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를 가기 전 나의 선택은 이랬다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생이란 살면서 유일하게, 사회적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기이지 않나 싶다. 지금은 뭐 신입생 때부터 취업준비에 들어간다는 씁쓸한 소리가 들려오던데, 내가 재수를 마치고 대학생이 된 2011년은 그래도 '대학 가면 놀 수 있다'가 적어도 1-2학년 때는 유효했다.
고3 입시상담을 할 때야 나는 인문학이 왜 입학성적이 낮은지 알게 됐다. 나는 그저 입학성적이 낮으면 입학되기 쉽겠네 하며 인문학도가 됐다. 물론 내가 학교를 고를 수 있는 좋은 성적이 아니라는 것도 큰 이유이다. 대학교 수업은 솔직히 최악이었다. 재미없었다. 철학이니 언어학이니 재미있기 어려운 과목이니까. 나는 역사가 너무 좋아서 인문학도가 된 건데, 역사도 전공으로 배우니 있던 흥미도 떨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역사가 아니라 설민석이 가르치는 역사가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학교는 그냥 성적 유지나 할 생각으로 다녔다. 모두가 좋을 때라고 하고 시간은 넘쳐나도록 주어졌는데, 한동안 나는 지루하기만 하고 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처음 주어졌으니까 이런 시간이란 게.
이 시간을 주로 동아리나 대외활동으로 채웠다. 모두가 하기 싫어 떠넘기듯 학교 팀플을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함께 하는 게 좋았다. 해외봉사도 가고, 캠페인도 진행하고, 국토대장정, 교내 동아리, 교외 연합 동아리 등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좀 지나니까 대외활동이나 봉사도 무슨 스펙이니 뭐니 했는데 나는 이런 거 별로 신경 안 썼고, 순수하게 내가 하고 싶은 걸 했다.
그래서였을까. 불안과 무기력이 몇 년 동안 눈에 띄게 줄었다. 대학교 때부터 나를 아는 사람은 내가 전에 아팠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성인이 돼 내 성격을 점차 깨닫게 됐는데, 나는 상당히 피곤한 스타일이었다. 음... 그러니까 아침에 8시에 일어나기로 했는데 그게 안됐다? 그러면 오전, 길게는 하루 종일 기분이 잡쳐있다(다른 표현을 쓰려고 했지만 이 단어보다 적절한 건 못 찾겠다). 기분이 잡쳐있으니 다른 일도 잘 되지 않은 건 당연하다. 그러면 그 일도 잘 안됐으니까 기분은 더 잡치고.. 내가 세운 계획인데 그걸 못 지킨 거니까 스스로 그래 갖고 네가 뭘 하겠냐? 욕하고 그랬다. 계속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큰 프로젝트를 마치고 난 직후에 또 이런 극심한 불안감과 무기력감이 찾아왔다. 뭔가에 몰두하지 않은 상태. 누구에겐 달콤한 휴식의 시간, 재충전의 시간이지만 나에겐 아이러니하게 이 순간이 오히려 더 괴로웠다. 다행히 중고등학생 때에 비해 정신력이 강해진 것도 사실이고, 이 증상이 올 때마다 나는 나름대로 스스로를 실험해보며 싸워왔다. 그중 하나가 다시 무언가에 미친 듯이 빠지는 것이었다. 쉬지 않고. 그래서 한동안은 그냥 계속 무언가를 했던 것 같다. 불안이 나에게 낄 틈이란 걸 주지 않기 위해. 그러는 동안 언젠가는 이런 임기응변이 스노볼이 되어 더 큰 문제가 찾아올 거란 또 다른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이성적으로 이를 대처할 방법을 찾았는데, 상담이었다. 대학교에 있는 상담은 무료였다. '뭐 거창한 문제를 가진 사람만이 상담을 하러 간다는 인식' 때문인지 주변에 상담을 받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여름방학에 또 무기력과 불안으로 힘들어서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개강 후 바로 찾아가 일주일에 한 번, 1년 넘게 상담을 진행했다. 일주일에 한 시간,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시간이었다. 너무 하찮아 보이고, 이런 생각 하는 내가 쓰레기 같아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그런 이야기를 있는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로 나에게 큰 위로였다. 꼬여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고,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했는데, 똑같이 그러고 있는 나를 마주하기도 했다. 그리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곤 했다. 덕분에 상담을 마치고 나면 나는 사우나를 다녀온 것처럼 개운했다.
한 번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인간관계로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인턴과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기에 현실적으로도 쉽지 않았다. 팀원들의 번아웃과 태업이 보였다. 그때에도 나는 스스로를 갉아먹으면서 해야 할 건, 잠을 줄이고 주말을 포기하면서 했는데, 팀원들은 그렇게 안 하니까 미움과 원망이 올라왔다. 그런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이걸 표출할 수 없으니... 스스로 삭히고...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 와중에 같은 상황인데도 참 태평하게 넘어가는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신기해 물었고, 기도라는 힌트를 얻었다. 도대체 기도가 뭐길래. 프로젝트가 끝나고 무교인 나는 교회를 가보기로 했다. 한 2-3주를 가봤으나, 효과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교회에서 기도에 심취한 분들을 보며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에게는 믿음의 영역이었으나 나에겐 의구심의 영역이었고, 그 뒤로는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2018년 10월이 찾아왔다. 졸업을 했으니 학교상담은 더 이상 받기 힘들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 중고등학교 때부터 정신과를 가게 해달라고 그렇게 졸랐으면 대학생이 됐으니 내가 그냥 가면 되지 않은가?
나도 모르는 사이, F코드에 대한 두려움이 나에게도 싹튼 것이다.
F코드 신드롬, 극복할 수 있을까?
당신에게 우울증 친구가 없는 이유,
네 번째 에피소드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