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트라의 하늘

역시 사람보다 하나님 솜씨가 더 좋습니다.

by MinZhu

“하늘”

2011년 터키 Turkey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무엇이 가장 좋았는지 물으면 나는 제일 먼저는 ‘하늘’이라고 답했다. 도시마다 이색적인 풍경을 만났고 마음을 먹으면 의미를 붙이고도 남을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딱 한 가지를 우선 꼽으라면 ‘하늘’이 가장 군더더기 없는 진심이었다. 대부분은 나의 대답을 어처구니없어하긴 했지만 말이다. 포르투갈 여행을 준비하는 누군가가 신트라 Sintra에 대해 묻는다면 난 또 그들의 어이없는 표정을 맞닥뜨리게 될 것 같다. 신트라가 남긴 가장 강렬한 인상은 ‘하늘’이다.


신트라는 리스본에서 북서쪽으로 2~30 킬로미터 떨어진 도시다. 낙원이라고도 했고 보물상자 같은 도시라고도 했다. 바위산 두 봉우리 사이에 산의 모양새를 따라 무어 성 Moorish Castle이 있다. 8~9세기 무렵 북아프리카에서 이베리아 반도로 건너온 무어인 Moors들이 세운 성이다. 방어를 위한 요새라 시야가 넓은데 신트라 내 유적이 한눈에 보일 뿐 아니라 맑은 날엔 대서양까지 보인다고 한다. 무어 성에서 남쪽 봉우리에는 페나 궁 Park and National Palace of Pena이 있다. 16세기 수도원을 19세기 페르난두 2세 Fernando II가 구입해 개조한 궁전이다. 온갖 건축양식의 영향을 받아 다채롭고 화려하다고 한다. 산 아래 있는 신트라 왕궁 National Palace of Sintra은 11세기 무어인이 지은 건물을 포르투갈 왕실이 여러 차례 확장, 보수하여 여름철 별궁으로 사용한 곳이다. 고딕, 르네상스, 이슬람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모습이라 한다. 왕궁에서 남서쪽으로 조금 더 가면 킨타 다 헤갈레이라 Quinta da Regaleira다. 커피 무역으로 큰돈을 번 안토니오 카르발류 몬테이루 Antonio Carvalho Monteiro가 1892년 헤갈레이라 자작부인의 별장을 사들인 후, 이탈리아 건축가 루이지 마니니Luigi Manini에게 건축을 맡겨 1910년 완공됐다. 소유주의 취향과 무대 디자이너이기도 했던 건축가의 감각이 합쳐져 환상적인 경관이라는 설명이다. 몬세라트 궁전 Park and Palace of Monserrate도 있다. 18세기 영국 부호 윌리엄 스톡데일 William Stockdale의 별장인데, 그는 넓은 정원에 여러 나라에서 수입한 진귀한 식물을 심고, 그 위에 정원을 굽어볼 수 있는 별장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리스본에서 기차로 40분이면 갈 수 있지만 이렇게 볼거리가 많으니 당일치기로 본다면 일찍부터 서둘러야 한다는 조언이 많았으나 잠을 깨니 이미 밖은 환하다. 여러 사정으로 신트라가 여행 첫 일정이 되었는데, 전 날 긴 비행의 여독으로 무거운 몸을 침대에 맡긴 게 새벽 두 시가 지나서였다. 시차커녕 뒤척인 흔적도 없이 푹 잔 셈이다. 어차피 늦었으니 모두 보겠다는 욕심을 내려놓았다. 조식까지 느긋이 먹고 기차역까지도 도보 삼십 분이 넘는 거리이나 산책 삼아 천천히 걷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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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9 @Park and National Palace of Pena, Sintra

페나 궁은 듣던 대로 예쁘다. 노랗고 빨간 성은 놀이동산이라고 해야 더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라니 도리어 새삼스럽다. 궁 안마당까지 가면 기묘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여러 형식의 돔과 첨탑, 둥근 아치와 뾰족하게 꺾은 아치가 함께 있다. 원색으로 칠해진 외벽이 먼저 시선을 잡으나 포르투갈 양식인 아줄레주 azulejo로 꾸민 벽도 보인다. 마누엘 양식 Manuelino의 특징이라는 기사단 문장과 꼬인 밧줄 조각도 보이니 설명대로 정말 여러 양식이 섞여 있다. 사람들은 신기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하다. 나도 위치를 옮겨가며 렌즈를 바라보다 멈칫했다. 선명한 파랑이다. 하늘이 파랗다 하지만 하늘색 sky blue이 따로 있는 걸 보면 보통 하늘은 그 하늘색일 텐데 이 날 신트라의 하늘은 정말 파랑이었다. 누가 일부러 색칠해 둔 것처럼 진했다. 궁전의 노랑과 빨강은 더 도드라졌고 사진이라 하면 오히려 믿기 어려운 그림 같은 사진이 카메라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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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9 @Quinta da Regaleira, Sintra

킨타 다 헤갈레이라는 개인의 별장이라는 걸 감안하니 놀랍다. 우선은 정원의 규모다. 전 구역을 꼼꼼히 돌아보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실제 1만 평에 이른다고 한다. 빠짐없이 보겠다는 다짐이 더욱 어려운 것은 미로 같은 구성이었다. 정원 곳곳에는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비밀스러운 통로가 여럿 있고 이들의 끝에는 바닥이 까마득한 우물과 숲의 요정이 살 것 같은 연못이 있다. 동굴과 동굴 사이 징검다리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 중 하나는 어쩔 수 없이 뒷걸음질로 길을 양보해야만 한다. 막다른 벽을 마주하기도 하였지만 비밀스러운 공간을 우연히 만나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정원을 더 환상적이게 하는 것은 하늘이었다. 정원을 채운 초록의 나무들은 파란 하늘 속에서 싱그러웠다. 이끼가 낀 연못은 눈부신 하늘 밑에서 반짝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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