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균 미국변호사 Mar 31. 2021

형사변호사의 관점에서 본 증오범죄 피해자의 행동요령

검사가 좋아하는(=피고인 변호사가 싫어하는) 슬기로운 피해자가 되는 법

<source: https://www.wbur.org/hereandnow/2021/03/23/hate-crimes-definition>

미국에서는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아시아계 이민자에 대한 증오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겠지만, 당장 단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형사 처벌이 증오범죄의 가장 큰 억제력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업무상 형사 사건의 피고인(가해자)를 주로 대리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내가 만약 증오범죄의 피해자가 된다면 어떻게 해야 가해자가 정당한 법의 처벌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고민 끝에 이 포스팅을 작성하게 됐다. 이 글의 부제는 "검사가 좋아하는(=피고인 변호사가 싫어하는) 피해자 되는 방법"라고 볼 수 있다.


우선,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증오범죄(hate crime)의 정의는 "인종, 피부색, 종교, 출신, 성 정체성, 성별, 혹은 장애가 동기가 된 범죄행위"를 말한다. 가장 쉬운 예로, 길을 가다가 아시아계라는 이유만으로 폭행을 당하는 경우, 이를 증오범죄라고 규정할 수 있다. 사실 증오범죄는 아주 예전부터 형법 상에 존재했던 개념이지만, 그 동안 검사나 경찰관들에 의해서 활발하게 적용되진 않았다. 왜냐면 특정 범죄의 동기가 위에 열거된 사유 중에 하나라는 것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며 이는 매우 민감한 문제라서, 행여나 증오범죄로 기소했다가 나중에 유죄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오히려 검사가 "섣불리 인종문제로 단정지었다"며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해자 입장에서는 검사가 증오범죄 행위를 법정에서 입증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법상 유죄 입증의 기준은 그 어느 사건의 입증 기준보다 높고(beyond reasonable doubt), 복잡한 형사 절차를 지키며 엄격한 증거법에 따라 증거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형사 변호인들은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여 기소를 방어한다. 뒤집어 보면 범죄의 피해자가 된 경우 어떻게 해야 가해자의 형사 처벌의 확률을 높일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1. 항상 본인 외에 다른 목격자가 있으면 좋다. 물론 증오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만약에 증오범죄의 피해자가 된 경우, 본인 외의 지인이나 행인 등 제3의 목격자가 있다면 이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면 같은 사건이라도 범죄 행위를 목격한 사람이 많으면 많을 수록 검사 입장에서 이를 입증하기가 쉽고, 반대로 형사 변호사 입장에서는 다수의 증인을 모두 반박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목격자는 피해자와 혈연이나 고용관계 등 직접적인 친분이 적으면 적을수록 유리하다. 형사 변호사가 증인을 반대신문 할 때 자주 거론되는 주제가 증인과 피해자의 이해관계인데, 만약 이 둘의 관계가 깊으면 깊을수록 증언의 신빙성을 공격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변호인: 증인은 피해자의 부모죠?

증인: 네

변호인: 그러면 자녀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겠네요?

증인: 네

변호인: 그러면 자녀를 위해서도 거짓말을 할 수도 있겠네요?

증인: ...

(이 경우 증인이 "아니오"라고 답변을 하더라도 이미 판사나 배심원의 머릿 속엔 증인과 피해자의 혈연관계가 진술의 신빙성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하게 된다)


2. 가해자의 인상 착의를 정확하게 파악하자. 범죄 피해를 당했을 경우, 경찰 신고를 위해서도 인상 착의를 알아두는 것이 필요하지만 나중에 법정에서 가해자를 지목(identification)하는 데도 중요한 정보가 된다. 아무리 검사 입장에서 범죄 행위가 일어났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더라도, 그 행위자를 정확하게 지목하지 못하면 범죄 입증이 될 수 없다. (즉, 피해자가 누군가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은 명백한데, 그 "누군가"가 법정에 서 있는 피고인이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인 가해자의 인종, 나이, 체격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입고 있던 옷(티셔츠 문구나 문양)이나 특정한 신체적 특징(문신, 흉터 등)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왜냐면 형사 변호인 입장에서 피해자의 최초 신고로 출동한 경찰관이 충분한 증거 없이 무리하게 가해자를 체포할 경우, 이는 수정헌법 4조에 명시된 불법 체포를 받지 않을 권리 위반으로 사건 전체를 기각 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3. 사건에 대한 기록을 정확하게 남긴다. 요즘은 워낙 스마트폰이 보급화 되어 있기 때문에, 상당 수의 범행 현장을 카메라로 녹화할 수 있다. 만약 본인이 피해를 입는 범행 장면을 직접 비디오로 녹화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주변의 CCTV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최대한 관련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경찰 신고가 들어가면 경찰관이 관련 증거를 수집하려 하겠지만, 피해자만큼 적극적이거나 자세한 기억을 할 수 없는 만큼 본인이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본인이 당한 범죄의 내용을 가급적이면 구체적으로 글로 자세하게 기록해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가해자의 범죄 행위와 발언 내용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왜냐면 가해자의 발언(특히 인종차별적 표현)은 범죄동기 입증에 중요한 단서가 되며, 이는 일반적으로 전문증거의 법칙에도 위반되지 않기 때문이다(party admission). 피해자의 기록도 사건 발생 시점과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전문증거의 예외 적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recorded recollection). 만약 신체적 피해를 입은 경우 최대한 빨리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피해 부위를 촬영하고 병원 치료를 받았으면 의사의 진단서와 병원비 지불내역 등을 잘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


4. 보복이나 반격을 하지 않는다. 폭행 사건에서 형사 변호사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전략 중에 하나가 "정당방위(self defense)"나 "쌍방폭행(mutual combat)"을 주장하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흔히 정당방위와 보복(revenge)을 혼동하는데, 누가 나를 한 번 때렸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을 때리면 그것은 정당방위가 아니라 보복 혹은 쌍방폭행이 되는 것이다. 정당방위는 예상된 폭력 행위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비례적 선제 공격의 경우만을 의미하기 때문에, 내가 폭행을 당했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보복을 가하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자신도 가해자"라는 식의 주장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가급적 자리를 피하되, 보복이나 반격을 하지 않는 것이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할 수 방법이다.


 5. 경찰과 검사에 협조하되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인다. 경찰에 신고를 했다면, 자신의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관의 명함을 받아두거나 최소한 소속, 이름, 배지넘버를 알아둬야 한다. 더불어 경찰관과 인터뷰를 할 때마다 일시와 내용을 기록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사건의 진행 상황을 알 수 있고, 만약에 담당 경찰관이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은 경우 이를 해소하기기 쉽다. 추가적으로 경찰관이 작성한 사건 보고서(police report)의 사본을 받아서 본인이 진술한 내용이나 사실 관계가 정확한지 확인해야 한다. 검사는 기본적으로 경찰관의 진술과 사건 보고서에 많은 비중을 두기 때문이다. 


한편 가해자가 기소되어 법원에서 형사 사건이 진행되는 경우, 담당 검사가 누군지 파악하고 법원 출석 날짜나 시간 등에 대하여 지속적인 연락을 통해 긴밀하게 협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증인으로 법원 출석이 예정되어 있으면, 사건 번호와 법정, 담당 판사 등을 숙지하고 틈틈이 자신의 사건 일정에 변화는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하루에 수십 건의 형사 사건들이 피해자 불출석으로 기소가 취소되거나 기각 되는데 검사 입장에서는 증인의 출석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기가 쉽지 않고, 아주 심각한 사건이 아닌 경우 의외로 증인 확보에 그렇게 열성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6. 피해자 변호인을 선임한다. 피해자가 변호인을 선임하면 위에 언급한 내용에 대한 적절한 조언과 대리를 받을 수 있다. 특히 형사 사건절차에 익숙한 변호인의 경우, 가해자가 적절한 처벌을 받고 의뢰인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경찰관이나 검사에게 협조할 수 있다. 한편으로 피해자 변호인의 존재 자체가 이들에게 사건의 중대성(?)을 간접적으로 암시하여 수사 및 공소유지에 충실히 매진하도록 하는 촉진제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혹시나 피해자가 자신도 모르게 수사 및 재판 협조 과정에서 위증이나 증거인멸 등을 저지르지 않도록 도와주며, 나중에 민사배상을 청구할 계획이 있는 경우, 형사 사건부터 초기에 개입함으로써 민사소송에 유리한 증거 및 증언을 미리 확보할 수도 있다. 만약 변호인을 선임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면, 검사 사무실에 존재하는 피해자 담당직원(보통 Victim Specialist라고 부른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아무래도 이들 직원은 소속된 검사실의 이해관계와 변호사가 아니라는 점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


증오범죄 피해자가 위의 6가지 사항을 제대로 준수한다면, 검사가 증오범죄를 입증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증오범죄를 억제하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피고인을 대리하는 변호인에겐 악몽일 것이다)

이전 13화 변호사가 보수로 현금을 마다하는(해야 하는)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