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도시, 코임브라

by MinZhu

고등학교 때 한 선생님께서 기회가 되면 대학교 구경을 가 보라고 하셨다. ‘대학’에 대한 구체적인 자극을 받아보라는 말씀이었다. 지난할 입시를 앞두고 콧바람을 쐬고 싶었던 차에 선생님의 조언은 아주 좋은 핑계가 됐다. 고3을 앞둔 겨울방학의 어느 새벽, 포항행 버스에 올랐다. 이과생들에게는 스카이만큼이나 꿈의 대학인 포항공대와 ‘하나님의 대학’이란 타이틀로 주목받으며 등장한 한동대를 목적지로 정했다. 그렇지만 여행의 진짜 이유는 다시 말하지만 콧바람이었고 ‘대학’이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선생님의 예언은 충실히 이뤄졌다. 포항공대 캠퍼스는 ‘여기 속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했다. 한동대는 이제 겨우 두 번째 신입생을 받을 준비가 한창이었는데 우연히 만난 한 학생은 제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지금 생각하면 신생학교의 응당 있을 영업이었지만 ‘그런 대딩’이 되고 싶어 졌었다. 두 대학 모두 나와 인연이 닿지는 않았고, 이후 내가 한 대학 생활이 그때 그렸던 것과 꼭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 경험은 나에게 ‘대학’의 인상이 되었다. ‘가장 열정적인 세대가 지식을 탐구하는 곳’, 그래서 여행을 가면 그곳을 대표하는 대학을 찾게 된다. 코임브라 Coimbra에 오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포르투갈의 전통 명문 코임브라 대학교 Universidade de Coimbra가 있다.




오래된 대학의 공기가 있다.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주요 기념물들이 주는 효과가 크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직접 내보이고 있지 않아도 느껴지는 당당함이다. 코임브라 대학교도 과연 그랬다.


코임브라 대학교는 1290년 세워진 포르투갈 최초의 대학이다. 디니스 D.Dinis 왕이 ‘에스투두 제랄 Estude Geral : Studium Generale이라는 이름으로 리스본에 처음 설립한 후 리스본과 코임브라, 두 도시 간 이전을 반복하다 1537년 주앙 3세 Joao III에 의해 코임브라에 정착하였다.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5월 한낮의 해가 뜨거워 언덕 위 캠퍼스에 닿을 쯤에는 사실 좀 지쳐 있었다. 그러니까 파티우 다스 에스꼴라 Patio das Escola에 도착해 한참을 그냥 섰던 건 어쩌면 단지 숨을 골라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광장은 삼면이 옛 건물로 둘러싸이고 남은 면으로는 몬데고 Mondego 강이 내려다 보였다. 건물들은 품격이 있었지만 시선을 사로잡기까지는 아니었고 광장 중앙의 주앙 3세의 상도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천천히, 바로 그 느낌이 고스란히 왔다. 수백 년 쌓은 지성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노라는 태세,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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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4 @ Universidade de Coimbra, Coimbra


자부심의 압권은 조아니나 도서관 Biblioteca Joanina이었다. 18세기 주앙 5세에 의해 건립된 도서관은 바로크 양식으로 만들어져 프레스코화 천장을 비롯해 책장도 무척이나 화려했다. 실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 도서관의 주인공은 ‘책’이다. 사다리 없이는 닿을 수 없는 높은 천장까지 빼곡한 고서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도서관은 제한 시간을 두고 가이드의 안내로만 관람할 수 있는데, 아마 그런 제약이 없었다면 고개가 아픈 줄도 모르고 넋을 잃었을 것이다.


설립자 디니스 왕을 세종대왕과 비교한 글을 어디선가 보았다. ‘국민의 언어가 국가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라며 공문서에 라틴어가 아닌 포르투갈어를 쓰게 한 것 등 그 업적이 세종대왕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가 세운 대학이 지금까지 이어져 명문이 되었는데,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집현전이 쭉 이어졌어야 했나, 성균관대학교가 그렇게 되었어야 하나, 성대든 서울대든 한 곳쯤은 세계에서 인정하는 명문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다.




코임브라 대학교는 전통 명문으로서 방문 가치가 충분했지만, 학기가 끝나서인지 단지 토요일인 탓인지 학생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의 활기는 볼 수 없었는데, 실망할 것은 아니었다. 젊은 기운은 다른 곳에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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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4 @ Casa Fado Ao Centro, Coimbra


코임브라에서도 파두를 들을 수 있다. 식사와 함께 즐기는 리스본과 다르게 무대와 객석이 명확히 구분된 작은 극장에서 한 시간여 꽉 채워 파두를 공연한다. 리스본의 파두와 또 다른 점은 가수가 모두 남자라는 것, 게다가 앳된 젊은이라는 것이다. 코임브라의 파두는 남자 대학생으로만 전승된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젊다. 아무렴 슬프기만 하기엔 너무 아까운 시절이지. 학창 시절과 우정을 노래하고 때로 정치적 내용을 담기도 한다는 설명이었다. 물론 좋아하는 이성을 향한 세레나데가 가장 많다고. 어찌나 감미로운지 가사를 알아듣지 못해도 사랑 노래인 줄 알겠다. 창밖에서 남학생의 파두를 들었을 때 승낙과 거절을 표하는 신호가 정해져 있고, 이런 고백 방식은 지금도 계속된다고 한다. 창밖에서 검은 망토를 두르고 노래하는 남자와 짐짓 모르는 척 방에서 숨죽여 듣는 여자라니, 뻔하고 유치하지만 미소가 지어진다. 영화의 표현을 빌어 ‘클래식’하다고 해 두자.




파두에 취해 이 도시는 진짜 꽤나 클래식하다며 흥에 겨워 걸었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거리는 숨이 죽어 있었다. 주일이었고 미리 알아둔 교회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일요일 아침이어서 한산한 것일 수도 있지만 ‘교회’가 있다는 골목인데, ‘신도가 없나?’ ‘이미 없어진 곳을 구글이 잘못 가르쳐 준 걸까’. 밖으로 십자가조차 없는 보통의 주택 건물이어서 문패를 자세히 보지 않았으면 정말 그냥 지나칠 뻔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다행히 예배당에는 사람들이 몇 있다. 점차 사람들이 모이고 예배가 시작되었다.


여행 중 주일이 끼었으므로 예배든 미사든 되도록 지키자는, 겨우 그 정도의 마음이었다. 가톨릭은 아니지만 리스본이나 포르투였으면 유명한 대성당에 들러 어색해하며 미사를 드렸을지도 모른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일정을 짜다 보니 코임브라에서 주일을 맞았고 이곳에도 성당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보가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교회’로 먼저 검색해 찾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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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5 @ Igreja Evangélica Assembleia de Deus de Coimbra, Coimbra


자, 이제 반전, 예배는 뜨거웠다. 복음주의 교회였고 형식에 매이지 않은 찬양 예배였다. 한국에서 출석하는 교회에서도 이미 청년 예배를 졸업한 지는 한참이어서 그런 젊은 예배가 참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더욱, ‘이번 여행’을 계획했을 때 전혀 상상하지 못한 장면이었다. 유럽 개신교가 위기라고 들었는데, 십자가는 높게 세우지 못할지라도 작은 골목 어느 구석에서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하는 젊은이들이 아직 있었다. 놀랍고 감사했다. 포르투갈어로 부르는 찬송을 따라 부를 수 없었고 설교는 더더욱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여기 언어로 은혜가 넘쳤다.




코임브라 대학교를 놓칠 수는 없어서 짧은 일정으로 들렀지만 코임브라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대학의 도시라고 불리는 곳, 이 곳은 정말 젊은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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