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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대협 May 23. 2024

죽 쒀서 개 줘도 괜찮다

DAY 4 로마 버스 투어

다시 로마 시내로 돌아와 트레비 분수로 향했다. 트레비(Trevi)는 3개의 길이 만난다는 뜻이다.

트레비분수는 전 세계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분수이다. 동전 1개를 던지면 로마로 다시 돌아오고, 2개를 던지면 사랑을 만난단다. 동전 3개는 설이 분분한데,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 아니면 이혼한다는 말도 있는데, 원래는 일생에 단 한 번 행운이 찾아온다고 한다. 결혼 또는 이혼이 행운이긴 한가보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는 잘 이혼하면 행운이라고 한다고 한다.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는 이혼하면 남편이 부인 측에 전 재산을 다 주어야 한단다. 아마 더 부유한 쪽이 덜 부유한 쪽에 그러는 것이겠지만, 아무래도 보편적으로 남편이 더 부유하기 때문인 것 같다. 아이가 있다면 부인이 재혼해도 위자료를 계속 주어야 한단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혼 또는 사별을 몇 번씩 거치면서 갑부가 되었다는 노부인의 설화가 흘러 다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남편의 돈이 아내에게 가기는 가는 것 같다. 청춘남녀가 만나 순애보 같은 사랑을 하는 것도 아름다운 삶이겠으나, 남편과 헤어진 뒤 천문학적인 돈을 가지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여인도 어찌 보면 부러운 삶이라고 할 만하다. 어쨌든 트레비 분수는 하루 3천 유로를 번다고 한다. 1유로로 따지면 3천 명이라는 셈인데, 아무리 봐도 관광객이 더 많이 찾는 것 같으니 1인당 50센트씩 던지나 보다. 로마는 트레비 분수의 수입을 유니세프에 기부한다고 한다.




트레비 분수는 폴리(Poli) 궁전을 장식하기 위해 교황 니콜라우스 5세가 추진하여 교황 클레멘스 13세 때 완공했다. 수원지는 로마로부터 22킬로미터 떨어진 '처녀의 샘(살로네, Salone)'인데, 기원전 19년 건설된 아쿠아 비르고 수도교를 통해 끌어온다. 당시 아그리파 장군이 원정을 마치고 복귀하면서 갈증에 시달리는 부하들을 위해 근처에서 식수를 찾아봤는데, 한 처녀가 샘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처녀의 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예전에는 전쟁에서 생환한 병사가 트레비 분수에서 물을 마시고 물컵을 깨면 다시 전쟁에 나가도 살아 돌아온다는 전설이 있었다고 한다. 왕건도 그렇고 아그리파도 그렇고 옛날 설화 속의 샘 옆에는 항상 아낙네와 수양버들이 서 있어야 하나 보다.

트레비 분수를 건립할 당시 오른편 거리에 이발소가 있었다. 여느 이탈리아인들처럼 간섭과 잔소리가 심했던 이발소 주인양반은 분수 건립과정을 하루하루 지켜보며 이리 해라, 저리 해라 훈수를 두었다. 공사 감독은 이발소 앞에 거대한 항아리를 두어 이발사의 시야를 피했다. 분수가 나오는 벽감 조각 중앙에는 마차를 타고 있는 바다의 신 넵튠이, 그 양 옆으로 건강과 풍요의 여신상이 있다. 아래쪽 양편에는 말을 다루고 있는 두 개의 트리톤 상이 있는데 왼쪽은 거친 바다를 오른쪽은 잔잔한 바다를 상징한다. 이 구도는 캄피돌리오 광장 로마시청의 미네르바 분수와 비슷한 구도이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어떤 도시의 이름을 정하기로 하면서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경합한다. 포세이돈은 삼지창을 땅에 꽂아 샘을 만들며 사람들에게 영원한 물을 주겠다고 했고, 아테나는 올리브가지를 꽂으며 비옥한 땅을 주겠다고 한다. 어차피 사람이 사는 곳은 땅이니 시민들은 아테나를 선택했다. 도시 이름은 '아테네'가 되었다. 이후에 로마도 미네르바를 도시의 수호 여신으로 삼았다. 아테나는 도시 복이 많은 것 같다.

그리스 신화에 대한 일설에 따르면 메두사가 미인이던 시절이 있었다. 이 이야기 상에서 메두사는 원래는 딸 부잣집 셋째 딸로서 아테나에 버금가는 미인이었고, 포세이돈은 메두사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고, 아테나는 포세이돈을 짝사랑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설정만 봐도 비극적인 삼각관계이다. 포세이돈은 하고 많은 곳 중에 아테나 신전에서 메두사와 사랑을 나누었고, 분개한 아테나는 그 사태를 계기로 메두사에게 뱀 머리카락과 돌이 되는 레이저 눈의 저주를 내렸다. 그걸로도 모자라 아테나는 아폴론과 협잡하여 페르세우스로 하여금 메두사의 목을 자르게 했다. 여인의 복수는 적당을 모른다. 그리고 이 정도쯤은 되어야 아테나가 단순히 미모를 질투해서 뱀 머리카락으로 바꾸고 사주 척살했다는 이야기보다는 논리적이다.

어쨌든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로 한 포세이돈은 메두사의 죽음을 슬퍼하며 메두사의 목에서 뿜은 피로 페가수스를 창조하였다. 그러고도 여전히 포세이돈과 아테나 사이가 서로 냉랭했다는 것으로 보아, 포세이돈은 아테나에게 절대 마음을 주지 않았던 것 같다. 하긴 나 같아도 소름 돋겠다. 아니면 아테네시를 빼앗긴 포세이돈의 지질한 질투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메두사를 재물 삼아 아테나를 분노케 하려던 포세이돈의 사이코패스적 계획이었을지도 모른다. 여하간 아테나는 인류 문화사를 통틀어 가장 사랑받고 가장 안티가 없고 가장 땅복(도시)도 많았지만, 애정운은 젬병이었나 보다. 어쩌면 너무 이성적이면서 매정한 모습에 큐피드도 학을 떼고 도망갔는지 모른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로마에 있는 아테나(시청사)와 포세이돈(트레비 분수) 중에는 단연코 포세이돈이 인기가 많다.




트레비 분수를 벗어나 스페인 광장으로 향했다. 스페인 광장에는 스페인 계단이 있고 계단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트리니타 데이 몬티(성 삼위일체, Trinita dei Monti) 성당이 있다.

과거에 이 언덕 인근을 관할하는 소관은 프랑스였다. 프랑스는 15세기부터 와인 생산지였던 이 언덕을 매입하고 수도원과 성당을 건립하였다. 이곳에서 실제 와인을 생산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프랑스가 와인 생산지를 매입했다는 데에서 신뢰도가 올라갔다. 이후 성당이 있는 언덕과 아래쪽 광장을 연결하는 계단을 건립했다. 일설에는 언덕에 풀이 우거져서 풀숲에서 은밀한 행각들이 많이 발생했고, 수도원에서 수련하는 사제들이 민망함에 수치스러워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프랑스 교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풀숲을 밀어버렸다. 어떤 곳이든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은 오염되는 법이고, 어떤 시설이든 계기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 법이다. 계단을 만들고 나자 프랑스인들은 이번에는 계단 꼭대기에 태양왕 루이 14세의 기마상을 건립하고 싶어 했다. 하나 하느님의 성전인 성당 앞에 감히 일개 왕의 동상을 만드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는 프랑스인들과 허락하지 않는 교황청 간의 타협안으로 그곳에 있던 오벨리스크에 교황 인노첸티오 13세 가문의 문장인 바둑판무늬의 독수리와 부르봉 왕가의 상징 붓꽃을 같이 새기기로 했다. 그리하여 이 계단과 광장의 물주는 프랑스가 되었다.

그러나 이 인근에 '주 바티칸 부르봉 스페인 대사관'이 있었던 것이 함정이었다. 바티칸 시국은 협소한 공간 탓에 전 세계 국가에서 온 '교황청 대사'들이 대사관을 둘 수 없다. 애초에 교황청을 담당하는 별도의 대사관까지 두어야 할 정도로 외교관계가 다망한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에 대부분의 나라들은 바티칸 밖 로마 시내에 바티칸 대사관을 둔다. 주 이탈리아 대사관과 별개로 말이다. 특히 스페인 광장 주변에 대사관들이 많은데, 그중 스페인 대사관이 광장과 계단 명칭의 주인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죽 쒀서 개 준다는 상황 아닐까.

주교황청 대한민국 대사관의 설명에 따르면, 로마 시내에 설치된 각국 대사관은 91개이다. 바티칸과 수교를 맺은 국가는 183개, 바티칸에 외국에 세운 해외공관은 127개라고 한다. 전 세계 신자는 13억 명이라고 하니, 인구 면에서는 세계 1, 2위를 다투고, 외교력 면에서는 우리나라와 비등비등한 국가이다. 과거에는 한 나라의 왕을 파문한다고 하여 벌벌 떨게도 만들었다지만, 지금은 국방도, 경제권도 없이 신앙 하나에 기대어 이렇게 커다란 조직 아닌 조직을 거느릴 있다니, 이해가 알쏭달쏭하다.




스페인 광장에는 물고기를 닮은 조각배 모양의 분수(폰타나 델라 바르카치아, Fontana della Barcaccia)가 있는데,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니니가 만든 작품이다. 테베레강 홍수 때 사람들을 구조하던 작고 바닥이 평평한 보트가 물에 빠진 뒤에 발견되었던 모양에서 착안했다. 과거에는 배 위쪽에 있는 구멍에서 나오는 분수는 사람들이 식수로 먹고, 배 아래쪽에 고인 물은 말이 먹도록 했었다. 

스페인 계단은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장소로 유명하지만 이제는 먹지 못하게 되었다. 오염도 문제고, 소매치기도 문제라고 한다. 프랑스의 샤이요궁과 쌍벽을 이룬다고 한다. 실제로 인터넷상에 스페인 계단에서 집시들의 강매 수법에 대해 많은 후기들이 올라와 있다. 신사인 척 다가와 장미꽃을 손목에 끼우고는 돈을 요구한다든지, 어디서 왔느냐 친근하게 물어보면서 접근한다든지, 이야기로 들으면 뻔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겪으면 당황할 수 있을만한 후기들이 많다. 이제 스페인 계단에 대한 프랑스의 기여라든지, 오드리 헵번의 아이스크림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소매치기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아 오히려 프랑스가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할 것 같다. 죽 쒀서 개 줘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대사관도 많고, 유행을 좇는 사람도 많고, 고위급 출장객도 많으니 이 인근에 당연히 명품상점, 고급호텔과 카페도 많다. 괴테와 바이런이 즐겨 찾았던 '안티코 카페 그레코'도 있단다. 인근 골목에 티라미수 맛집 '뽐삐(Pomppi)'가 있는데, 명실상부 맛집이다. 

그동안 먹어본 바에 의하면 티라미수라는 케이크는 스펀지케이크에 커피시럽 붓고 코코아 가루 뿌린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뽐삐 티라미수를 먹고서는 티라미수는 케이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케이크도 아니고 푸딩도 아니고 크림도 아니다. 티라미수는 티라미수다. 티라미수는 '끌다'(티라레, tirare)+'나'(미, mi)+'위'(수, su)의 합성어로, 영어로 치면 Cheer me up, '나를 끌어올리다'라는 뜻이라는데 어쩜 이렇게 이름도 잘 짓고 맛도 잘 지었는지 모르겠다. 개발도 1960년대 와서야 했다는데, 그 긴 시간 동안 크림치즈, 커피, 코코아를 섞을 생각을 왜 못 했을까. 옥수수, 치즈, 버터라는 재료를 갖고도 콘치즈라는 걸 개발 못한 외국인들의 부족한 상상력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로마에서의 마지막 날 밤에 티라미수와 함께 행복을 깨달았다. 

로마를 떠날 시간이 가까워 온다. 많이 보고 많이 들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다음번을 기약한다는 말을 누가 처음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적확한 문구 경연대회가 있다면 당연히 우승권이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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