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지독한 시기
1.
몇 달째 매일매일 막차를 타고 퇴근을 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새벽에 업무를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거의 일주일에 3일 이상 새벽에 업무를 하고 심지어 하루는 새벽 1시에 시작해 오전 10시에 업무가 끝난 적도 있었다. 나만 그런 건 아니고, 거의 모든 팀원들이 정말 높은 강도의 업무를 몇 달째 지속하고 있다. 이런 생활을 몇 달 동안 하다 보니, 내가 스스로 뭘 배웠는지 잘 모르겠다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든다.
2.
업무 강도가 이렇게 강하지 않았을 때는 하나의 업무나 사건을 천천히 곱씹고 이를 글로 쓰는 과정을 꾸준히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스스로 조금씩이나마 내 실력과 내공이 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또 엄청 많은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 달에 한 권씩 책을 읽고 중요한 부분을 또 요약하면서 지식도 조금씩 천천히 늘려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3.
매일 높은 업무 강도를 몇 달째 지속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지쳤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 최근 들어서 더 잦아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하나의 업무와 사건을 곱씹어서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을 찾는 시간을 내기도 어렵고, 그 과정 자체가 힘들어서, 회고를 하고 글을 쓰는 시간이 줄었다. 책 읽는 시간이야 말할 것도 없고.
4.
스스로 회고하는 글을 쓰는 시간이 적어져서 그런지, 소위 말해 이렇게 몸과 시간을 갈아 넣으면서 일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나는 뭘 배우고 있는지 어떤 내공과 실력을 기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불안감이 생겼다. 그냥 사회, 회사에서 버티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있고.
5.
몸은 언제나 피곤한 상태에서 내가 놓친 게 있지는 않을까 하는 업무에 대한 불안감, 뭘 배웠는지 모르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 실수하고 싶지 않다는 강박,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받기 싫다는 두려움 등등이 켜켜이 쌓여나갔다. 그래서 비난이 아닌 비판에도 쉽게 움츠러들었고, 반대로 누군가 칭찬을 해도 괜스레 위로차 하는 말이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괜한 반발심만 들었다. 마치 사춘기 때의 심리처럼 너가 뭘 알아! 하는 느낌이랄까.
6.
일주일 정도 휴가를 갔다 온다고 해도, 온전히 몸과 마음을 회복할 자신이 없다. 그러다 보니 휴가는 행복하게, 아니 불안하지 않은 상태에서 쓰고 싶어서 정말 아플 때만 한번 정도 쓰지 회복을 위한 휴가도 잘 쓰지 않는다.
7.
이 모든 생각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상황과 사람과 현실이 아닌 것 같다' 정도가 되는 듯싶다. 이런 생각들을 말하면 주변에서는 번아웃이 왔다고 말한다. 사실 번아웃보다는 슬럼프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이 슬럼프가 예상과 다르게 빨리 끝날지, 아니면 더 오래갈지 아직은 가늠이 되질 않는다. 이 슬럼프의 구간을 버틸 힘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매일 한다. 그리고 어찌어찌 매일,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버티는 느낌으로 매일을 맞이한다.
8.
회사에 가면서 차라리 죽지 않을 만큼만 다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첫 회사에서도 똑같은 생각을 한 기간이 있었다. 그때는 결국 버티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버틸 수 있을까 아니면 이번에도 버티지 못할까 생각하다가, '역시 난 안 되겠어'라는 말을 속으로 수없이 되뇌다가도 할 일을 꾸역꾸역 한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미화된다고 하지만, 첫 회사에서 출근하다가 다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시기는 사실 그렇게 나에게 미화되지는 않는다. 아마 미래에 되돌아보면 지금의 시기도 미화가 될까 싶긴 하다.
9.
이 글의 결론이라면 지금 내가 감당하기 벅찬 상황과 사람, 현실 속에 놓여 있고 그 속에서 아등바등 버티느라 힘겹다는 것. 딱 그것뿐인 것 같다. 그냥 가끔 이렇게 두서없이 털어놓는 글도 좀 써야겠다 싶다는 생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