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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사건을 대리하는 변호사로 일하다 보면, 아주 드물게 현금으로 수임료를 지급하려는 의뢰인이 있다. 아무래도 업계가 업계(?)인지라 현금의 출처가 불분명한 현금 수임료를 받은 적은 없지만, 항상 궁금해하던 의문점이 있었다: "만약 마약거래나 불법 사기 등으로 번 범죄 수익금을 내가 떳떳하게 수임료로 받을 수 있는가?" 자금세탁법에 관한 내 관심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에 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에서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하여 읽어보던 중 "자금세탁 방지 전문가 자격증"(CAMS, Certified Anti-Money Laundering Specialist)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이 자격증은 미국 시카고에 본사를 둔 ACAMS라는 단체에서 주관하고 인증하는 자격증으로 자금세탁 분야에서는 업계 표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어떤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가장 효율적이며 정석대로 취득하는 방법은 해당 분야의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격증을 취득한다고 바로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취득과정에서 해당 분야에 대한 "필수적인, 최소한의 지식"을 가급적이면 빼놓지 않고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미국 테니스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한 것도 비슷한 이유이다. (관련 포스팅)
자금세탁 방지 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ACAMS 회원 가입(연회비: $295)
40점의 교육/경력 크레디트(예를 들어, 학사 학위는 20점, 석사는 30점, JD/Phd는 40점, 관련 업계 1년 근무당 10점 등) - 필자는 JD(juris doctor) 학위로 이미 40점 획득
CAMS 시험 패키지 구매(민간/공공부문, 온라인/현장 강의에 따라 가격이 다르지만 필자는 $1695) - 시험 패키지에는 12간의 의무 온라인 강의가 포함
CAMS 시험 응시 및 합격(다지 선다 120문제 중 최소 75문제 정답, 총 소요시간 3.5시간, 원격 응시 가능)
회원 가입과 시험 패키지를 구매한 시점이 4월 말이었고, 7월 초에 CAMS 시험에 합격하여 자격증을 받았으니 총 준비 기간은 2개월 정도 걸렸다. 총 소요시간으로 따지면 12시간 온라인 의무강의와 강의를 듣기 전에 예습 1시간, 강의를 모두 마치고 시험 준비하는데 약 8시간~10시간 정도를 들였으니, 대략 30시간 정도로 되는 것 같다. 물론 모든 과정은 영어로 진행되었고, 내 경우에는 이미 법률 지식이 있어서 자금세탁 방지법이나 관련 규정을 이해하는 부분에서 많은 시간이 단축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준비 시간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CAMS 시험은, 패키지를 구매하면 보내주는 316쪽 분량의 스터디 가이드(PDF)가 그 시작이자 끝이다. 나는 총 3 회독을 했던 것 같다. 1회는 12시간 의무강의를 듣기 전에 예습으로, 2회는 의무강의를 마친 뒤 전체적으로 흐름을 정리하기 위해, 3회는 마지막으로 내용의 디테일한 부분을 따로 기록하면서 외울 부분을 요약했다. 스터디 가이드는 총 4개의 챕터로 나눠지는데, 다음과 같다.
챕터 1 - 자금세탁의 기본개념 및 이에 노출된 각종 금융상품 및 서비스
챕터 2 - 자금세탁 및 테러지원 금융을 막기 위한 국제 규제 및 협약 등
챕터 3 - 자금세탁 및 테러지원 방지를 위한 준법 프로그램
챕터 4 - 내부 조사 실시 및 외부 수사에 대응하는 방법 등
일단 시험 패키지를 구매하면, 해당 패키지는 약 1년 동안 유효하다. 즉, 패키지를 구매한 뒤 1년 내에 시험에 응시해서 합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현장 시험보다는 온라인으로 시험을 응시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다. 다만, Pearson Vue라는 온라인 시험감독(proctor) 서비스를 이용해서 시험을 봐야 하는데, 안정적인 인터넷, 웹캠(모니터/랩탑 일체형보다는 분리형을 추천), 조용한 시험 공간 등이 필요하다.
시험은 대부분의 자격시험이 그렇듯이 스터디 가이드의 지엽적인 부분을 물어보는 암기 문제 + 종합적인 판단 문제가 주를 이룬다. 암기 문제는 예를 들어, "correspondent banking account와 payable through account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와 같은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이 있으면 풀 수 있는 문제와, "세 번째로 내려진 유럽 자금세탁 방지 지침(EU Directive)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같은 암기하지 않으면 전혀 풀 수 없는 문제로 구성되어있다.
종합적인 판단을 물어보는 문제의 경우, "당신은 시중 은행의 창구직원이다. 어느 날 거주지가 불분명한 고객이 외국 여권으로 계좌를 오픈한 뒤, 여러 장의 연속된 일련번호로 발급된 여행자 수표를 현금화하여, 이를 해외에 있는 친척들에게 송금하려고 한다.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등의 질문이 주를 이룬다. 정답을 고르기 위해서는 해당 사실 관계에서 자금세탁이 의심되는 정황을 파악하고, 해당 리스크의 정도에 따라 절차에 맞는 안내 및 보고 방법을 알아야 한다.
시험을 치르면서 좀 특이했던 것 중에 하나는, 다지 선다인데 정답이 하나가 아닌 경우가 여럿 있다는 것이다. 보기는 항상 4개가 나오지만, 종종 질문에서는 "맞는 것 2개를 고르시오" 혹은 심지어 "맞는 것 3개를 고르시오"(그럴 거면 "차라리 틀린 것 한 개를 고르시오"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왠지 모르지만 이런 문제가 가끔 나온다)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아주 가끔 제대로 집중하지 않으면, 아는 문제도 틀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문제 풀이 시 이 부분을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실제 주어진 시험 시간은 3.5시간이지만, 필자는 120문제를 다 푸는데 1시간 남짓 걸렸던 것 같다. 어차피 암기식 문제는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서, 최대한 빨리 풀면서 지나가고, 종합적 판단을 요구하는 문제는 사실 관계와 질문을 정확히 파악한 뒤에는,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답변을 주로 선택하는 식으로 하다 보니 그렇기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시험 결과는 문제를 다 풀자마다 알려 준다. 참고로 필자는 120문제 중에 85문제로 합격했다. (합격 기준은 75문제)
효용성
이 자격증을 가장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금융업무 종사자 혹은 종사 예정자인 것 같다. 아무래도 자금세탁 방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은행이나 금융업계가 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권 외에 자금세탁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 다른 분야, 즉 DNFBP(Designated Non-Financial Businesses and Professions)라고 불리는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는데, 여기에는
감사, 회계, 조세 업무 종사자
카지노 등 도박 사업 종사자
법인관리 서비스 업무 종사자
귀금속 및 보석 도·소매업자
변호사 및 공증업무 종사자
부동산 중개업 종사자
신탁(trust) 관련 종사자
등도 포함된다. (참고로 가상화폐/전자결제/환전·송금 관련 업무는 이미 앞서 말한 "금융업무"에 해당된다고 보면 된다)
한편,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열풍이 심화되는 가운데, 이들 화폐가 범죄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뉴스가 적잖게 나오고 기술이 발달됨에 따라 자금세탁의 기법도 국제화·전문화되어 가면서, 이를 제지하기 위한 관리 당국의 규제와 이에 대응하기 위한 업계의 이해관계로 말미암아 자금세탁 방지 전문가의 수효가 늘지 않을까 하는 나름대로 전망을 내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