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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대협 May 23. 2024

인생은 라파엘로처럼, 수명은 빼고

DAY 3 바티칸 시국 투어 

<라파엘로의 방>에 들어섰다. 라파엘로 산치오는 4월 6일(1483년) 출생하여 4월 6일(1520년) 사망했다. 특이하게 생몰일이 똑같은데, 실제로 그런지 혹은 비범한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하여 기록의 오류를 허용한 건지 모르겠다. 문화도시 우르비노에서 궁정화가의 아들로 태어나 최고의 공방에서 도제 수업을 받고 나라 제일의 도시로 유학 갔다. 타고난 천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천재로 길러졌다. 피렌체로 유학 가서는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미켈란젤로에게서 인체해부학에 대한 지식을,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서 소실점, 광원, 스푸마토 기법 등을 익혔다. 마주 앉아 배운 것은 아니고, 어깨너머로 흘끔흘끔 가져왔다. 거장의 어깨에 올라서서 스스로의 재능을 발전시킨 라파엘로는 치밀하고 정교하면서도 주제전달력이 뛰어난 완성도 높은 작품을 창작했다. 특기는 '성 모자(聖 母子)'이다. 인자하고 참한 전형적인 자모의 형상을 한 성모마리아와 순수하면서도 의젓한 예수의 모습은 후대 성 모자상의 정석이 되었다.

명성을 높인 라파엘로는 로마 교황청에 입성한다. 라파엘로도 역시나 미소년이었나 보다. 뛰어난 실력, 조직생활에 잘 맞는 온화한 성격, 수려한 외모로 공직생활의 앞길은 창창했고 여생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교황의 총애를 받으면서 교황의 서재에 그의 인생 아니, 전 인류의 역작이라 할 만한 <아테네 학당>을 완성시켰다. 베드로 대성당의 개축도 담당했다. 당시 교황 궁전, 현 바티칸 박물관의 <라파엘로의 방>도 완성했다. 매일 안료와 돌가루 속에서 살았다. 로마는 호흡기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 절대 좋지 않은 장소였다. 라파엘로는 가장 높은 지위에 올라서 가장 활발한 작업을 해야 할 서른일곱에, 가장 안타깝게 죽었다. 그는 미완성 유작 <그리스도의 변용> 앞에서 죽었다. 라파엘로는 별을 보러 매일 가던 판테온에 묻혔다. 

여느 천재가 겪는 일이듯, 라파엘로 천재성에 대하여 수세기동안 의견이 분분했다. 미켈란젤로는 라파엘로가 '선천적인 천재가 아니라 노력형'이라고 했다. 벨라스케스는 그가 '진부하고 구식'이라고 했다. 독일 미술계는 그의 그림이 '지극히 평범'하다고 했다. '라파엘전파(Pre Raphaellite)'는 대놓고 '라파엘로 이전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하지만 베르니니는 후배작가들에게 '라파엘로 발뒤꿈치에라도 미치리라는 생각을 버리라'라고 했다. 조르지오 바사리는 '라파엘로가 미켈란젤로의 유일한 라이벌'이라고 했다. 조슈아 레이놀즈는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 중 '더 높은 예술의 질에 도달'한 것은 라파엘로라고 했다. 

지금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까. 누구보다도 바티칸이 인정한 바티칸의 아이돌이다. 입장권에 <아테네학당>을 새겨 넣었다. 그에 대한 박한 평가에는 윤택하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배양되었던 천재성에 대한 일종의 질투심이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라파엘로가 인간으로서 아무 특징 없는 존재였다면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또 달라지지 않았을까. 어쨌든 그가 그린 초상화를 보면, 피부와 직물소재, 광원에 대한 묘사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라파엘로는 따뜻하고 명랑한 이미지 그 자체이고, '빛의 화가' 그 자체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로 산치오 세 천재 간의 사이가 어떠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누구에게나 퉁명스럽고 고집 세고 독불장군이었던 미켈란젤로가 나머지 두 명과도 잘 지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인 가운데, 라파엘로는 다빈치를 추종했고 미켈란젤로 역시도 능력면에서는 존경했을 것이라고 한다. 미켈란젤로와 비슷한 내 성격상 다빈치 같은 거장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합리화하게 되고, 라파엘로 같은 아이돌은 본능적으로 적대감이 든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동시에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 작업에 투입되었을 때, 미켈란젤로는 라파엘로에게 적대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대성당 건축 총책임자였던 브라만테와 동향인 라파엘로가 바티칸에 입성하여 자신과 경쟁구도가 형성된 것이 두 인간의 협잡 모략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자신과는 정반대로 우수한 외모에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어디에서나 좋은 평판을 듣는 라파엘로를 두고, 사실은 뒤로 호박씨 까고 잘난 척하고 돈 걱정 안 해본 철부지인 데다가 남의 기술만 베끼는 얌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라파엘로는 <라파엘로의 방>을 작업하고,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작업한다.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 작업 당시 누구도 작품을 봐서는 안된다는 조건을 건 것은 아마 라파엘로에 대한 견제가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 일 모른다고 미켈란젤로가 작업을 쉬던 기회에 라파엘로는 천지창조를 봐 버렸고, 미켈란젤로가 그린 인체에 매료되어 자신의 작품에도 그 화풍을 덧입힌다. 

일설에는 라파엘로가 다빈치를 만나기 위해 피렌체에 갔으나 우연히 다빈치가 미켈란젤로와의 경쟁으로 피렌체를 떠나버렸고, 라파엘로도 이 때문에 미켈란젤로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라파엘로가 <아테네 학당>에 헤라클리투스의 모델로 고뇌에 찬 미켈란젤로를 그린 것으로 보아, 미켈란젤로를 존경하거나 적어도 실력을 존중했을 것이라는 예상이 든다. 누가 뭐래도 르네상스 세 대가를 한 작품에 넣음으로써, '3대장'의 정의를 굳힌 것은 라파엘로이다.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 사이에 경쟁과 대립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라파엘로는 화합의 장본인이었다. 역시나 처신을 잘하는 것인지, 실제 천성이 착한 것인지 라파엘로는 후대에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알리바이를 남겨두었다.

 <아테네 학당>에 넉살 좋게 베끼는 것도 능력이라는 설득할 듯한 라파엘로 특유의 대담하고 명랑한 천성을 보여주면서, 그러니까 자신도 능력 있는 화가라고 주장하는 재치를 보여주는 인물이 있다. 계단 한쪽에서 골똘히 연구에 몰입한 피타고라스의 어깨너머로 흘끗 훔쳐보면서 자기 공책에 베껴 적고 있는 이븐 루시드이다.




한편 <라파엘로의 방> 중 첫 번째인 '콘스탄티누스의 방'은 깜짝 놀랄만한 곳이었다. 기독교의 득세와 이교도의 종말을 주제로 그려진 천장화의 그림은 이랬다. 고풍스럽게 장식되어 텅 비어있는 궁전의 홀 한가운데 석상이 기단부에서 떨어져 산산조각 나 있다. 이교도를 상징하는 석상이 떨어져 완전히 파괴된 버린 것이다. 깨끗하고 웅장한 넓은 방과 파괴된 석상이 주는 대조적 이미지는 충격적이었다. 몇 백 년 전의 사람이 이렇게나 참신하고 인상적인 상징 묘사를 할 수 있다니. 요즘 시대 어느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놀랍도록 기이하면서 참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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