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대협 May 23. 2024

친퀘테레도 맥도널드부터

DAY 6 친퀘테레 기행

친퀘테레에 가기로 한 날이다. 유럽 관광시장의 생리를 모르고 8시에 기세 좋게 숙소를 나섰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흔적도 없다. 새벽 댓바람부터 관광하러 열차를 타는 건 좀 민망할 것 같아 아침에 가볍게 베키오 궁전 한 바퀴만 둘러보기로 했다. 궁전 매표소에서 말하기를 비가 부슬부슬 오기 때문에 옥상 루프탑은 출입이 금지되고, 박물관만 오픈하신단다. 지붕도 있으신 주제에 까탈스럽다. 개관은 10시부터이고, 박물관과 탑 입장티켓을 각각 사면 10유로씩이나, 통합티켓은 14유로라고 한다. 탑을 보지 못하면 박물관만은 거의 의미가 없다. 내일 다시 오겠다고 했다.

하릴없이 도시 이곳저곳 발 닿는 대로 걷는다. 먼 옛날 도시의 경계를 지었을 것으로 보이는 성문도 보고, 시내에서 벗어난 주택가의 근린공원도 엿본다. 피렌체 시내는 전화도 터지지 않을 것 같은 고풍스러운 과거 분위기인데, 외곽 주택가는 말끔한 현대의 분위기이다. 유서가 깊고 전통이 살아 있는 유적지도 좋지만, 내가 살기에는 아무래도 현대 문명의 편리한 이기가 있어야 한다. 아직도 수동 엘리베이터의 쇠창살 같은 문이 드르륵 닫히는 이탈리아 건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나라가 늦게 발전되기는 했지만 발전시킨 모양은 첨단시스템의 결정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옛날 옛적 왕족들이 살던 집보다 우리 아파트가 더 편리하고 더 살기 좋은 것은 그저 내가 늦게 태어난 복이다. 이런 나를 보며 미래인들은 또 "옛날에는 저렇게 불편하게 어떻게 살았다데?"하고 비웃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11시가 다 되어서야 라스페치아행 열차를 탔다. 너무 늦었네.

 



친퀘테레는 이탈리아 북서쪽 해안에 있는 리오마조레(Riomaggiore), 마나롤라(Manarola), 코르닐리아(Corniglia), 베르나차(Vernazza), 몬테로소(Monterosso al Mare) 5개의 조그만 마을이다. 직역하자면 '5'(친퀘, cinque)+'땅'(테레, terre), 다섯 개의 땅이다. 친퀘테레 5개 마을과 인근 리구리아 리비에라(Liguria Riviera) 해안 및 주변의 언덕은 국립공원으로 보호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울려서 보기 드문 멋진 경관을 지어내며, 천년 동안 전승된 전통적 삶의 방식을 보여주면서, 지역 삶에 중요한 사회 경제적 역할을 하고 있다. 18킬로미터에 이르는 가파른 바위 해안을 따라 천 년에 걸쳐 사람들의 노력으로 계단식 농경지 및 포도밭 등 과수원을 형성하고, 바다 등성이 언덕에는 오래된 오솔길과 노새길을 따라 올리브나무숲, 포도농장, 과수원, 밤나무숲이 이어진다. 먼 옛날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절벽마을에서 소박하게 밭을 일구고 바닷일을 하며 먹고살던 주민들의 모습이 상상된다.

피렌체에서 친퀘테레 마을 중 하나로 바로 가는 열차는 없고, 라스페치아를 경유해야 한다. 피렌체 산타마리아노벨라 역에서 라스페치아 첸트랄(Laspezia Centrale) 역으로 먼저 간다. 돌아올 때도 이 길로 와야 하니 왕복표를 끊으면 25.4유로이다. 라스페치아부터는 친퀘테레 각 마을로 가는 편도 표를 끊을 수도 있지만, 역사 내에 있는 '친퀘테레 포인트' 사무소에서 데이패스를 끊으면 20유로에 라스페치아부터 친퀘테레 5개 마을, 그 너머 레반토(Levanto)까지 수시로 열차와 버스를 하루 종일 탈 수 있다. 사실 친퀘테레는 트레킹 코스가 유명해서 너무 교통수단에만 의존하면 온전한 경치를 감상하기 어렵다. 나는 체력을 생각해서 열차로 다니기로 했는데, 마을과 마을 사이를 가고 싶을 때 아무 때나 하시라도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오고 가는 시간을 계산하여 베르나차와 마나롤라만 가기로 했다.




라스페치아 역에 맥도널드가 있는데, 사람들 대부분 거기서 요기를 하고 여정을 나서는 듯하다. 여타 이탈리아 맥도널드와는 달리 분주한 느낌이 난다. 꽤나 비싼 '농장이 어쩌고 하는 세트'(8.99유로)를 주문했지만, 햄이 느끼해서 빵만 먹고 버렸다. 고기의 본고장에 오니 한국에서 먹던 고기보다 누린내가 더 나는 것 같아 내 입맛에는 좀 역하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인종의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인들의 비위는 해산물에 강하고, 유럽인들은 육류에 강한 것 같다. 요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의 특이식성은 누가 뭐래도 해산물이다. <올드보이> 시절에는 낙지가 유명했고, '세계에서 가장 악취가 심한 음식' 중 하나로 홍어가 선정됐다고도 하고, 김과 미역은 여전히 못 먹는 서양인들이 많은 것 같다. 그 밖에 전복, 해삼, 미더덕 등을 합치면 해산물 강국 일본보다 한국의 해산물 식성이 더 보편화되기 힘들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에서 육회다, 내장이다 먹는 것도 촉감이나 시각적으로 역할뿐이지 냄새 또는 잔향이 길게 남거나 역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한번 먹으면 일단 다 담백한 고기맛으로 귀결될 뿐 입안에 계속 누린내나 잡내가 남지는 않는 것이다. 잡내를 잡는 것 자체가 주요한 요리비법으로 여겨질 정도이니 말이다. 반대로 유럽의 육류, 특히 가공식품은 일부러 가공을 그렇게 하는 것인지, 도축 후 후처리를 안 하는 것인지 역한 누린내가 마치 화장실에 온 것처럼 느껴진다. 이곳에서는 그런 맛이 나도록 요리하는 것이 더 맛있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맛을 느끼는 데에 차이가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 유럽의 고기는 과하게 숙성된 맛, 중세시대의 맛인 것 같아 좀 거부감이 든다.




열차를 타고 베르나차에 도착했다. 역사에서 마을로 가는 길에 '방향(Direczione)'이라고만 적힌 지름길 같은 소로가 있어 따라가 본다. 어디로 가는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계단이 많은 것을 보니 모로 가도 높은 곳으로 갈 것 같다. 처음에는 정상적인 길인 줄 알고 오솔길을 졸졸 따라 올라가는데, 점점 길이 범상치 않더니 결국 이런 궂은 길로는 오지 말 걸 하고 후회하게 됐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조금 더 등성이까지 가보니 마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공동묘지가 나왔다. 산등성이에 만든 떼무덤이라니. 역시 산이 많은 반도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다 비슷비슷한 가보다. 다른 점은 여기 이탈리아의 묘지는 기본적으로 납골당이라 무덤은 없고 석벽만 서 있다는 점이다. 대리석 납골함을 빽빽이 채워 세운 벽은 마을이 굽어보이고 멀리 지중해가 바라다 보이는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하는구나. 우리나라에도 이런 장소가 있다면 가족묘지공원으로 적당할 것 같다. 이미 많은 추모공원들이 그런 곳에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다시 돌아온 베르나차 기차역에서 마나롤라행 열차를 타려면 처음에 왔던 라스페치아 방면 기차를 탔어야 했는데, 반대방향으로 잘못 타는 바람에 몬테로소로 가버렸다. 서울 그 복잡한 곳에서도 지하철 반대방향을 잘못 타는 법이 좀처럼 없었는데, 외국 깡촌이라는 이곳이 이렇게 차 타기가 힘든 곳이다. 몬테로소는 그래도 자동차가 쉽게 접근 가능한 해변에 자리 잡고 있어 베르나차보다 번화했다.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던 차라 바로 마나롤라행 열차로 갈아탔다.




마나롤라에 접근하면서 보니 바다 저편 붉은 점이 방사형으로 선연한 빛을 내뿜고 있다. 어두워지는 하늘과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짙은 남색 바다 위로 진한 향기가 퍼져 나간다. 한밤 중 흑막을 뚫고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내륙으로 뻗는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보면 발견하는, 라스베이거스가 뿜어내는 환락의 빛과 닮은 구석이 있다. 붉은 점은 점점 사그라들어 완전한 어둠으로 침잠할 것이다. 갈 수 있다면 붉은 점까지 도달해보고 싶다. 배를 타고 간다면 현실과 꿈의 경계 어디매 황홀함 그 자체일 것이다.

이제 막 오후 3시가 넘기 시작한 시각이었으나, 이탈리아 겨울의 일몰은 순식간에 민첩하게 찾아온다. 급하게 마나롤라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언덕을 찾아 올라간다. 지도로 확인했을 때 석양의 마나롤라를 감상하는 가장 좋은 자리는 옆마을 코르닐리아에서 마나롤라로 오는 트레킹코스 중간쯤으로 보였으나, 미처 도달할 시간은 없어 보였다. 다만 마을을 감싸 안은 포도밭 언덕 등성이로 올라가면 어찌어찌 전경을 볼 수 있겠다 싶었다. 가로등은커녕 호롱불 하나 없이 어둑어둑한 포도밭 등성이를 달리듯 올라갔다. 중간중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여 나팔 부는 천사 등 하얀색 패널들이 밭을 장식하고 있었다. 숨 가쁘게 중턱에 다다르자,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모양의 패널이 세워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아멘!" 외침이 나왔다. 

석양과 어우러지는 마을의 사진을 찍으면서 이제는 칠흑 같아진 밭길을 내려갔다. 인적도 드물고 포도 재배 시기도 아니다. 이곳에서 굴러서 땅에 묻히면 농담이 아니라 이, 삼주 혹은 두, 세 달 뒤에 발견될지도 모른다. 필사적으로 안간힘을 써서 집중 또 집중하고 내려왔다. 두 손과 두 발을 다 써서 기어가다시피 했다. 뒷일을 생각지 못하고 무작정 좋은 경치를 찾아 올라간 나의 근시안을 원망했다. 무사히 마을에 당도했다. 뒤돌아보니 시커멓고 커다란 언덕이 호랑이 그림자처럼 보여 정신이 몽롱해지고 '저 언덕을 올라갔다니.' 하고 꿈처럼 느껴지면서 소름이 끼쳤다. 




방파제 부두로 나가니 파도가 세차게 치고 있었다. 가로등이 비추는 곳은 하얗게 부서지는 거친 파도의 포말 때문에, 빛이 없는 곳은 새까만 암흑 속에서 몰아치는 소리 때문에 공포감이 극대화되었다. 등대가 있는 언덕 쪽으로 갔다니 말 그대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땅에 서 있는 것인지, 바다에 떠 있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지중해 깊은 심해, 심연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들리는 소리도 사람이나 동물이 내는 것은 하나도 없고 파도와 물결 소리뿐이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 조그만 마을에서도 느껴지는 광대한 공포와 그러면서도 대상을 알 수 없는 그리움에 사로잡혔다. 어쩌면 내가 보지 못한 마나롤라의 환한 모습, 진짜 얼굴에 대한 호기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의 오묘하고 신비한 모습만을 보았지만 환한 낮에는 아주 평범하게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분주한 바닷가 마을일지도 모른다.

저녁 8시가 넘어 라스페치아에서 피렌체로 가는 직행열차는 없고, 피사를 경유하여 피렌체로 돌아왔더니 밤 11시가 거의 다 되어 있었다.

이전 13화 좋은 것은 역시 크게 봐야 제 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