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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n Dec 07. 2020

배려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 좋다.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는 사람이 좋다. 모든 상황과 분위기에 그 감정을 표출해 내는 것보다, 표현하지 않아도 마음을 속이지 않는 사람이 좋다. 표현이 서툴러 끙끙 앓는 사람이, 그렇게 앓다가 모든 것이 지나가자 속삭이듯 말해주는 게 나는 좋다. 사실 그땐 그랬다고 수줍어하는 사람, 본인보다 남의 기분을 더 생각하는 바보. 그런 사람 앞에서는 늘 다짐한다. 다음에는 더, 더 그 사람 기분을 살펴야겠다. 아마 나를 더 생각해 줄 거란 걸 알아서. 그렇게 파도처럼 휩쓸리고만 싶어서.


 예전에 만났던 사람이 있다. 말을 꽃처럼 이쁘게 하고 싫은 소리는 죽기보다 싫어했던 사람이었다. 구름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면 솜사탕 처럼 귀엽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고, 강아지 똥을 찍어 보내도 호쾌하게 웃고는 불쾌한 티 한 번 내지 않았다. 같이 음식을 먹느 날엔 내가 고른 메뉴가 늘 그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됐고, 옷가게를 갔을 땐 가벼운 천 하나만 걸쳐도 멋있다며 칭찬했다. 그 사람은 나랑 같이 있을 때 좋지 않은 것보다 좋아하는 것들이 더 많았다.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좋아서 좋다고 하는 건지, 아니면 내 기분을 맞추려고 일부러 그렇게 말을 해주는 건지. 이런 고민 따위가 사치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무릇 헤아려본 것이다. 한 번은 잦은 야근으로 집에 오자마자 주저앉은 적이 있었는데 그날따라 그 사람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그냥 목소리. 사근사근 간지럽히는 소리에 힘이 풀리고 그렇게 잠에 들고만 싶었다. 그날은 내가 집에 왔을 때도 그 사람은 일을 하고 있어서 잠깐 눈 좀 붙이는 동안 일이 끝나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오늘은 꼭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귀여운 압박까지 했다. 그녀는 알겠다며 뻘뻘 웃었다. 나는 연락 오기를 기다리다가 그만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2시간이 지나있었다. 시간에 놀라 바로 연락을 해보니 그녀는 이미 퇴근하고 집에 들어간 상태였다. 왜 연락을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녀는 자기 때문에 자다가 일어나는 내가 피곤해할까 봐 굳이 안 했다고 했다. 오 이런.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려웠다. 배려심이 많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내 맘을 몰라주는 것에 서운해야 하는 건지. 피곤한 건 피곤한 거고 나는 목소리를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나는 내 마음을 표현했을 뿐이었다.

나는 어, 음 하는 이상한 추임새를 넣다가 결국 고맙다고 말해버렸다. 바보. 거짓말. 아쉬운 마음이 들었음에도 왜 고맙다고 말을 해버렸는지. 나는 내가 표현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것만 보면 나도 내 마음에 솔직하지 못한 것도 같다. 그 사람도 내심 미안했는지 그냥 전화할걸 그랬나? 하며 머쓱해한다. 이 사람도 바보. 이건 진실. 그래 뭐, 깨우지 않는 것이 나를 위해서라는 것과 내가 힘들어할 까봐 걱정되었던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가끔,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배려라는 건 내가 상대방을 생각하는 것보다, 오히려 상대방을 더 살펴야 성공한다는 것. 그러니까 네가 내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 마음을 살펴봤을 때 그 말이 진심이었다면, 그런 네 마음을 받아줘야 배려인 듯이, 전화를 걸어 내 목소리를 하염없이 들려주다가 이내 잠들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그런 게 정말 배려였을텐데.


 배려의 사전적 의미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쓰는 것. 오히려 내가 배려하는 마음이 상대방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고, 아이러니하게도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살필 줄 알아야 배려를 할 수 있다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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