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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n Dec 03. 2020

Blind

 추운 겨울의 어느 날, 당신이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헤어지자는 말, 참 쉽게도 내뱉었죠. 몸을 바들바들 떨며 이유가 뭐냐고 되물었지만 당신은 ‘그냥’이라는 무책임한 말 한마디 남기고 떠나버렸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당신은 분명 그럴 사람이 아닌데, 아니라고 되뇌어봐도 결국 마음먹기 달렸다는 걸 당신을 잃고서야 알았습니다. 그래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젠 그 말이 믿고 싶어 졌어요. 아니, 믿어보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당신을 떠나고 싶었다고 자기 위안해 보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테니까요. 그렇게 당신과 함께했던 겨울이 지나가고, 다시 겨울이 찾아왔을 때, 우연히 당신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좋은 소식이길 바랐으나, 당신은 나에게 소식이라는 단어의 무서움을 알려줬습니다. 당신은 ‘실명’이 됐다고 들었습니다. 그 단어의 의미가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길 원했던 나는 먼지가 수북이 쌓인 사전에서 의미 찾기를 수십 번, 혹시 몰라 영어사전을 펴내 또 의미 찾기를 수십 번했습니다. 아. 이 단어가 이렇게 동떨어져있던 거였다니. 그 비참한 소식을 우연히 들었던 나와 병을 숨기고 떠난 당신 사이엔 뭐가 있었을까요. 당신은 왜 말하지 않았을까요. 왜 나에게 기대지 않았습니까. 당신과 헤어지고 1년이 지나 이제 막 잊겠노라 다짐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당신의 소식은 어찌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나요. 내 슬픔은 아마 백 장의 종이로도 표현이 안될 겁니다. 당신이 눈을 감았을 때 마지막으로 옆에 있던 사람이 나였다면, 그리고 그게 만약 나라면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겁니까. 당신 스스로를 하찮게 생각한 것. 다른 사람을 만나면 내가 행복해질 거라 생각한 것. 그래서 당신이 나를 떠나간 것. 고작 그런 마음으로 헤어지자 말한 거라면 단단히 착각했다고 말해주려 합니다. 당신은 이미 내 마음을 꼬집고, 비틀고, 얕잡아봤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해도 괜찮겠습니다. 상처는 충분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당신의 앞에 서서 어떠한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이렇게 글로 적는 걸 이해해 주시오.


 당신이 나를 볼 수 없더라도 괜찮습니다. 평생 당신 옆에서 눈을 감고 듣겠습니다. 당신이 날 그리워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도 부족하다면, 사랑한다고 백 번을 말해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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