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 모양의 해변, 나자레
여행 중 한 번쯤은 바다에 가고 싶었다. 유라시아 대륙 서쪽 끝인 호카곶을 일찌감치 일정에 넣었으니 당연히 바다를 보겠으나 그곳의 바다와는 또 다른 바다, 정확히 말하면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에서 바닷물 맛을 보고 싶었다. 세로로 긴 직사각형 모양의 포르투갈은 왼쪽 'L'의 두 면이 대서양과 맞닿아 있어 해변 마을 찾기가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여행기간이 길지 않은 데다 뚜벅이 나 홀로 여행자인 내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바지런과는 거리가 멀어서 짐 싸고 풀고를 최소화하는 성향이다. 그래서 선택된 마을이 나자레 Nazaré 다, 리스본에서 고속버스로 2시간 거리에 있어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면 좌우로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과 그 너머 파란 바다를 바로 만난다. 리스본으로 돌아가는 막차까지 시간은 충분하므로 여유롭게 해변을 따라 걸었다. 칠이 벗겨지고 색이 바랜 작은 배들, 잡은 고기를 말리고 있는 옆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 나자레는 진짜 바닷가 마을이었다. 물론 해변을 따라 형성된 기념품 가게와 식당들은 호객 행위로 시끄럽지만 그래도 휴양지 느낌보다는 비릿한 어촌 냄새가 더 난다. 이곳 건어물 할머니는 들어본 적도 없을지 모르는 먼 나라에서 나부터 이미 이렇게 찾아왔으면서도 이곳이 너무 관광 도시화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이곳 사람들은 쭉 이렇게 바다사람으로 숨 쉬기를.
마을은 높은 절벽이 팔 벌려 바다를 감싸고 있는 모양새다. 해변 산책로 끝까지 가면 절벽을 오르는 아센소르 ascensor : 푸니쿨라 승강장이 나온다. 절벽 위 마을까지 걸어가는 길도 있다고 하지만 거의 90도에 가까운 기울기를 실감하기에는 이쪽이 더 제격 같다. 물론 몸이 힘들기 싫기도 하거니와. 점점 멀어지는 아래를 보며 등 뒤로 오르는 기분은 예상대로 아슬아슬, 옆자리에는 일본인 중년 여성이 앉았는데 아센소르가 덜컹거릴 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긴장된 눈을 봤고 함께 웃었다.
나자레 바다의 전체 모습을 제대로 본 것은 절벽 위 시티우 Sitio 마을에서였다. 여행서의 초승달 모양이라는 표현은 너무 정확한 묘사였다. 본래 바다였다가 절벽이 침식되고 모래가 퇴적해 형성됐다는 해변은 내륙으로 오목하게 들어와 있다. 둥그런 해안선과 절벽 쪽으로 형성된 마을 사이 모래사장은 정말 딱 초승달이다. ‘멋지다’가 맞을지, ‘예쁘다’가 어울릴지, 모자란 어휘력이 아쉽다.
나자레는 나중에 육지가 되었고 시티우가 본래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다고 해도 시티우 역시 작은 마을이다. 마을을 구경하고 점심 식사까지 마쳤으나 돌아갈 시간까지는 여전히 여유가 있다. ‘가만, 나, 바닷물 맛 보겠다고 왔지’ 이번엔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그리고 모래사장으로 갔다. 5월이지만 아직 물놀이를 하기엔 많이 춥고, 그저 밀려온 파도에 발만 살짝 내밀었다. 시원하면서 간지럽다.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파도에 발가락만 겨우 꼼지락, 소심하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바다다. 목적은 다했다.
물놀이라 하기도 뭐한데 장난 조금 쳤다고 쉬고 싶다. 파도가 닿지 않는 적당한 곳에 손수건을 깔고 앉았다. 햇볕에 데워진 모래가 물기를 닦아낸 발에 닿아 따뜻했다. 파란색을 나타내는 단어가 백 가지도 넘는다던데 저 바다는 코발트 블루? 마린 블루? 햇살에 반짝거리는 바다에 넋을 잃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바다는 언제나 좋았다.
일상이 평안한 때는 넓은 바다와 내가 한 마음인 것 같아 좋고,
복잡스러울 때는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바다가 다 덮어줄 것 같아 위로가 되었다.
지금도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