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빵집을 기웃댑니다.

파스테이스 드 포르투갈

by MinZhu

‘저기군’

찾고 말고 할 것도 없겠다. 여느 평범한 건물인데 사람들이 저리 많은 걸 보니 틀림없을 것이다. 리스본 벨렘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어쩌면 벨렘 탑도, 제로니무스 수도원도 아닌 새파란 차양을 단 저 집, 파스테이스 드 벨렘 Pastéis de Belem일지도 모른다.


파스테이스 드 벨렘은 파스텔 드 나타 pastel de nata 전문점이다. 포르투갈어로 pastel은 파이를, nata는 크림을 뜻하니 직역하면 ‘크림 파이’, 달걀노른자로 만든 크림을 채워 구운 파이, 에그타르트의 원조 집이라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음식점이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 유사 식당이 우후죽순 생기고 그렇게 상권이 형성되면 한 골목 겨우 지나면서도 ‘원조’가 붙은 곳을 쉬이 서너 번은 보기 때문에 무심하지만, ‘파스테이스 드 벨렘’이라고 하면 가게 이름을 넘어 에그타르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니 120% 믿고도 남겠다. ‘desde 1837 : 1837년 이래’, 설사 진짜 원조가 아니라 해도 180여 년 이어온 집에 의심이 웬 말인가. 무조건 맛보는 게 여행자 도리 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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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30 @Pastéis de Belem, Lisboa

가게 앞으로 늘어선 줄이 짧지 않아 보였는데 기다림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지루할 틈 없이 곧 가게 안쪽까지 들어서서 보니 주문 처리 속도가 보통이 아니다. 손님들은 원하는 개수를 말하고 한 발 물러서기만 하면 된다. 나 같은 관광객도 어려울 게 없다. 직원들은 이 정도 대기 행렬에는 이력이 난 듯 한 번 실수도 없이 숫자에 맞게 에그타르트를 포장해 건넸다. 내 차례다. “여섯”, 옆으로 비켜 한 발, ‘파스테이스 드 벨렘’이 프린트된 종이백을 건네받는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좋긴 한데 어째 내가 스스로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가 된 것 같다. 과장하면 아이돌 팬사인회에서 1분 할당 시간이 순삭한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까, 원조의 위상이 인기 아이돌에 버금간다면, 그렇다면, 그 맛은 확실하겠지, 아무렴.


에그타르트를 받아 들고 근처 스타벅스로 갔다. 빈자리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그보다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너무 마시고 싶었다. 어느 책에선가 포르투갈 대부분의 카페가 아이스커피를 취급하지 않는다고 쓴 걸 봤다. 저자는 여름을 나는 동안 여러 번 일부러 스타벅스에 들렀다고 했었다. 날씨가 이렇게 좋을 수 있는 거냐며 점심도 거른 채 신나게 벨렘을 훑고 다닌 후였다. 조금씩 더위가 느껴지고 살짝 배도 고파왔었다. 시원한 음료와 적당한 요깃거리가 필요한 타이밍이었고 마침 파스테이스 드 벨렘과 바로 가까이에 스타벅스가 함께 있었다. 외부 음식 반입이 예의가 아닌 듯하여 처음에는 망설였는데 둘러보니 많이들 그러고 있었다. 스타벅스 그 매장은 파랑 글씨 쇼핑백이 이제 익숙한 듯했다. 2층 창가에 자리를 잡고 드디어 에그타르트를 한 입 베었다. 겉 피는 바삭하게 씹히고 달걀 크림은 부드러웠다. 이전에 먹었었던 에그타르트 속은 밀가루가 섞였는지 텁텁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달걀 맛이 너무 강해 비렸다. 그런데 이건 정말 어떤 불순함도 없었다. 한 개 뚝딱, 그리고 시원한 커피 한 모금, 두 개째는 시나몬 가루를 뿌려서, 다시 커피 한 모금, 이처럼 맛있는 오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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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맛을 잊을 수 없어 여러 번 벨렘을 찾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파스테이스 드 벨렘만 고집하지는 않았다. 원조가 있다는 말은 이미 원조가 아닌 집들이 많다는 얘기다. 즉 포르투갈 어디서나 흔하게 에그타르트를 만날 수 있다. 그중에는 파스테이스 드 벨렘과 비견되는 브랜드 파워를 가진 곳도 있는데 일부러 찾아다니지는 않았지만 우연히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도 않았다. 간판도 제대로 달지 않은 작은 빵집 진열장도 보통 절반은 거뭇한 그을음을 얹은 샛노랑의 에그타르트로 채워졌기에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었다. 각각 맛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 분석할 만큼의 예민한 미각이 아닌 덕인지는 몰라도 정말 하나같이 맛있었다. 입에 닿는 느낌은 반숙 노른자를 그대로 묽힌 것처럼 부드러운데 신기하게 비리지 않고 달고 고소했다. 에그타르트는 이렇게나 맛있는 파이였다.




포르투갈에 간다고 했을 때 빵 먹으러 가냐는 지인이 있었다. 프랑스도, 일본도 아닌데 ‘먹기’ 위해 간다는 것도, 그리고 그 대상이 ‘빵’이라는 것도 나는 처음 들었다. 그러나 염두 밖이었던 것이, 고백하자면 나는 빵을 싫어하지 않지만 아주 좋아한다고도 할 수 없다. 오래전에는 다른 어떤 군것질거리보다도 사랑하여 빵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최근 십여 년은 확실히 아니었다. 회사 구내식당은 아침식사로 테이크 아웃 메뉴를 제공하는데 찐 감자, 삶은 계란, 선식, 등 종류가 다양하지만 나는 사무실 자리에서 간단히 해결하기 위해 거의 대부분 빵과 커피로 가져온다. 구내식당이 제공하는 빵들은 아주 맛있지도 않지만 끼니니 억지로 먹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무난한 수준이다. ‘특별히 맛있는 빵’을 그리워하게 하지 않는, ‘빵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에 머물게 하는 딱 그 수준의 빵을 아침마다 먹으니 회사 밖에서 ‘내가’ 먹기 위해 빵을 사는 일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물게 되었다. 그러니 관심 밖이었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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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2019.05.01 @Turim Iberia Hotel, Lisbon, R) 2019.05.07 @Aveiro (The far left : ovos moles)

그랬던 내가 포르투갈에서 돌아온 후 아주 조금 달라졌다. 빵집을 지나가게 되면 열에 한두 번은 기웃댄다. 에그타르트 때문이냐고? 반은 그렇다. 진열된 빵 중에 에그타르트가 있으면 한 개는 집게 된다. 파스테이스 드 벨렘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맛있을 때도 있고 완벽히 실패할 때도 있지만 또 다른 빵집에 들르게 되면 다시 또 사 먹게 된다. 이번 여행으로 에그타르트가 짙게 새겨진 셈이다. 나머지 반은 크루아상이다. 리스본에서 맞은 첫 아침, 호텔 조식 뷔페는 위에 쓴 지인의 말을 상기시키는 차림이었다. 전체 메뉴의 수가 많은 편이 아니었는데 유독 빵은 여러 종류 있었다. 크루아상만도 네 가지나 되었다. 플레인을 제일 먼저 먹었는데 결이 부드럽고 버터 맛이 은은했다. 아몬드가 박힌 것은 고소한 식감이 더해졌다. 리스본에서 머무는 6일 동안 시내 어느 유명한 제과점이 아니라 묶고 있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나는 매일 아침 크루아상에 반했다.


집에 가는 길, 빵 굽는 냄새가 난다. 자주 지나는 이 집을 열세 번쯤은 무심히 지나쳤던 것 같다. 크루아상도 있으려나, 오늘은 들러보기로 한다.




아베이루 Aveiro에 갔을 때 거기서 만난 J와 K의 소개로 그곳의 전통 과자인 오부스 몰레스 ovos moles를 먹어볼 수 있었다. ‘부드러운 달걀’이라는 이름처럼 얇은 흰 껍질 속에 노란 소가 채워져 있었다. 포르투갈 과자는 이처럼 달걀노른자가 주재료인 것들이 많다고 한다. 수도원에서 달걀흰자는 수도복을 빳빳하게 만드는 데 사용하고 남은 노른자로는 과자를 만든 기원이다. 파스텔 드 나타도 수도원 과자의 한 종류인 것이다. 다른 주재료는 설탕이다. 포르투갈이 15세기 마데이라 Madeira 제도에서 설탕 재배에 성공하면서 설탕이 풍족해진 덕이라는 설명을 본 적이 있다. 포르투갈은 일반 음식에는 전혀 설탕을 쓰지 않는다는데 이렇게 과자를 만들 때에는 설탕을 듬뿍 넣는다니 얼마나 달콤할지 기대가 된다. 지방색이 강해 오부스 몰레스 말고도 포르투갈 각 도시마다 그 지역의 전통 과자들이 있다는데 지인 말대로 과자 투어도 해볼 만하겠다. 포르투갈의 기본 커피는 진한 에스프레소다. 씁쓸한 에스프레소와 달달한 과자의 어울림은 따로 설명도 필요 없을 텐데, 더 많은 종류의 과자들을 맛보지 못한 게 지금은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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