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대협 May 23. 2024

각성한 갑부는 얼마나 강한가

DAY 5 피렌체 도착

오늘 로마를 떠나 피렌체로 향한다. 고속열차로 10시 반경 로마를 출발하여 12시경 피렌체에 도착했다. 피렌체는 로마와 바다 건너 다른 나라인 것처럼 분위기가 다르다. 고대에서 순식간에 르네상스로 접어들었다. 날씨는 크리스마스 오후가 실감 안 날 정도로 꿀꿀한 날씨이다. 이슬비도 간간히 흩뿌리고, 음울하고 묘하다. 로마가 열정적이면서도 천진난만한 음악가 같은 느낌이라면, 피렌체는 고독하고 사색적인 철학가 같다. 민박집에 짐을 풀고 거리로 나서는데 여행자들인지 주민들인지 사람들이 바글바글 분주하다. 음식점이고 마트고 온통 문을 걸어 잠가서 사람들이 다들 밖에서만 서성거리나 보다. 눈에 띄는 크리스마스 마켓도 없다. 피렌체는 한 개의 중앙로 주변으로 명소가 모두 모여 있을 정도의 작은 규모이다. 구도심 내에 자동차가 다니지 않아 중앙로만 쭉 따라가면 아르노강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곳을 다 볼 수 있다. 도심으로 가는 초입에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이 보였다.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은 코시모 데 메디치 시절에 건립한 피렌체 최초의 르네상스 건물이다. 원래 건축 대가 브루넬리스키가 가문의 위용에 걸맞은 화려한 설계안을 제안했으나, 지나치게 웅장하고 사치스러운 저택이 민중의 시기만 조장할 것이라고 내다본 코시모는 미켈로초 디 바르톨로메오의 검박하고 무색무취한 설계안을 선택한다. 코시모는 스놉효과네 베블런효과네 하고 사치를 합리화하는 현대사회의 코미디를 비웃는다.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했으면서도 세간의 관심을 의식하고, 공공성에 부응하려고 전략적 선택을 하는 거부의 모습은 오늘날에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미켈로초의 설계는 단순하고 간결한 입방체로, 다만 일종의 장식이 있다면 세 개 층마다 다른 형태의 벽면과 창틀로 마감했다. 지상층의 회랑(loggia)으로 둘러싸인 중정에는 단아한 정원이 꾸며져 있어 메디치가가 주름잡을 당시 경제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대중이 회합했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다만 소박하고 평범한 모습은 단지 외관일 뿐이고, 그 내부는 메디치가 쓸어 모은 수집품과 고급스러운 벽화, 천장화로 가득 채워 부와 위세를 그대로 담아냈을 것이다.

1444년 메디치 궁전에 터를 잡은 메디치가는 1494년 기롤라모 사보나롤라의 반란으로 메디치 궁전과 가구 및 수집품 등을 시에 압수당했다. 이후 1512년 복귀하여 건물 중정에 대포를 설치하고 회랑을 폐쇄함으로써, 더 이상 시민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1540년 코시모 1세가 신축한 베키오 궁전으로 이주함으로써 공실이 된 메디치 궁전에 1659년 리카르디 가문이 입주한다. 그리하여 저택의 명칭은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이 된다. 




메디치 가문은 14세기말 피렌체 공화국의 공직에 입문하면서 역사에 등장하였다. 이후 교회와의 거래 등을 통해 부를 창출하기 시작하여, 조반니 디 비치 때에 이르러 메디치 은행을 설립하고 피렌체의 참주를 차지한다. 피렌체의 '국부' 코시모 데 메디치 시대에는 유럽 곳곳에 도시은행을 설립하고, 막대한 부를 사회, 교육과 학예에 투자하여 르네상스의 개화를 주도한다. 미켈로초, 도나텔로, 프라 안젤리코 등 유수의 예술가들이 이때 배출되었다. '위대한 자(Il Magnifico)' 로렌초 데 메디치 시대에 가문과 도시의 번영은 절정에 달했다. 로렌초의 외교적 수완 덕분에 피렌체는 이탈리아 정치의 중앙무대를 장악하였고, 피렌체의 그리스 아카데미에는 전국의 손꼽히는 학자들이 몰려들었다. 교회와 다른 귀족들로부터 메디치 가문에 대한 질투 역시 극에 달했다. 로렌초에 대한 암살은 미수에 그쳤지만, 그의 동생 줄리아노는 실제 비참하게 암살되는 등 위협도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 이루어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발굴, 보티첼리와 미켈란젤로에 대한 후원은 위대한 메디치가 인류에 선사한 선물이다. 16세기 코시모 1세는 시에나를 합병하고 토스카나 대공국을 수립하여 초대 토스카나 대공이 되었으나, 18세기 7대 대공 잔 가스토네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고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1세가 토스카나 대공 지위를 겸하게 되면서 메디치 가문의 대공 지위는 사라졌다. 이후 코시모 3세의 딸인 안나 마리아 루이사 데 메디치가 죽으면서 가문은 단절되었다. 안나 마리아 루이사가 고맙게도 가문의 수집품들을 외부 반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저택과 모든 재산을 피렌체에 기부한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500년 전 갑부집을 구경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메디치는 평범한 중산층 가문에서부터 성장하여 금융업을 재패하고 피렌체의 번영과 발전을 이룩하였다. 300년간 전쟁과 혈투가 아닌 경제와 학문, 문화의 힘으로 피렌체를 당대뿐만 아니라 역사상 최고의 도시로 발전시켰다. 겨우 싹이 나고 있었던 르네상스는 피렌체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인간사를 재단하는 기준, 인간이 다루는 만물의 중심을 인간 외적인 것, 신으로부터 인간 내적인 것, 인간 본연으로 회귀시킴으로써 과학, 철학 등 학문과 음악, 미술 등 예술을 정상화하였다. 암흑의 중세를 끝내고 혁명의 근대를 열었다. 르네상스가 있었기에, 산업혁명과 기술혁명이 가능했고 인류 문화가 절멸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르네상스'란 '회복'이라는 뜻이지만, 인류에 미친 공헌 측면에서 사실상 '부활'로 읽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메디치가는 대대로 사업수완과 치밀한 전략으로 부를 쌓아 올리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돈 버는 재미가 다른 모든 것보다 강하다는데, 메디치가는 돈 냄새를 기막히게 맡을 뿐만 아니라 돈 버는 일 자체를 행복해하는 유전자가 심어져 있는 것 같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과거나 현재의 부자들이 다 똑같지만, 메디치가가 위대한 점은 경제력을 철저히 수단으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메디치가는 막연히 부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떠나 그 부를 바탕으로 국가를 지배할 수 있는 정치력과 학문과 예술의 가치를 알아보았던 선견지명이 있었다. 메디치가에게 부란 정치와 투자를 위한 수단이었다.




메디치가 사람들은 대부분 인생을 달관한 것 같은 말을 많이 한다. 국부 코시모는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것에서 더 큰 즐거움을 얻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 쓰는 것이라는 게 예술가 후원, 아카데미 후원 등 일반인 기준으로는 전혀 소비와 사치가 아니다. 아무래도 돈 쓰는 재미는 내가 가서 한 수 가르쳐 드려야 할 것 같다. 당대 최고의 셀레브리티 로렌초도 명함에 맞지 않게 소박한 소리를 했다. "행복해지고자 하는 자들이여, 행복을 즐겨라. 내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니." 빈살만 형님이 이런 소리를 한다면 이 글귀를 금으로 새겨 넣은 머그잔이 한 개당 1억 원에 팔릴 것이다. 그래도 한편으로 사보나롤라 사태를 겪고 막장 드라마 같은 공화국 정계에서 꿋꿋이 세력을 잃지 않은 가문의 호연지기를 생각하면 이해도 간다. 돈을 계속 벌어 재끼면서도 돈에 초연했던 것도 역시 유전자의 힘인가 보다. 

인간은 굵고 짧은 생을 선호하는 부류와 길고 가는 생을 선호하는 부류가 있는데, 요새는 사람들이 기개가 줄어들고 부의 양극화도 심해지다 보니 길고 가는 생을 많이들 선호하는 것 같다. 난세가 있어야 영웅이 나오는데 요새는 난세이기 난세인 것 같은데 영웅은 잘 나지 않는 것 같다. 나부터도 밸런스게임으로 메디치만큼 돈을 줄 테니 메디치만큼 치열하고 위대하게 살라고 한다면 거절할 것 같다. 생명이나 권력의 위협 없이, 일이든 사람이든 스트레스받을 일 없게, '오늘 자면 내일 일어나겠구나.' 소소하게  안심하며 사는 삶이 주는 행복도 꽤 괜찮은 것 같다.

이전 11화 죽 쒀서 개 줘도 괜찮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