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관한 글을 읽었다. 단순한 이론일 뿐이었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깊이 사색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은 필름처럼 이미 셀 수 없을 정도의 장면으로 나뉘어 있고, 우리는 고작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것뿐이었다. 미래가 전부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이미 우주에 존재하고 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존재하는 시간 속에 우리가 움직일 뿐,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당장 내일이든, 내일모레이든 우리가 할 것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것은 4차원을 볼 수 없는 우리에게 내려진 한계, 즉 3차원의 눈을 가진 우리는 미래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럼 미래는 이미 존재하고 정해져 있으니 뭐, 마음대로 살아도 괜찮은 거야?라고 묻는다면 나는 구태여 이렇게 사색에 잠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그 질문을 할 것이란 것 자체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고, 그렇게 살아갈 준비가 되어있으며 그렇게 살아갈 사람이 그저 이 글을 보게 된 것뿐이다. 반대로 미래를 알 수 없다니까 뭐 열심히, 후회 없이 살아야지 하는 사람에겐 이 글은 그저 허황된 이론이거나 끄적이는 낙서에 불과하다.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우리대로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거고,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돼있으니 말이다.
시간과 공간은 같은 차원이다. 영화나 만화에서 나오는 '시간을 멈추는 능력'은 마치 공간을 멈추는 능력과 같았다. 떨어지는 물이나 칼의 움직임, 모든 만물의 소리와 바람의 잔여까지 시간이 멈추면 공간도 멈추는 것이었다. 그러면 정말 시간이 멈추면 모든 게 멈추는 걸까. 현대물리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나라는 사람은 이런 특수상대성 이론이나 중력에 의한 개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이론을 접하면 단지 흥미로울 뿐, 도저히 수학적 지식을 뽐낼 자신이 없다. 그저 시간이란 건 존재하지 않아 오히려 영원한 것이지만, 언젠가는 그 의미를 잃는다는 것을 인지할 뿐, 절대 영도의 무한한 빈 공간이 존재한다는 과학적인 의미를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시와 문학적인 감성을 좋아하는 내가 그러한 지식을 담기엔 그릇이 좁디좁으니.
반대로, 문학적 시각으로 접근해 본다. 시간 참 빠르다, 시간 참 느리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같은 문구는 이제 시간의 개념 아래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시간은 마치 공기와 같아서 어디에나 있으며, 보이지 않는 영혼처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폴 포크너라는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과거란 절대로 죽지 않으며, 심지어 그건 과거도 아니다’. 그 말에 빗대어 시간 자체를 생명이 깃든 유기체 마냥 취급하는 것을 보면, 감히 문학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인간은 작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기야 죽어있는 과거는 어떻고 살아있는 미래는 또 어떠한가. 그저 현재라는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지금이 중요한 것 아닐까. 후회를 하며 과거를 되뇌어 봐도 이미 지나간 사건일 뿐, 우리에겐 그것을 되돌릴만한 능력도, 힘이란 것도 없다. 타임머신을 만들어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 한 우리는 겨우 무한한 상상만 하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누군가는 그 상상을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멈추는 것으로 꾸며내곤 한다. 아마 다른 차원으로 갈 때 발동하겠지만.
그 왜, 영화에도 시공간을 초월하는 유일한 것이 사랑이라 하지 않았는가. 시월애(時越愛)나 인터스텔라 같이. 나는 늘 그런 초월적인 존재의 시간 속에 살고 싶었다. 행복했던 기억과 추억들이 하나로 뭉쳐 나에게 파도처럼 밀려오고, 비처럼 쏟아져 그 시절의 감정들로 흠뻑 젖었던, 그런 멈춰있는 시간. 멈춰 있는 그 모든 순간에 우리는 우주를 만들고 영원한 시간에 빠지게 된다. 영원한 시간이란, 영원한 사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듯, 결국 사랑의 시간 속에 산다는 건 순간의 감정들이 평생을 맴도는 것과 같아서.
이번엔 그 사랑을 가지고 과거의 나에게 워프 해본다. 내가 나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는 게 가능한 걸까. 내가 어릴 적에 훔쳐먹었던 사과는 사실 썩어있었다던가, 내가 의지했던 단 한 사람이 곧 먼 곳으로 떠난다거나 했던 것들을 미리 알려줬다면 나는 뭐가 달라졌을까. 어릴 적의 나는 몸과 마음이 지친 적이 많아서, 그래서 가끔은 미래의 내가 나를 안아주는 상상을 했었고 아마 그것보다 진심인 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건 마치 둘이 나란히 서서 같은 곳을 쳐다보며 우리는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그렇게 된 거구나 하며 위로하는 것과 같아서, 그래서 나는 나를 꼭 만나보고 싶었다. 그게 과거의 나이건 미래의 나이건 간에 정말로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렇다. 그러려니 했던 일들은 소중한 기억이 되어버렸고, 누군가를 만나고 잊어가는 과정은 감정의 기억으로 태어나 추억으로 끝나버렸다. 과학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고 하지만, 만약 시간이 흐르는 거라면, 그건 그 시절의 나에게 떳떳하길 바라는 마음이 스며드는 것과 같다. 그럼 나는 그것을 천천히 여유롭게 느끼고 싶다.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