향과 혀끝의 쓴맛이 결국 초콜릿에게 모두 항복, 아, 오비두스, 참 다네.


*어쩌다 보니 책방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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