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일기 |Day 3
19.09.0
산티아고 순례길 이틀째. 어제 만난 B와 함께 쥬비리행 산행을 시작했다. 피레네 산맥에서 무리를 한 탓인지 B는 발목이 아프다고 했다. 한 한 시간쯤 걸었을까. 함께 가는 것이 버거워 보였다. 우리는 잠시 헤어져 목적지에서 만나기로 결정했다.
순례길을 택한 후 처음으로 혼자 걷기 시작했다. 조금 두려웠다. 혼자 걸으려고 왔는데 혼자 걷는 것이 두렵다니. 우습지만 정말 그랬다.
그러나 걱정은 언제나 그랬듯 기우일 뿐이었다. 수없이 많은 인사와 격려가 길 위에서 오고 갔다. 이 길은 혼자여도 혼자 일 수 없고, 길 위의 모든 사람이 동행임을 깨달았다.
딴에는 여유롭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론세스바야스 사건*을 겪은 직후 B와 함께 2인 호스텔을 예약했기 때문에 오늘은 다른 알베르게에 들리지 않고 곧장 쉴 곳으로 향했다.
도착한 호스텔은 감동이었다. 고개가 절로 겸손해지는 이층 침대가 아닌 안락한 일층 침대라니.. 공용 화장실이 아닌 방 화장실이라니.. 감격에 겨운 감상을 마치고 볕이 넉넉한 테라스에 앉아 고생한 발을 쭉 뻗었다. 빨랫줄에 널어놓은 옷들이 햇살에 바싹 말라가고 있었다. 때마침 부는 바람에 행복이 밀려왔다. 걸음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속새의 맛이 이리도 달다.
마을에서 만난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들은 론세스바야스 사건을 함께 겪었는데, 우리처럼 호스텔 예약을 했지만 실수로 하루 뒤 도착 마을로 예약했다고 했다. 밤을 꼬박 새워서 걸을 예정이라는 말에 동정이 샘솟아 초코바 몇 개를 쥐어주며 행운을 빌었다. 안전하게 도착하기를.
그들을 보내고 나니 뒤이어 B가 호스텔로 들어왔다. B와 함께 빨래를 하고 저녁을 먹었다. 이곳은 헤어짐과 만남이 익숙한 곳이다.
*Day 2 일기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