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vo e Gambas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다, 이왕이면 잘. 여행도 그렇다. 그러므로 잘 먹어야 한다. 조금 더 잘 사는 것을 바라며 떠나왔는데 먹는 것부터가 시원찮아서는 못쓴다. 로컬들만 아는 집이 제대로라면서도 결국 이미 유명해진 맛집을 찾는 이유는 ‘잘 먹기’에 실패할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도통 맛집이 어디인지 모른다면 어떡해야 할까.
리스본, 카이스 도 소드레 Cais do Sodré 역에 내렸을 때 밖은 이미 어두웠다. 볼거리가 많은 신트라이지만 욕심부리지 않고 두 곳으로만 추렸는데도 호카곶을 거치다 보니 카스카이스 Cascais에서 시간을 확인했을 때 이미 일곱 시가 넘었었다. 삼십여 분이면 리스본에 닿는다지만 늦은 시간 숙소가 있는 지역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 불안해서 저녁을 미루고 그대로 기차를 탄 터였다. 그러니 꽤 허기가 졌는데 역 주변으로 식당처럼 보이는 곳은 눈에 안 들어왔다. 전날 비행기 연착으로 공항에서 유심을 구입하지 못했고 아침에 시내 통신사를 들르지 않고 바로 기차를 탔기 때문에 스마트폰은 이름과 달리 스마트하지 않은 상태였다. 전혀 검색이나 지도를 펼쳐 볼 수 없는 상황, 막막했다. 그냥 호텔로 갈까도 생각했다가 점심도 걸러 참기 어려운 배고픔이어서 뭐가 됐든 무작정 찾기로 했다. 편의점이든 통신사 매장이든. 식당이면 가장 좋고.
저 창고 같은 건물은 뭘까, 새어 나오는 불빛이 전혀 없어 살짝 무섭기까지 했지만 입구가 있고 문이 열리니 들어가 보자. 앗! 그곳은 바로 히베이라 시장 Mercado da Ribeira, 타임아웃 마켓 Time Out Market이었다. 100년이 훌쩍 넘은 전통시장 안의 리스본 최대 푸드 코트라 했다. 포르투갈 전통 음식부터 각종 퓨전 요리까지 두루 맛볼 수 있고 이미 유명한 맛집도 여럿 입점해 있다는 소개를 보았다. 리스본 시내에서 서쪽 방향으로 어디쯤으로만 기억해서 벨렘을 다녀가는 날 들러볼까 생각했지 카이스 도 소드레 역 근처인 줄은 몰랐다. 그리고 건물 자체도 볼만 하다고 했었는데 배고픔에 눈이 멀었는지, 그저 깜깜해서 그랬는지 나는 정말 공장 같은 곳인 줄로만 알았다. 전혀 기대 없이 들어왔다 그야말로 천국을 만났다.
그러나 어리숙한 관광객에게 푸드코트는 결코 좋기만 한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난관이었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선택 장애까지는 아니지만 ‘짜장면과 짬뽕, 둘 중 어느 쪽’처럼 간단하지가 않았다. 게다가 포르투갈어는 까막눈인데 시끄럽고 혼잡하기까지 하니 점포마다 뭘 파는지 메뉴를 알아보기부터 쉽지 않았다. 설사 파악한들 주문은 쉬울까. 그러다 발견한 글자, ‘Today’s menu’, 뭘 먹어야 할지 모를 때 ‘오늘의 메뉴’는 최선일 수 있다. 주문하는 줄이 꽤 긴 것으로 봐서 맛도 어느 정도 보장되는 집 같다. 순서를 기다리며 메뉴를 천천히 다시 보니 요일별로 오늘의 메뉴가 정해져 있었다. 오늘은 월요일, ‘폴보 polvo : 문어’다. 그날의 저녁은 성공적이었을까? 물론이다. 오늘의 메뉴는 보통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단 12유로로 쫄깃한 문어구이에 시원한 맥주까지, 진짜 천국이었다.
책이었는지 블로그였는지, 아니면 누구한테서 직접 들은 말일 수도 있다. 폴보와 감바스 gambas : 새우는 웬만하면 실패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주워들은 게 없었어도 뜻밖에 새로울 말은 아니다. 문어와 새우를 가져다 맛없게 요리하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
나자레에 갔을 때다. 점심때가 되어 열심히 검색을 했고 호기롭게 별 붙은 식당을 향했다. 첫째 집, 문을 닫았다. 그날은 5월 1일 노동절이었다. 둘째 집, 예약이 모두 찼다. 나자레는 큰 도시가 아니어서 후보도 몇 없었는데 이후로도 두 군데 더 허탕이었다. 어쩔 수 없이 메인 광장에 늘어선 중 한 곳으로 그냥 들어갔다. 정보가 없으니 선택이 쉽지 않다. 추천 요리를 물었더니 다 맛있단다. 특별히 맛있는 종목이 없이도 목이 좋아 어중이떠중이 관광객들을 끌 수 있는 식당의 전형적인 태도였다. 성의 없음에 마음이 조금 상했지만 박차고 나갈 수 없다면 최대한 잘 고르자, 맛까지 없어 버리면 너무 속상할 테다. 그래서 고른 것이 감바스 파스타였다. 아주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역시 새우는 기본은 한다. 꽤 맛있는 점심이었다.
여행이 끝을 향하던 포르투에서의 어느 날에도 무턱대고 한 식당에 들어섰었다. 오후에 와이너리 투어를 예약해 두어 근처에서 멀리 움직이기가 애매했다. 결국 히베이라 광장 Praça da Ribeira을 벗어나지 않았고 광장 한 구석 작은 식당으로 그날의 점심을 낙점했다. 이번에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메뉴에서 폴보 단어를 발견하고는 주저 없이 주문을 했다. 문어라는 타이틀을 달았으니 오동통한 문어가 조금 더 풍성한 정도의 하얀 까르보나라를 상상했다. 그런데 내 앞에 놓인 것은 검은색 면의 먹물 크림 파스타였다. 진짜 맛있었다. 느글거리기 직전에 알맞게 멈춘 고소하고 진득한 크림이었다. 면은 부드럽고 문어와 조갯살 씹히는 식감은 말할 것도 없이 쫄깃했다. 이번 여행 중 단연 기억에 남을 베스트 식사였다. 부랴부랴 식당 이름을 챙겨보았다. 검색해 보니 이미 아주 유명한 곳이었다. 지마오 타파스 Jimão Tapas e Vinhos, 어쩌다 들어간 곳이 맛집이었다니 운이 좋았다. 그리고 폴보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또 확인되었다.
맛집을 찾아갈 수만 있다면 염려는 필요 없다. 다만 맛집이 어디 붙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면, 낯선 식당에서 메뉴와 씨름을 해야 할 참이면, 폴보와 감바스를 기억하면 좋겠다. 포르투갈의 해산물은 대부분 훌륭하지만 문어와 새우는 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