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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Dec 29. 2022

미국 공무원의 워라밸

재택 근무, 칼퇴근,  업무와 생활의 분리


공무원 생활은 역시 워라밸 면에서 최고다. 그중에서는 꼽을 만한 것은 단연코 주 1회 출근(즉, 주 4회 재택근무). 출근하는 날은 7시에 일어나 명상하고 아침 먹고 샤워하고 슈트 입는데 아무리 빨라야 8시라서 약 30분간의 운전해서 직장에 도착하면 빨라야 8시 반~9시가 된다. 반면 재택근무하는 날은 7시에 일어나 느긋하게 할 거 다해도 컴퓨터에 앉는 시간이 8시가 되니 업무 효율성이 높을 수밖에. 더불어 우리 기관에서는 직원 건강 증진을 위해서 일주일에 최대 3시간(하루에 1시간)을 업무 시간 중(재택근무 포함)에 체력 증진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 실제 근무 시간은 37시간이다.


더불어 칼퇴근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보상 타임(comp time) 제도도 워라밸에 기여하고 있다. 일단 우리 기관은 코어 아워(오전 9~11시, 오후 1~3시) 이외에 약속이나 미팅을 거의 안 하다 보니, 퇴근 시간 직전에 새로운 업무가 생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일단 직원들의 퇴근 시간이 각자 다르며, 일찍 시작해서 일찍 끝나는 사람은 오후 3시에도 퇴근하기 때문에 오후 3시 30분이나 4시쯤에 누군가 연락을 했는데 답장이 안 오거나 전화를 해도 안 받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3시쯤 미팅이 시작하더라도 3시 30분쯤에 "나는 학교에서 애들 픽업해야 해"라면서 미리 떠나거나 퇴근하는 게 자연스럽다.


보상 타임이라는 제도는 이러한 칼퇴근을 더욱 권장하게 만드는 제도인데, 그 골자는 만약 피치 못한 사정으로 하루에 8시간 이상을 근무하는 경우, 8시간을 초과한 시간만큼을 휴가(정확히는 comp time)로 쌓아서 나중에 그만큼 덜 일할 수 있는 제도이다. 즉, 이번 주에 업무가 바빠서 하루에 10시간씩 5일을 일했다면, 하루에 2시간씩 5번 해서 총 10시간을 보상 타임으로 적립하게 된다. 그러면 다음 주에는 그 10시간을 휴가처럼 쓸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다음 주 목요일에 2시간을 써서 일찍 퇴근하고, 금요일은 8시간을 써서 하루 종일 휴가로 쓸 수도 있겠고, 어떤 사람은 일주일 내내 매일 2시간 일찍 퇴근하는 방식으로 쓸 수도 있는 것이다. 공공 기관은 오버타임 수당을 지급하는 것보다 이러한 보상 타임 제도를 권장하고 있다.


재밌는 점은 초과 근무를 하고 나서 이를 제대로 신고하여 보상 타임이나 초과 근무 수당을 받지 않는 것 자체가 위법이라는 것이다. 즉, 공무원이 정당한 대가를 받지 않고 정부에게 추가로(즉, 봉급 이상의) 일을 해주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는 Anti-Deficiency Act (줄여서 ADA)와도 관련이 있다. 이 법은 의회가 예산 심의 과정을 거쳐서 각 부처로 배당된 예산을, 행정부가 임의로 더 받기 위한 목적으로 과도하게 지출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것이다. 즉, 한 부처에 직원 10명의 연봉으로 총 100만 불을 배정했는데, 이 직원들이 전부 초과 근무를 해서 총 연봉으로 110만 불을 줘야 한다면, 의회는 어쩔 수 없이 10만 불을 더 추가 예산으로 배정해 줘야 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또한 주목할 점은, 예산이 부족하다고 10만 불에 해당하는 초과 근무수당을 직원들에게 안 주는 상황은 미국 정부로서 상상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사들은 부하 직원들이 최대한 초과 근무를 하지 않기 위해서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특별히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의 업무량 이상의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칼퇴근은 상당히 잘 지켜지고 있다.


일단 칼퇴근을 하고 난 뒤에는 직장 상사의 이메일이나 휴대폰 연락을 받을 일이 없다. 행여 이메일을 받는다고 해도 다음날 출근한 뒤에 확인해서 답장할 것이라는 전제가 기본으로 깔려 있고, 전화는 코어 아워가 지난 시간에는 거의 하지도 않지만, 연락을 하더라도 상대방이 응답할 거라는 기대 심리가 전혀 없다. 나도 일단 업무를 끝내고 회사 랩톱에서 로그아웃을 하면, 회사 폰은 뒤집어 놓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완벽한 직장과 일상생활의 분리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업무와 생활의 분리는 직장에서 생기는 그 어떤 스트레스도 견딜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준다. 어느 직장이든 스트레스와 갈등은 존재하는데, 다행인 점은 일단 퇴근해 버리면 그 일에 대해서 더 이상 고민하거나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퇴근 뒤에도 온전하게 내 생활이나 취미 활동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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