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카(한예리)는 제이콥(스티븐 연)을 따라 이사한 아칸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공장에서 집으로 향하는 자동차에서 모니카는 제이콥에게 시내로부터 한 시간은 떨어져 있는 바퀴 달린 집보다는 도심에 사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한다. 제이콥이 이내 반론하자, 모니카는 뒷자리에 앉은 아들 데이빗(앨런 김)의 눈치를 한 번 본 채 다시 쏘아붙인다 "그러다가 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해" 모니카를 비추던 카메라는 부모님의 다툼을 지켜보던 데이빗으로 옮기더니, 이번에는 운전석의 제이콥을 비춘다. 할 말을 잃은 제이콥은 하늘을 보며 중얼거린다. "하늘이 녹색이네." 장면은 급작스럽게 폭우 속에 집을 치우는 일에 정신이 없는 가족으로 전환된다. 토네이도가 몰려오면 집이 날아갈 수도 있다는 제이콥의 말에 두려움에 빠진 앤(노앨 조)과 데이빗은 모니카를 껴안는다. 토네이도 경보가 주의보로 바뀐 순간, 미뤄뒀던 모니카와 제이콥의 다툼은 재점화된다.
실패를 거듭했던 제이콥은 이번에는 어떻게든 거대한 농장을 이루겠다는 꿈을 실현하려고 한다. 모니카에게는 자녀의 교육과 더불어 특히 심장이 좋지 않은 데이빗의 건강보다 중요한 문제는 없다. 영화는 처음부터 양자는 양립이 불가능함을, 그리고 그것을 무엇보다 잘 아는 사람은 다름 아닌 데이빗과 모니카임을 보여준다. 제이콥은 데이빗을 위해서라면 도심에 사는 게 낫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늘에 색깔을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토네이도가 휩쓸고 간 다음 날, 아이들은 큰 다툼을 벌인 부모님의 눈치를 보기 바쁘다. 용기를 낸 앤이 다시 이사를 하냐고 묻자, 모니카는 이사는 가지 않을 것이며 대신에 할머니가 데이빗을 돌보기로 했음을 알린다. 그렇게 순자(윤여정)는 고춧가루와 멸치를 바리바리 싸 들고 와 바퀴 달린 집에서 함께 생활하게 된다. 순자는 일을 해야 하는 모니카와 농장을 가꿔야 하는 제이콥 대신에 데이빗을 돌볼 것이다. 그렇게 제이콥과 모니카의 다툼은 순자의 등장으로 무마된다. 순자로 인해 둘의 상반된 가치의 충돌은 유보된다.
순자의 등장으로 분명 제이콥과 모니카의 다툼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영화는 자연히 데이빗과 순자의 관계에 주목한다. 여기서 다시 영화 초반의 차 안으로 되돌아간다면, 카메라는 분명 뒷자리에서 부모의 다툼을 지켜보던 데이빗을 담았다. 데이빗은 자신으로 인해 다툼이 촉발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 뛰고 싶지만 뛰어서는 안 되는 아이. 그래서 느리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이. 부모의 다툼의 촉매가 되는 아이. 데이빗은 그런 죄책감이 가슴 한쪽에 응어리로 맺혀있는 아이이다. 데이빗은 엄마와 아빠를 다투게 만드는 할머니가 싫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모니카와 제이콥이 아들의 양육방식을 두고 줄곧 다퉈왔음을, 그리고 데이빗은 그 모습을 누구보다 많이 관찰해왔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할머니가 싫다는 데이빗의 말은 자신으로 향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그 어린 몸으로 자신을 혐오하는, 그 작은 몸으로 세상의 중력을 견뎌내는 데이빗의 모습이 아프게 다가왔다.
따라서 할머니와의 화해는 동시에 데이빗이 스스로와 화해함을, 그래서 한 단계 성장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직 어린 데이빗은 아침에 눈을 뜨면 오줌으로 젖어 있는 이불을 발견하곤 한다. 데이빗은 이렇게 말한다. "꿈에서 오줌이 마려워서 오줌을 누면 그때 현실로 돌아와 있어요." 꿈과 현실은 오롯이 오줌으로 구분된다. 푹 젖어 있는 이불. 역겨운 오줌의 맛. 그것들은 지금 내딛고 있는 땅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정확히 인지시켜준다.
모니카는 언젠가 데이빗에게 기도를 통해 기적을 맞은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기 전에 아이는 천당에 가게 해달라고 빌었고, 마침내 꿈속에서 천당을 보아 소원을 빌었다. 모니카는 어쩌면 데이빗에게도 기적이 일어날지 모르니 기도를 해볼 것을 권유한다. 어느 날 밤 데이빗은 엄마의 말에 따라 기도를 하려고 하지만, 아득한 죽음의 공포를 맞이한다. 공포와 맞서 싸우는 것은 자기혐오와 싸우는 일이기도 하다. 데이빗은 가족을 아칸소로 쫓겨오게 한 아이이며, 부모님을 다투게 하는 원인이다.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천당을 방문해야만 한다. 데이빗은 턱 끝까지 차오르는 불안과 공포를 견뎌보려 했지만, 그것을 감내하기에는 어린아이일 뿐이다. 마침내 데이빗은 할머니에게 "죽기 싫다."며 울먹거린다. 순자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며, 천당 따위는 가지 않아도 된다며 손자를 안아준다. 데이빗에게 순자는 처음으로 꿈 따위는 꾸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한 사람이었다. 뛰는 것이 어려우면 천천히 걸어도 된다고 했다. 그날 밤 순자는 자장가처럼 미나리를 되뇌었다. 어떤 척박한 땅에서도 자라나는, 마주하는 어떤 현실도 묵묵히 견뎌내는 미나리. 다음 날 순자는 데이빗과 역할을 바꾸기라도 한 것처럼 오줌을 지린다.
할머니는 모니카와 제이콥의 다툼을 유보했다. 할머니가 더는 그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면, 유보된 문제는 다시 불거질 것이다. 순자와 데이빗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에도 모니카와 제이콥은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모니카는 데이빗을 돌보는 것에 필요한 돈을 걱정했고, 제이콥은 가정에 연결된 수도를 농장에 끌어 썼다. 가족은 데이빗의 심장을 검사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향한다. 모니카는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농작물을 박스로 들고 다니는 제이콥이 못마땅하다. "우리 지금 데이빗 때문에 이곳에 온 거야." 그때 어쩌면 기적이 일어난다. 데이빗의 심장이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제이콥은 마침내 농작물을 공급할 업체를 찾는다. 아메리칸 드림이 실현될지도 모르는 순간, 마침내 억눌렸던 갈등이 폭발한다. 데이빗은 아들의 건강과 농장이 마침내 양립할 수 있게 되었음이 기쁠 뿐이지만, 모니카는 언제나 가족보다는 성공을 골랐던 제이콥을 더는 감당할 수 없음을 확신한다.
꿈에는 반드시 끝이 있기 마련이다. 꿈에서 깬 이후는 현실이다. 순자의 실수로 인해 번진 불은 그래서 오줌과 닮았다. 꿈은 끝났고, 이제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다. 제이콥은 성공을 미뤄둔 채 다시 농사를 지어야 한다. 모니카는 아들과 딸과 함께 도심으로 떠나지도 못한 채 아칸소에 남을 것이다. 따라서 그 불이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꿈을 태웠다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언젠간 끝날 꿈이 불의 모습을 나타난 것뿐이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순자는 몽유하는 사람과 닮았다. 뛰면 안 되는 아이였던 데이빗은 할머니를 따라잡기 위해 내달린다. 앤이 말한다. "할머니, 우리 집은 이쪽이 아니에요." 다시 데이빗이 손을 뻗으며 말한다. "할머니, 돌아가요." 순자는 데이빗의 손을 잡은 채 불길이 번지는 곳으로, 꿈이 끝난 현실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가족은 삶을 살아낼 테다. 어떤 땅에서도 생명을 이어가는 미나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