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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May 19. 2023

첫 인사 평가를 받다

미국 연방 공무원의 인사 평가는 1년에 한 번 이뤄진다. 보통 4월 초에 상사와의 상담을 통해서 그 해 평가 기준을 정한 다음에, 이듬해 4월에 그 평가 기준대로 얼마나 성과를 냈는지 여부로 인사 평가가 결정된다. 내 경우에는 작년 3월에 근무를 시작했고, 업무를 시작한 직후 상사가 4가지 평가 항목(elements)이 있으니 그 점을 유의해서 업무를 진행하라고 했다.


나에게 있어서 4가지 평가 항목은 다음과 같이 정해졌다:


1) Legal Advice & Counsel (법률 조언 및 자문)

2) Advocacy & Representation (변론 및 대리)

3) Client Support / Customer Assistance (의뢰인 및 고객 지원)

4) Subject Matter Expert (전문 지식)


즉, 1년 동안 업무를 진행하면서 위 4가지 항목에 따라 성과를 내고, 연중 내내 내가 주목할 만한 업무 결과가 있으면 이를 항목에 맞게 기록을 하는 것이다. (연중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이듬해 3월쯤에 밀린 일기 쓰듯이 한꺼번에 쓸 내용 찾느라 고생한다는)


그리고 나 같은 경우에는 상사하고 매달 1회 인사 평가 관련 진행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서 상담을 해야 했다. 이때는 주로, 현재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지, 고충 사항은 없는지, 어떤 업무를 하고 싶은지, 어떤 커리어를 쌓고 싶은지에 관한 대화를 하고, 이러한 대화 주제들을 가지고 위에서 정한 평가 기준과 어떻게 연관 지을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사실 내가 계속 성과 평가라고 표현은 했지만, 정확하게는 "성장" 평가라고 보는 게 맞다. 왜냐면 평가의 초점은 "내가 얼마나 기여를 했느냐"라기보다는 "내가 얼마나 성장을 했느냐"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체로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기여를 하겠지만, 어쨌든 내가 기여는 조금 못했더라도 성장을 크게 했다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평가는 성과에 조금 더 영향을 받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


결과적으로 나는 4개의 평가 항목 중에 3개 항목에서 "Fully Successful" (성공적임)을 받고, 나머지 1개 항목에서 "Outstanding" (뛰어남)을 받았다. 사실 딱히 자랑스러워하거나 부끄러워할 일이 없는 게, 연방 공무원 평가 항목은 Outstanding - Fully Successful - Unacceptable (받아들일 수 없는) - Not Rated (평가 X)의 4개밖에 없기 때문이다. ㅋㅋ 학점으로 치면, 우수 - 합격 - 불합격 - 평가 없음으로 나눠진 것이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일단 합격 점수를 받은 것이다. (물론 이 중 하나라도 불합격을 받았다면 이미 해고됐을 가능성이 높다 -_- 특히나 2년이나 되는 수습 기간 동안에는 아무리 공무원이라도 얄짤없이 해고 가능하다.) 4개 항목에서 전부 Outstanding 평가를 받았다면 더 좋았겠지만(그리고 상사가 계속 어떻게 하면 4개 항목에서 Oustanding 받는 법을 알려주긴 했지만) 어차피 첫해이고, 처음부터 굳이 above and beyond 무리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일단은 합격점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했다. (이미 공무원 마인드로 바뀐 듯...)


Outstanding 평가를 받은 항목이 Advocacy/Representation인데, 사실 이것도 완전 자의로 한 건 아니다. 왜냐면 내가 작년 초에 업무를 시작한 뒤 한두 달 쯤이었나 상사한테 겁도 없이 "소송(litigation) 관련 경험 쌓고 싶다"라고 했더니, 곧바로 우리 사무실에서 다뤄본 사건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소가가 큰 건을 하나 맡게 되었다. 솔직히 소송 초기(pleading 단계)에는 뭔가 중요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똘똘 뭉쳤는데, 악명 높은 증거 개시(discovery) 단계에 들어서니 그때부터는 중-_-노동이 따로 없었다. 개업 변으로 형사 사건 대리를 할 때는 대부분 사실 관계가 간단해서 증거 개시를 할 것도 별로 그다지 많지 않았고, 대부분 출력된 종이 문서(경찰 보고서)나 구두(목격자 진술)가 대부분이라 제대로 된 증거 개시를 하진 않았는데, 이번에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무튼 "Be careful what you wish for"를 제대로 경험하며, 업무의 상당 부분을 소송으로 보내다 보니 변호사들이 왜 litigation(특히 discovery)을 기피/힘들어하는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뭐 덕분에 좋은 평가를 받긴 했지만, 왠지 이 맘 때로 돌아간다면 그런 말 안 했을 것 같다.


1년 전의 나에게... (인터스텔라 中)


아무튼 이번 평가를, 그래도 나름 적응을 잘하고, 팀원들에게 해가 될 정도는 아닌, 1인분은 해내고 있다 정도로 해석하고 위안을 삼고 있다. 미국 로스쿨에 입학하면서부터 '과연 수업이나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까'로 시작해서, 바 시험을 합격하고 나서도 '과연 평범한 변호사 구실이라도 할 수 있을까'로 시작한 나의 커리어는 8년이 지난 이제야 그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덜어가고 있는 것 같다. 참 오래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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