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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대협 May 23. 2024

프린세스 그레이스

DAY 12 모나코 관광

새해 첫날이 밝았다. 신년전야를 이상한 방식으로 신나고 화려하게 보내고, 새벽 1시쯤 되어서 들어와서 대충 씻고 잤다. 일출을 보려고 했는데, 기분도 아니고 체력도 아니어서 늦잠을 잤다. 새해 첫날부터 늦잠이라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로 한 새해 계획이 작심 1/4일 만에 망했다. 방에서 미적거리다 10시가 다 되어서야 나왔다. 나왔다가 돈 안 가져온 것을 깨닫고 다시 들어가 돈도 가져왔다. 니스 전경 보러 가자.

갸흐 티에르(Gare Thier) 트램정류장에서 일일권을 끊었다. 5유로. 처음에 어떻게 조작하는지 몰라서 스크린도 눌러보고 동그란 버튼도 눌러봤는데, 아무리 해도 되지 않았다. 옆에 계시던 아저씨께 '이거 어떻게 하냐'라고 물어보자, 아저씨가 동그란 버튼을 조그셔틀처럼 돌려서 1일권에 맞춰주셨다. 심리술사이신가. 5유로이다. 정류장 자판기는 동전밖에 먹지 않아서 10유로를 깨기 위해 호스텔 바로 앞에 있던 중식 패스트푸드 점에서 6.5유로짜리 볶음밥 세트를 먹었다. 패스트푸드 치고 비싼 것 아닌가 했지만 쏠쏠히 맛있었다.

마세나 정류장에 하차한다. 트램 가는 방향을 기준으로 왼쪽 1블록을 돌아가면 버스정류장이 있고 거기서 14번 버스를 타면 종점이 몽보롱(Mont Boron) 산이다. 몽보롱 정류장이 14번 종점이고 버스는 정류장에 있는 시간표대로 거의 정시에 출발하는 것 같다. 버스 타고 가는 길에 마세나 광장, 항구 등 웬만한 볼거리는 다 볼 수 있어, 시내투어 버스가 따로 없다. 몽보롱 언덕길 올라가는 중에 보이는 니스 전경이 장관이다. 이탈리아 남부투어할 때랑 거의 비슷한 수준의 풍경이다. 옆에 앉으신 노년의 부부와 눈웃음을 주고받았다. '우리 잘 왔다!' 하는 공감이랄까. 몽보롱 정류장에서 내리면 이제 진짜로 산행이다. 물론 산책로에서 상쾌하게 바다나 니스, 빌 드 프랑스(Ville de France)까지 전경을 볼 수 있지만, 울창한 숲 때문에 시야가 가린다. 좋은 전망대는 굽이 굽이 언덕길의 꺾어지는 곳이다. 꺾어지는 즈음에 내려서 보면 순수한 니스의 전경이 나온다. 날이 좋아 기분이 좋다. 올라가는 중간에 딸과 조깅하고 있는 아버지도 보고, 올라가서는 어린 아기랑 같이 소풍 나온 부부도 보았다. 부러운 마음이 소복소복 쌓인다.




모나코를 가보련다. 몽보롱에서 다시 14번 버스를 타고 내려와서 항구를 지나고 가리발디 정류장에 내렸다. 정류장 100미터 정도 앞에서 좌회전하면 세구레인(Segurane) 정류장이 있다. 여기서 모나코행 100번 버스를 탔다. 100번 버스는 일일권이 적용되지 않고 1.5유로를 내야 한다. 100번 버스도 오른쪽을 선점한다. 모나코가 니스의 동쪽에 있으니까 오른편에 앉으면 해안도로에서 바다풍경을 실컷 구경할 수 있다. 이 경로도 이탈리아 남부투어 못지않다. 지중해의 해안도로들은 다들 이렇게 아름다운가. 해안에 바로 산지가 붙어 있어 이런 좋은 풍경이 나오는 것인가. 단돈 1.5유로로 이런 풍경을 즐긴다는 게 황송하다.

모나코 몬테카를로 정류장에서 내려주는 줄 알았는데, 그전 정류장에서 사람들이 다 내린다. 기사도 내리라는 눈치다. 내려서 아래쪽으로 좀 걸어가면 산으로 향하는 계단이 보인다. 왕궁으로 향하는 계단이다. 별로 힘들지 않다. 계단 오르면서 중간중간 경치 감상도 해준다.

모나코 왕궁은 크지도 예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그냥 궁전이다. 부호의 대저택이라고 해야 할까. 아이보리 색깔만이 왕족의 궁인 것을 말하는 듯하다. 시간은 거의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근위병 교대식을 못 보겠네 하고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궁전 문에서 근위병 2명이 척척 발을 맞춰 나온다. 문 밖을 나오더니 그중 1명이 궁 밖을 지키고 있는 근위병 앞에 가서 선다. 그리고 둘이 마주 보고 돌더니 교체를 해서 들어간다. 선임이 후임을 데리고 나와서 다른 후임과 교체해서 데리고 들어가는 모양이다. 두 명이서 마주 보고 도는 모습을 보자니 내가 다 민망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왕궁 밑으로 골목길을 따라 내려오면 모나코 대성당이 있다. 13세기 건립된 성니콜라 교회가 있던 자리에 1975년 다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새로 성당을 지었다. 모나코 대공 레니에 3세와 '현대판 신데렐라' 그레이스 켈리가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던 곳이다. 

그레이스 켈리는 유복한 아일랜드계 미국인 가톨릭 집안에서 출생하여, 22세에 영화계에 데뷔했다. 연기력도 인정받아 알프레드 히치콕과도 함께 작업하는 등, 총 11편의 내로라하는 작품에 참여했다. 작품에 같이 출연했던 거의 모든 상대 남성배우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하는 가십의 대명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한국 등 동양에서 너무나 확고하게 정숙하고 지고지순한 이미지로 왜곡된 것이 신기하다. 그레이스 켈리가 "나는 기본적으로 페미니스트다. 여성은 자신이 결정한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나는 끊임없이 사랑에 빠졌고 그것이 잘못되었다거나 나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금사빠였던 것은 사실이고, 시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성별에 관해 굉장히 선구적인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1955년 칸 영화제에 참석한 그레이스 켈리는 레니에 3세 대공을 처음 만나 모나코 궁을 산책하며 소개팅을 했다. 레니에 3세는 같은 해 12월 그에게 청혼한다. 그레이스 켈리의 약혼반지는 10캐럿이 넘는 다이아몬드 반지라니 가격은 둘째치고 손가락에 끼울 수 있을 만한 것인지 모르겠다. 둘은 이듬해 4월 결혼식을 올렸다. 그레이스 켈리는 1남 2녀를 출산하면서 모나코의 왕실도 지키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할 줄 알았으나, 불편한 시집살이에 남편의 까탈스럽고 괴팍한 성격까지 더해져 부부생활 대부분이 불행하게 흘러갔으며, 52세에 별장에서 모나코로 복귀하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그가 찍은 영화 중 기다란 스카프를 휘날리며 드라이브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마치 그 장면처럼 죽는 순간까지도 드라마틱한 삶이었네. 결혼 후에 배우로 다시 복귀하려고도 해 봤으나 무산되어 결국 1956년 결혼 직전에 찍었던 <상류사회>가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그레이스 켈리가 낳은 딸 카롤린이 낳은 아들이 안드레아 카시라기인데, 외할머니의 미모를 쏙 빼닮아 1990년대에 절세미남이라고 인기가 대단했다. 잘 생긴 진짜 왕자라니, 현대판 신데렐라가 결혼해서 21세기판 백마 탄 왕자님을 낳았다. 뭇 여성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그도 나이가 드니 머리가 벗어지기 시작했다. 




일설에 의하면 미국 여배우와 모나코 대공간 혼인의 배경에는 그리스 선박왕 아리스토틀 오나시스가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실마리는 모나코가 왕국이 아니라 공국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모나코는 공국이므로 정식군대가 없이, 국방과 외교를 프랑스에 의존한다. 영토는 작고, 인구 대부분은 프랑스계이고, 관광업이 주요 산업이라 했지만 1940년대에는 그마저도 시들시들해졌다. 유로화 이전 화폐는 프랑스와 같은 프랑화였다. 대공의 지위는 프랑스의 승인 하에 유지되고, 프랑스는 호시탐탐 모나코를 병합하고자 노리고 있었다. 모나코의 실권은 지역유지 오나시스가 장악하고 있었고, 1949년 레니에 3세 대공은 이곳 모나코, 공식 실권은 프랑스에 있고 비공식 실권은 오나시스에게 있는 휴양명소의 바지사장으로 취임했다. 레니에 3세의 취임에 맞추어, 프랑스는 이후 후계가 없을 경우 바로 '병합 진행시켜!'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오나시스는 자기 말이 곧 법이고 세금도 안 내도 되는 모나코를 호락호락하게 프랑스에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위기 타계책으로서 레니에 3세의 후계를 만들면서 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다는 방안을 세우고, 레니에 3세에게 할리우드 미녀 배우와 결혼할 것을 종용하였다. 메릴린 먼로, 오드리 헵번 등 역사적 배우들을 제치고 레니에 3세는 그레이스 켈리를 선택했고, 그레이스 켈리도 이에 응했다. "더 어렸을 때 남편을 만났다면 결혼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적절한 시기에 만났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그레이스 켈리도 결혼에 대해 전략적인 접근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그레이스 켈리는 공비라는 인생 최후이고 최대이자 최고의 영예를 얻었고, 레니에 3세와 오나시스는 모나코를 합병 위기에서 구해냈다. 위기였는지 기회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니, 어쩌면 프랑스가 실제 합병할 생각이 있었는지도 미궁이지만 어쨌든 모나코는 그레이스 켈리를 기점으로 폭발적인 관심사와 인기의 대상이 되었고, 결혼 이벤트는 말 그대로 세기의 이벤트라고 할 만했다.




그레이스 켈리는 흠잡을 데 없는 외모로도 유명했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도 받았을 정도로 연기력도 좋은 배우였지만, 짧은 배우 경력보다는 패션 스타일로 더 유명하다. 1950년대는 물론 20세기의 패션 아이콘으로 꼽힐 정도로 현재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스타일의 대명사이다. 우아하게 휘감는 공단 드레스부터 고전적인 정장은 물론 촤르르 퍼지는 플레어 원피스까지, 다이애나비 이전 최고의 연예신문 주인공이었다. 우아한 미모에 잘 어울리는 상류층 여성스러운 패션감각이 결합했으니 당연한 귀결인 듯하다. 예술적 감각도 뛰어나서 당시 축구단 AS모나코의 유니폼인 흰색과 빨간색의 대각선 디자인을 직접 하기도 했고, 이 디자인 전통은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그레이스 켈리의 서명을 보면 실제로도 귀여운 글씨체인 것 같아 그림도 곧잘 그렸을 듯하다. 

뭐니 뭐니 해도 그레이스 켈리의 대표작은 웨딩드레스와 켈리백일 것이다. 웨딩드레스의 전설이라 불리는 그레이스 켈리 웨딩드레스는 긴팔의 레이스 상의가 가슴부터 목까지 빠짐없이 단추를 채워 절제미를 강조하면서도 허리를 꽉 조여 여성성을 드러내어 미묘한 조화를 이루는 한편, 소녀 같은 느낌을 극대화하는 벨 모양의 단아한 공단 스커트가 결합한 형태이다. 청순과 우아, 관능과 고혹을 모두 아낌없이 드러냈다. 2011년 결혼한 영국 왕세자비까지 참고할 정도로 웨딩드레스의 고전, 웨딩드레스의 정석이 되었다. 

지금은 '켈리백'이 된 에르메스의 여성용 가죽백은 1956년 그레이스 켈리가 임신했을 때 단순히 큰 배를 가리기 위한 큰 가방이었다. 그레이스 켈리가 이 토트백으로 배를 가린 사진이 <라이프>지에 게재되면서, 삽시간에 센세이션이 되었다. 한 순간만 화제가 된 것이 아니고, 그 이후로 거의 70년간 지속되는 유행이 되었다. 이제는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스타일, 하나의 양식이 되었다. 이제 이 가방은 차 한 대 값과 맞먹는 가격이 되었고, 그마저도 누구나 살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 켈리백은 상품이 아니라, 소장품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켈리백을 구매할 수 있는 자격요건, 백을 구매하기 위해 에르메스에 바쳐야 하는 충성료, 매장 매니저와 친분을 쌓는 방법, 켈리백이 많이 있는 매장, 켈리백 득템 후기와 실황 등 다양한 정보가 퍼져 있다. 인기와 희소성으로 따지면 롤스로이스, 벤틀리와 비교해도 될 정도이다.




모나코 성당 앞쪽에 아름다운 건물이 해양박물관이다. F1 관람석을 보려고 언덕 밑으로 내려왔는데, 관람석은 찾을 수 없고 항구에 크리스마스마켓이 보였다. 모나코 크리스마스마켓은 기괴한 동물, 상상의 생물 같은 인형을 많이 세워두었다. 인형들은 구동장치까지 있었다. 뭔가 부잣집 냄새가 났다. 항구 쪽에서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한두 방울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단은 비를 피해 니스로 돌아왔다. 트립어드바이저에서는 모나코가 일 년 중 350일 일광이 난다고 했는데, 나는 어쩌자고 비 오는 날 모나코를 갔을까. 반나절을 여행했음에도 쓸 이야기는 그레이스 켈리밖에 없는 곳, 이곳이 모나코이다.

니스로 돌아와 마세나 광장을 둘러보았다. 유럽 어느 나라나 광장은 온 동네 사람 모두 모이는 곳이기는 하지만 프랑스는 특히 광장이 말 그대로 동네회관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부활절이나 다른 행사 때는 모르겠지만 일단 크리스마스에 프랑스 광장들은 하나같이 적용받는 듯한 기본 키트 아이템이 있다. 대관람차와 회전목마이다. 저 멀리 화려한 불빛과 아기자기한 음향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대관람차가 있어 호기심에 따라가 보면, 알전구를 달고 졸졸이 선 크리스마스마켓 상점들이 손님들을 '어서 옵쇼!' 하고 반긴다. 호객행위로써는 대단히 성공적이고 효율적이다. 대관람차와 크리스마스마켓이 선 광장이 없는 프랑스의 크리스마스는 상상하기 힘든 것 같다. 이곳 니스에는 광장에 추가로 아이스링크까지 설치해 놓았다. 광장 사방에서는 캐럴음악이 들려온다. 크리스마스에 별 감흥이 없는 사람도 강제주입식 감상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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