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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Feb 25. 2023

변호사의 임포스터 신드롬

저 아는 거 1도 없어요

지금은 모르겠지만 한때 어몽어스(Among Us)라는 게임이 유행했다. 직역하자면 "우리들 중에"라는 뜻인데, 우리나라의 마피아 게임과 비슷하다. 게임의 요지는 우주선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여러 명의 선량한 시민 중에 숨어 있는 한두 명의 임포스터(imposter)를 찾아내는 게임이다. Imposter는 일종의 사기꾼 혹은 사칭꾼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레딧(Reddit)에는 주제별로 수많은 서브 레딧이 있는데, 변호사들이 주로 모이는 서브 레딧이 있다. 이곳에서는 변호사들이 주로 업무에 대한 불평불만이나 직장 생활 어려움 등을 주로 토로하는데, 거의 일주일에 한 번쯤 볼 수 있는 게 이 "imposter syndrome"에 관한 주제이다.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지금 일하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생각·기대하는 만큼의 능력이나 실력을 가지고 생각하진 않지만, 어쩌다 보니 여기에서 일하게 되었고, 동료 직원들이나 의뢰인이 나를 전문가처럼 대하는데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아는 체하는 것이 힘들다'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포스팅에는 대부분 공감하는 댓글이 달리는데, 이는 단순히 저년 차 변호사 뿐만 아니라 10년, 20년 변호사로 경력을 쌓은 사람들도 종종 이와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을 보니 과연 '전문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깊이 고민을 하게 된다.


You don't know what you don't know.

재밌는 게, 변호사로서 가장 자신감이 넘치는 시기는 막 바 시험(bar exam)을 합격해서 변호사가 된 직후라고 볼 수 있다. 그때는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기 때문에, 얕고 넓게 공부해야 하는 바 시험 특성상, 왠지 자신이 모든 법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막상 실무에 부딪쳐보면 자신이 변호사로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1년 차 변호사는 연방 법원의 관할권(jurisdiction)이나 연방 민사소송법의 Rule 12(b) motion에 대해서 꽤나 그럴듯한 설명을 할 수 있겠지만, 막상 소장을 작성하고 접수하는 실무에 도달하면 어느 법원 몇 층 어디에서 누구한테 가야 하는지 (물론 요즘은 대부분 ECF/NextGen이라는 전자소송 제대를 쓰지만), 혹은 인지대는 얼마인지, 송달은 어떻게 누구한테 부탁해야 하는지 같은 건 문외한일 것이다.


그러다가 한 3년 차쯤 되면 약간의 자신감을 회복하게 된다. 어떤 실무를 하든지 간에 일단 변호사 3년 차쯤 되면 웬만한 일이 손에 익고, 일종의 임기응변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해결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5~6년 차쯤에 다시 한번 좌절을 겪게 된다. 보통 3~4년 차쯤에는 자신감이 생기는데, 운전도 왕초보보다는 1년 배운 사람이 더 위험하다고, 조금씩 자신감이 생겨서 큰 사고를 치게 되는 시기가 보통 이때쯤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다시 5~6년 차쯤에는 겸손을 배우게 된다. 그러면 10년 차~20년 차 선배 변호사들을 보면서 '아... 나도 언젠가 저분들처럼 어떤 이슈도 자신 있게 해결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노련한 변호사가 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본인도 언젠가 그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점을 위안 삼게 된다.


Knowing what you don't know.

신기한 점은 변호사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더 자세하고 확실하게 알게 된다는 점이다. 즉, 연차가 늘면서 경험이 쌓이면, 시야가 넓어지면서 결국 내가 얼마나 넓은 지식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지 깨닫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때쯤 되면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말이 바로, "I don't know the answer"이다. 저년 차일 때는 나 스스로가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질문에도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모른다"라는 답변은 절대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연차가 올라갈수록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가 확실하게 알기 때문에, 모르는 걸 모른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게 된다.


Practice maketh law.

그래서 그런지 의사나 변호사가 실무를 한다는 영어 표현을 할 때 practice (연습하다)라는 표현을 쓴다. "I've practicing law (or medicine) for X years"라는 표현처럼 말이다. 즉, 변호사 실무는 끊임없는 연습이기 때문에, 그 어떤 변호사도 스스로를 "master"라고 칭하지 않는다. 법이라는 것은 마스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원 주제로 돌아가서, 이는 왜 변호사들이 연차에 상관없이 imposter syndrome에 시달리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법이라는 것은 아무리 오랜 실무를 겪더라도 정답이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의뢰인이나 일반 대중이 변호사로부터 기대하는 것만큼 확실한 대답이나 정답을 찾기가 힘들다. 그러나 사람들이 전문가로부터 기대하는 일종의 기대치가 있기 때문에, 변호사들은 마치 연못의 백조처럼 겉으로는 유유자적하고 여유로워 보이지만, 밑에서는 가라앉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셈이다.


이는 꼭 일반인-변호사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변호사-변호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 무능한 변호사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매일 남들이 보지 않는 동안 뒤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리서치를 할 수밖에 없다. 동료 변호사가 지나가면서 질문한 내용을 밤새 며칠 동안 머리를 싸매며 고민한 끝에 얻은 답을 마치 몇 분만을 투자해서 얻어낸 것처럼 "아 저번에 얘기한 거 말인데, 내가 잠깐 찾아봤는데 이렇게 하면 될 것 같다"라는 식으로 별거 아니라는 듯이 지나가면서 던지면, 질문을 던진 변호사는 답변을 한 변호사에 대해 '역시 대단한 친구야, 그런 걸 그렇게 금방 찾아 내다니'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변호사들이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거나 혹은 허풍(!)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허세라기보다는 그냥 일반적으로 변호사가 된 사람들의 겸손한 기질이 아닐까 싶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변호사가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들보다 학창 시절에 조금 더 온순하고, 말 잘 듣는, 조금 더 끈기와 인내가 있어서 공부를 남들보다는 약간 더 잘한 사람들이지, 리더십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인기를 독차지하는 성격의 사람들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다.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변호사들은 어딘가 모르게 (흔히 늑대나 상어에 비유되는) 뻔뻔하고, 대담하고, 능수능란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매혹하는 역할로 주로 나오지만, 실제로 그런 변호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오히려 실제로는 정말 어떻게 변호사를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처럼 순딩순딩한 사람이 훨씬 많은 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사회가 기대하는 유능한 변호사 모습은 실제 모습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유능한 변호사"라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일할 때는 본인의 참 성격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 imposter syndrome을 부추기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예전에 로스쿨 2학년 시절에 만났던 동갑내기 선배/친구가 생각난다. 나이는 동갑이었지만 나보다 로스쿨을 몇 년 일찍 졸업해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미국 탑 로펌에서 미드레벨 어소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그 친구를 마치 신처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했던 한 마디가 충격적이었다:

야 나도 여기에서 몇 년 동안 어소로 일하고 있지만 아직 아는 거 X도 없어.


그 당시에는 그 친구가 그냥 겸손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10년이 지난 8년 차 변호사가 된 지금, 그 친구의 말이 격하게 공감된다.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변호사라고 하면, 마치 내가 세상의 모든 법적 문제에 대한 답변을 자판기처럼 즉각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대답한다. (물론 순한 맛 버전): "저 아는 거 1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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