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풀로 강제소집 당한 날
때는 목요일이었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어머님들의 아쿠아로빅 수업을 창가 너머로 보고 해 보는 거지 뭐 하는 마음으로 덜컥 강습을 등록했다. 뒤돌아서 나오려는데 안내데스크옆 수영복과 수경전시가 눈에 띄었다. 아차 수영복이 없네. 그렇다고 외국에서 산 비키니를 입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긴 대한민국의 실내 수영장이다. 정신 차리자라고 데 뇌이며, 수영장 입구에 크게 붙은 복장규격사항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강습 첫날부터 복장 때문에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어떤 걸 입어야 하나 하고 진열대를 보던 중, 지금은 입지 않는 9부 수영복이 눈에 띄었다. 우락부락한 팔뚝을 가릴 수는 없지만, 예뻐 보이기는커녕 크기만 큰 가슴, 가슴만큼 나온 거 같아 보이는 불룩 배를 가릴 수 있겠거니 했다. 검은색으로 입으면 되나 하던 중 티브이에서 자주 보던 제주 해녀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수영장 바닥에서 조개를 캘 것도 아니었기에 검은색은 패스했다. 남색바탕에 연두색, 하늘색 물방울들이 잔잔히 퍼져있는 수영복을 보고, 이 정도면 무난하지 않을까 했다. 적당해 보이는 아레나 수경도 사고, 자그마한 하늘색 아레나 가방까지 결제를 하고 집으로 왔다.
다음 주부터 운동 시작이구나.
수업은 월요일부터 시작이었다.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오후 6시 반이었다. 수영복과 용품을 들고, 세면장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수영복을 입으려는데, 바스락거리는 수영복은 살짝 젖은 내 살갗 위에서 달라붙어 의도치 않게 줄다리기에 들어갔다. 그러자 뒤에서 샤워하고 계시던 어머님 한분께서 말씀해 주셨다. 수영복에 비누칠하면 잘 들어가요. 그러고 같이 씻어내면 되잖아. 유레카. 그렇구나. 수영모자까지 반듯하게 쓰고, 긴장반 설렘반 수영장으로 갔다. 우리 반 선생님으로 보이는 앳되어 보이는 선생님 한분이 다가와 말을 거셨다.
“처음 오셨나요? 수영 배우신 적 있어요?”
“네, 저 초등학교 때 잠깐 배웠어요. 배영까지요.”
“아 네, 저희 체조하고 이쪽으로 모일게요.”
간단한 10분 체조가 시작되었고, 선생님이 말한 이쪽을 보고 당황했다. 유아풀이었다. 수심이 무릎도 안 되는 유아풀에 모이라고 하신 거다. 내가 말하는 걸 못 들으신 걸까? 그래도 수영장에서 자유형도 하고, 배영도 하는데. 유아풀에서 수영이라니. 황당했다. 여기서 뭘 한다는 거지. 분명 초등학교 때도 1m 깊이에서 수업을 했고, 1.25m 까지도 갔었다. 깨금발을 해가면서도 물에 떠있었고, 바다에서도 수영을 해왔던 터라 이런 푸대접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속에서는 의심의 거품이 부글부글 일어났지만, 티를 안 내려 애썼다. 체조를 마친 선생님이 다가오시더니 다섯 명 남짓되는 반 분들을 둘러보면서 급 자기소개를 시키기 시작했다. 통성명과 나이까지 덧붙이는 오글거림에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3개월 강습비에 발이 묶여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3개월부터 들어간 DC에 코가 끼었다.) 부끄러운 소개시간이 끝나고, 자그마한 유아풀에 몸을 담그고 팔로만 딛고 물에 뜨는 연습을 했다. 계속 이상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왜 여기 있는 거지 싶은. 물에 뜨는 연습을 한 후, 힘차게 발차기를 했다. 유아풀물을 다 퍼낼 기세로 위아래로 마구마구 차라는 선생님의 말을 잘 따르는 5명의 학생들은 새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유아풀분수를 만들어냈다. 30분 남짓 시키니까 한다의 훈련을 반복한 후, 선생님은 기본 레인으로 강습생들을 인솔했다. 그렇지 그래야지 뒤따라 들어가서는 초등학교 당시 첫 강습을 했던 숨참고 물에 뜨는 연습을 했다. 숨을 한껏 들이마시고, 몸을 동그랗게 다리를 감싸며 말아 올리면 물속에서 몸은 부표처럼 동동 표면에 띄어 오른다.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내기 아닌 내기를 하고, 코에서 날숨이 뽀글뽀글 올라가는 걸 지켜봤다. 물속의 시간은 슬로 모션처럼 느리게 지나간다 마치 다른 스피드를 걸어놓은 장면들처럼. 잠시 후,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을 때 땅에 발을 딛고 일어났다. 자 여러분 잘하셨어요. 여기까지 하시면 이제 수영을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간혹 물을 무서워하시는 분들도 있어서 진행된 물과 친해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한다. 당시에는 이거 너무 쉬운데, 강습 맞나 싶었지만. 초급이고 첫 단계는 일단 환경과 친해져야 하는 게 맞으리라. 추후에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굳이 그 초급반에 들어갈 필요까지는 없었다고 한다. 중급반부터 시작해도 되었는데. 배영까지 했다고 했지만 편차가 너무 커서 그냥 처음으로 들어간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구구절절할 줄 안다고 선생님께 건의드리지도 않았으니. 남아있게 되었고, 추후 2주일 뒤에는 물에 떠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자 선생님은 나를 포함 2명을 중급반으로 올려 보냈다. 우리가 옆레인으로 간다고 하니 그 긴 25미터를 3명이서 왔다 갔다 수업해야 된다고 애처롭게 바라보던 다른 회원님들의 모습이 흐릿하게나마 생각난다. 그분들은 아직도 수영을 하고 계신지도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