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일기 |Day 4-5
19.09.08
새삼스레 엄마 생각이 났다. 출발 전, 한국으로 전화했을 때 들었던 엄마의 울음 섞인 목소리 탓일까. 엄마는 아직도 힘들고 아픈가 보다. 전화를 끊고도 한참을 그 목소리에 붙들려있었다.
걸음마다 기억이 과거로 역행했다. 불쑥불쑥 내가 내뱉었던 잘못된 말이나 행동들이 튀어나와 나를 질책했다. 어디서 숨어있다 나온 것인지 까맣게 잊었던 것까지 부득부득 기어 나와 괴롭혔다. 새롭게 전환점을 맞고자 이곳에 왔지만 내 삶의 문제까지 놓고 오지는 못했다. 슬픔은 내 마음에 그대로 있었다.
오늘은 두고 온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엄마, 아픈 우리 엄마. 오빠, 애정하지만 애증하는 우리 오빠. 그리고 아빠. 인생엔 내 것이란 게 하나도 없다고, 부모도 자식도 자신이 아니며 그렇기에 내 것이라 칠 수 없다고, 그저 흘러가는 거라고. 그게 바로 인생인 거라고 말하며 담담히 웃던 아빠. 내가 9000km나 떨어진 곳에서 얻으려고 하는 인생의 비밀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아빠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날 원망하고 있을까. 가족이 함께 있어야만 하는 때에 혼자 도망쳤다고 생각할까. 자신을 찾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이기적이라고 말할까. 그렇게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었던 그의 마음 이면에 내가 몰랐던 어떤 설움이 있었을까.
눈물이 났다. 오늘은 발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19.09.09
순례길은 두 갈래로 뻗은 길이 많다. 수많은 사람의 발자국으로 다져진 길이기에 분명 하나로 이어져야 마땅한데, 왜인지 가운데에만 풀이 잔뜩 난 두 갈래 길이다. 자동차도 잘 다니지 않는데 왜 가운데를 중심으로 두 갈래 길이 나는 걸까 의문이었는데 오늘 그 이유를 알았다.
그건 이야기였다. 한 명이 지나가면 열 중의 일곱은 옆에 파트너가 있다. 그들은 같이 왔을 수도, 어제 만났을 수도 혹은 방금 본 사이일 수도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혼자 왔지만 길 위에서 혼자였던 적은 별로 없다.
서로의 페이스를 맞춰가며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말하고 생각을 공유하다 보면 발의 아픔이 잠시 잊힌다.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철학적인 이야기 (삶이란 뭔가, 꿈이란 뭔가, 사랑은 존재하나)를 오글거림 없이 나누며 나란히 걸어간다. 이런 기회가 귀하다고 생각한다. 이제와 보니 두 갈래 길이 참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