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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May 05. 2021

변호사가 보수로 현금을 마다하는(해야 하는)이유

법잘알변호사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자가 될 수 있다.

시나리오: 미국에 있는 변호사 A의 사무실에 걸려온 전화 한 통. 새로운 의뢰인이다. 해당 변호사의 전문성과 관련 없는 사건인데, 의뢰인이 매우 급하게 변호사를 찾고 있는 것 같다. 내용은 부동산 투자 관련 자문. 다뤄본 적은 없는 분야지만 관심이 있다. 다만 관련 법을 공부하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수임료를 $27,000로 꽤 높게 불렀다. 의뢰인이 망설임도 없이 수락했다. 단, 조건은 현금(즉, 수표나 계좌 이체가 아닌)으로 3차례에 걸쳐서($9,000*3회) 수임료를 지불하는 것이다. 현금이면 오히려 더 좋겠다 싶어서 당장 수임했다. 실제로 의뢰인은 변호사 사무실에 등장해서 현금 뭉치로 수임료를 3회에 걸쳐 결제했다.


며칠이 지난 뒤, 갑자기 의뢰인이 다른 변호사를 수임하기로 했다며 착수금 환불을 요구했다. 하는 수 없이 환불 수수료를 조금 제외하고, 나머지 금액을 법인 수표로 의뢰인에게 보내줬다. 이 모든 상황에서 딱히 문제가 될만한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그러나 만약 의뢰인이 알고 보면 거대 범죄 조직에서 자금 세탁을 담당하는 조직원이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변호사 A는 자신도 모르게 자금 세탁의 도구가 되었으며, 자금 세탁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크다. 


범죄자 입장으로 돌아가 보자.


범죄 수익은 대부분 현금이다. 마약을 팔아서 번 돈, 강도행위로 얻은 돈, 매춘으로 번 돈 등은 대부분 현금이다. 현금은 아주 확실하고 편한 결제 수단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양이 많아지면 관리하기가 번거롭고 안전하지 못하다. 우리가 티브이나 영화에서 보는 범죄자는 항상 으슥한 공간에서 범죄를 꾸미거나 불량배들과 어울리는 사람들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그 사람들도 평소에는 우리처럼 스타벅스에서 커피 마시고, 맥도널드에서 버거 먹고, 영화관(요즘은 어렵지만)에서 영화 보는 평범한 생활을 즐긴다.


물론 범죄 수익으로 얻은 현금을 항상 들고 다니면서 결제할 수도 있지만, 아마존이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을 하려면 신용카드나 체크카드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범죄 수익을 은행계좌에 입금해야 한다. 그러나 범죄 수익에서 얻은 현금 다발을 그대로 본인의 이름으로 된 계좌에 입금한다면, 수상한 거래로 즉시 은행의 의심을 받고 조세나 경찰 당국에 신고가 들어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자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범죄 수익의 출처합법적인 것으로 바꿔야 하는데, 그 과정이 바로 자금세탁(money laundering)이다. 서두에 제시된 예시에서는 "출처가 불분명한 현금 다발"이 "변호사 착수금 환불액"으로 둔갑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자금 세탁 세 단계의 첫 단계, 배치(placement)에 해당된다. 즉, 현금을 공식 금융의 흐름에 처음 배치시키는 단계를 의미한다. 참고로 이후에는 은폐(layering)와 통합(integration) 단계가 있다.


범죄자가 변호사를 배치 단계의 도구로 택한 이유는 변호사의 기밀유지 의무(duty of confidentiality)의 보호를 받기 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변호사는 의뢰인의 타인에게 신분을 공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일반적으로 배치 단계에서 범죄자의 신분이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러한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위의 시나리오로 돌아가서, 범죄자가 변호사 사무실로부터 받은 수표를 가지고 자동차 판매업소에 가서 가짜 신분증으로 새 차를 구매다고 치자. 새 차를 구매하자마자 이를 중고차 시장에 판매하면, 구매자로부터 새로운 수표를 받게 된다. 이 과정이 바로 은폐(layering) 과정이다. 즉, 배치한 불법 자금을 여러 단계에 거쳐서 그 추적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배치와 은폐를 거쳐서, 이 자동차 판매대금에 해당하는 수표를 본인의 계좌에 입금한 뒤에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등의 일상 생활비에 사용하는 것이 바로 통합(integration) 단계가 되는 것이다. 즉, 세탁된 자금을 합법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다시 변호사 A의 관점으로 돌아가면, 변호사는 무엇을 잘못했을까?


첫 째, 본인의 전문성이 아닌 분야의 업무를 맡기는 의뢰인이, 급하게 많은 돈을, 그것도 현금으로 지불한다는 것에 무언가 수상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에 대해서 더 자세히 의뢰인에게 추가 질문을 했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점을 무시할 경우, 의도적 맹신(wilful blindness)을 가지고 실제 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둘째, 수임료가 $27,000이었는데, 이를 3회에 걸쳐서 나눠서 받은 것이다. 이는 미국 조세청(IRS)에서 요구하는 신고 의무를 피하기 위한 전형적인 현금 분할입금(structuring)이다. 이 신고 의무는 사업이나 비즈니스로 $10,000 이상의 현금을 받으면 이를 IRS Form 8300으로 보고하게 되어 있다. 만약 이를 위반할 경우, 최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5만 불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셋째, 의뢰인으로부터 받은 현금을 법인 계좌로 입금한 뒤에, 법인 수표로 환불을 해줌으로써 돈의 합법적 출처를 만들어 준 것이다. 만약에 현금을 수임료로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바로 받은 돈을 그대로 환불해줬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필자는 다행히도(?) 아직 이런 경우는 없었지만, 최근에 자금 세탁법을 공부하다 보니 이러한 시나리오가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에 포스팅을 작성하게 되었다. 자금 세탁은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도 수십·수백 가지 방법이 가능하기 때문에, 소규모 영세 상인이나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업가의 경우 행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자금 세탁의 도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자금 세탁? (사진 출처: https://ccnull.de/foto/fraud-and-money-laundering/1046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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