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언가 자꾸 걸린다.
세계사에서 포르투갈이 주목되는 때는 15,16세기의 대항해시대 The Age of Discovery다. 유럽 서쪽 변방, 지중해 무역권에 낄 수 없었고 토양도 척박했던 나라는 반대편, 대서양으로 눈을 돌렸고 가장 화려한 시절을 맞았다. 당시의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 벨렘 Belem이다.
벨렘은 리스본 서쪽에 있다. 바이샤 Baixa에서 벨렘까지 테주 Tagus, Portuguese: Tejo 강변을 따라 운행하는 15번 트램을 이용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그날의 출발점은 바이샤가 되었다.
바이샤 역에서 남쪽으로 골목을 따라 걷다 갑자기 시야가 확 트였다. 코메르시우 광장 Praca do Comercio이다. 앞으로 테주강이 펼쳐져 있고 나머지 삼면은 3층의 회랑 건물이 두르고 있다. 원래 광장은 포르투갈 왕궁이 있던 자리였으나 1755년 대지진으로 무너졌다. 당시 참사는 리스본 인구 삼분의 일을 앗아갔고 대부분의 건물을 파괴했다. 현재의 리스본으로 재건한 이는 당시 수상이었던 폼발 후작 Marques de Pombal이다. 직사각형 형태로 구획을 나누고 동일한 규격으로 건물을 배치했는데 당시로서는 대범한 도시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 절정이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강 쪽을 열어 두고 남은 세 면에 각각 무기고, 세관, 민사 법원을 두어 ‘항구도시로서 포르투갈은 건재하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중앙에는 당시 국왕, 주제 1세 Jose I의 청동 기마상이 있고 아우구스타 대로 Rua Augusta에서 광장으로 들어서는 문은 위용 있는 아치 Arco da Rua Augusta로 세워졌다. 테주 강을 통해 들어오는 외국인들을 당당하게 맞이하는 주제 1세의 마음을 짐작하며 그의 옆에서 강을 바라봤다. 그리고 막 도착한 이들이 본 리스본의 첫인상이 궁금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양쪽 어디에서도 ‘페허’를 떠올릴 수는 없었다. 폼발 후작의 바람대로 되었다.
트램을 타고 벨렘 탑Torre de Belem까지 가는 중 제로니무스 수도원Mosteiro dos Jeronimos과 발견 기념비Padrao dos Descobrimentos을 지났다. 트램 안에서 멀리 보기에도 영광의 흔적들은 그 규모가 웅장하다.
벨렘 탑은 마누엘 1세 Manuel I가 바스쿠 다 가마의 원정을 기념해 만든 요새이자 등대다. 도착했을 때 기다리는 줄이 정말 길었다. ‘입장하지 않아도 겉모습은 볼 수 있는데’, ‘유적을 보관하고 있는 곳도 아니라고 하던데’, 대기 행렬에 굳이 합류해야 할지를 두고 오 분 이상 고민했다. 그래도 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이유가 있겠지. 족히 사십여 분이 지나서 드디어 안으로 들어갔다. 보상은 충분했다. 먼저 멀리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인다. 마누엘 1세가 다스리던 때는 포르투갈이 가장 융성했던 시절로 건물 장식이 예사롭지 않은데 특별히 왕의 이름을 따서 마누엘리노 Manuelino 양식이라 부른다. 그리스도 기사단 십자가와 포르투갈 문장, 바다에서 길을 찾을 때 사용하던 혼천의까지, 마누엘리노 양식의 특징이라 했던 조각들을 가까이 오니 알아보겠다. 그러나 기다림에 대한 진짜 보상은 꾸밈새가 아니라 만듦새였다. 시야가 달랐다. 탑은 요새로서 충실한 곳이었다. 창을 낸 위치마다 다른 광경을 만나는데 결국 사방으로 막힌 곳이 없다. 서쪽 대서양에서 빛나는 불빛이 마중할 것인지 대척할 것인지를 파악하기가 가장 중요한 임무였겠지만 경계는 서쪽에만 머물지 않았을 것이다. 남동쪽으로는 테주강이, 북쪽으로는 제로니무스 수도원까지 보일 만큼 먼 데까지 시야가 닿는다. 탑은 방어와 길잡이라는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있다.
한 나라의 전성기에는 영웅들이 있기 마련이다. 대항해시대의 시작이었던 북아프리카 세우타 Ceuta 정복 원정대를 꾸린 이는 엔히크 왕자 Infante Dom Henrique de Avis다. 그는 항해 학교와 연구소를 세우고 해양 탐험대를 파견하여 포르투갈이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로 진출하게 되는 기반을 다지게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모두가 너무나 잘 아는 인도 항로의 개척자, 바스쿠 다 가마도 있다. 어디 두 사람뿐이겠는가, 1960년 엔히크 왕자 사후 500주년을 기념해서 지었다는 발견 기념비에서 그 시대 영웅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기념비는 출정을 앞둔 배 형상을 하고 테주강을 바라보고 있다. 진취적이다라는 상투적 표현보다는 바다 외에 다른 길은 없다는 결의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목적하지 않았어도 벨렘에 왔다면 눈길을 줄 수밖에 없다. 크기와 외관이 어마어마해서 가까이 갈 엄두도 못 내고 상당한 거리를 두고 한참을 봤다. 수도원에는 과하다 싶게 호화롭지만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에서 돌아온 뒤 향신료 무역으로 벌어들인 수입으로 세운 것이라 하니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안은 수도에 적당할지 궁금하다. 들어서서 바로 본 성당 정면은 유럽 여느 화려한 곳들과 비슷하다 생각했다. 가톨릭은 아니지만 여행 중 예배당에 가면 잠깐 자리에 앉아 기도를 드리는데 기도를 마치고 고개를 들다 그대로 멈췄다. 천장은 곡선의 골격이 서로 만나고 흩어져 규칙적이면서도 딱딱하지 않은 패턴을 이루고 있었다. 기둥들은 골격이 뻗는 중심 중 하나가 되는데 성당을 지탱하는 구조물로써의 기능을 넘어 천장과 함께 장식으로서 시선을 잡았다. 성당을 지나면 회랑이다. 이 곳이라면 수도에 맞춤이었겠다. 관광객들이 상당한데도 전체 규모가 큰 데다 회랑의 폭도 좁지 않아 부대끼지 않는다. 볕이 강한 중앙과 달리 회랑은 그늘이 져서 쾌적하기도 하니 그 시대 수도사들에게 고요한 안식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수도원을 나와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수도원과 기념비 둘 다 다시 봐도 위용이 당당하다. The Age of Discovery는 직역하면 ‘발견의 시대’다. 주어는 누구이고 목적어는 무엇인가. 유럽인들에게는 발견이었으나 아메리카와 아시아, 아프리카, 등 피해를 입은 자들은 ‘발견’된 것이 아니었다. ‘침략’당했을 뿐이다. 일본 식민지의 잔재가 여전한 대한민국 국민인 탓일지도 모르겠다. 벨렘은 거리낌 없이 자랑하고 있는데 나는 무언가 자꾸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