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의 권유로 테니스를 시작해서 이제는 구력이 거의 20년이 되어갑니다. 로스쿨에서 10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며 공부할 때도, 변호사가 되어 6분 단위로 근무시간을 기록하며 일할 때도 여유가 생기면 항상 시간을 내서 테니스를 즐기곤 했죠. 아직도 주중이나 주말에 지인들과 테니스 약속을 잡으면 조만간 테니스를 친다는 생각만으로도 설레고 기다려질 정도입니다. 그러던 중, 작년 여름 때 문득
"미국에서 정식으로 테니스 지도자 자격을 따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워낙 테니스를 좋아하고, 기회가 있으면 지인들이나 가족(와이프)에게 테니스를 권유하고 필요하면 가르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식으로 테니스를 가르치는 법을 공부하면 앞으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저는 1인 변호사로 개업을 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이미 미국 로스쿨 컨설팅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업 삼아 미국에서 테니스 코치로 활동하는 것도 괜찮아 보였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한국과 달리 일반인들 사이에서 테니스의 인기가 높은 편이며, 수입도 시간당 60~80불 정도로 나쁘지 않은 편이죠.
1. 미국 테니스 지도자 자격
미국 테니스 지도자 자격증을 발급하는 기관은 두 곳이 있습니다. 하나는 USPTA(United States Professional Tennis Association, 미국 테니스 지도자 협회)와 USPTR(US Professional Tennis Registry)가 있습니다. 둘 다 공신력이 있는 협회들인데, 제가 듣기엔 USPTA가 더 인지도가 있고, 자격 과정도 엄격하다고 들어서 기왕 하는 거 USPTA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USPTA를 가입했습니다.
일단 가입 자체는 연 회원비(2019년 기준 299불)만 내면 쉽습니다. 물론 시험을 응시하기 전까지는 임시 회원(Recreational Coach) 자격으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USPTA에서 정기적으로 회지와 세미나 공지 이메일, 회원 할인상품 안내를 받기 시작합니다.
2. USPTA 자격증 등급
USPTA 정식 코치는 시험을 통해서 취득할 수 있는데 3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 순서는 취득 순서 및 난이도에 따라,
USTA Professional
USTA Elite Professional
USTA Master Professional
순서입니다. 아래로 갈수록 상위 등급 자격증이며, 이전 단계 자격증을 취득해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습니다. 예를 를어, Master Professional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 10년간 Elite Professional 자격을 유지했어야 하는 것이죠. 저는 당연히 Professional 취득을 목표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3. USPTA 자격시험
자격시험은 크게 필기시험(written test)과 실기 시험(on court exam)으로 나눠집니다.
그중에서 필기시험 와 실기 시험은 각각 3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예를 들어, 필기시험은 그립(grip) 시험, 테니스 지식 시험, 유소년 교육(Youth Tennis) 시험으로, 실기 시험은 개인 레슨, 그룹 레슨, 스트로크 시험 등입니다.
(1) 필기시험
그립 시험은 테니스의 기본인 그립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각각의 장단점을 아는지 평가하는 것이라 테니스를 웬만큼 쳐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컨티넨탈 그립은 높은 공이 어렵고, 풀 웨스턴 그립은 낮은 공치기가 어렵다 정도) 테니스 지식 시험은 USPTA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테니스 레슨 이론, 테니스 전략 및 전술, 각 스트로크의 물리학적 원리, 간단한 해부학, 테니스 장비 관련 지식, 코트 관리법, 테니스 규칙 등을 총망라한 약 150쪽 분량의 자료를 읽고 80 문제를 풀어서 80% 이상 맞으면 됩니다. 개인적인 느낌은 운전면허 시험과 비슷해서 테니스를 오래 쳤으면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많지만, 종종 협회 쪽에서 요구하는 특정 지식을 공부해야만 합격선을 넘을 수 있는 그런 난이도였습니다. 사실 저는 워낙 살면서 필기시험을 많이 겪어본지라 별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유소년 교육에 특화된 온라인 과목들을 이수하고 각 과목마다 나오는 미니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도 새로 배웠던 점인데, 어린 학생들이 테니스를 쉽게 접하기 위해서 각 나이 때 별로 각각의 테니스 장 규격, 라켓 규격, 공 규격(orange/green/red)이 따로 존재하며, 이들을 가르치는 방식도 각각 다르다는 점이 신기했습니다.
(2) 실기 시험
필기는 그나마 시간 들여서 강의 듣고, 자료 읽고, 시험만 보면 되는 거라 쉬운 편이었는데, 실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영어로 레슨을 해본 적이 없었고(물론 한국어로는 수없이도 많이 해봤지만), 스트로크 시험도 협회 측에서 요구하는 특정 기준을 넘겨야 해서 이에 맞춰서 연습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 레슨과 그룹 레슨을 영어로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전공 분야인 법 분야에서는 법원이든 의뢰인한테든 신나게 잘 떠드는(?) 편인데, 왠지 레슨을 해보려니 버벅거리고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제 와이프와 지인들이 실험 대상을 자처해서 몇 번 연습해볼 기회가 있었고, 좀 해보니 익숙해지기도 하였습니다.
스트로크 과목은 테니스에 존재하는 모든 스트로크를 어느 정도의 기준 이상으로 칠 수 있는지 보는 것이었습니다. 포핸드/백핸드 스트로크, 포/백 발리, 포/백로브 (탑스핀/슬라이스), 포/백 드롭샷, 서브(다양한 구질 및 코스)가 전부 평가됩니다. 대부분 스윙폼이나 파워보다는 정확하게 코트 내에 지정된 곳으로 공을 보낼 수 있는지가 중요해서 그렇게 어려운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로브나 드롭샷, 서브는 생각보다 까다로운 편입니다.
예를 들어, 로브는 포/백 모두 각각 탑스핀/슬라이스 로브를 사용해서 코트 정 가운데(T자) 라켓을 들고 손을 뻗은 감독관의 키를 넘겨야 하고, 드롭샷 같은 경우에는 서비스 라인과 네트 사이의 거리를 양분해서 네트 쪽 가까운 곳에 공이 착지해야 하며, 공에 세 번 바운스 되기 전에 서비스 라인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서브의 경우 듀스 코트에서 서비스 구역 바깥쪽(즉, 서비스 박스를 세로로 양분해서 왼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스 서브를 6번 중 4번 성공, 서비스 구역 가운데 쪽으로 플랫 서브를 6번 중 4번, 애드 코트에서는 구질 상관없이 가운데 쪽으로 6번 중 4번, 마지막으로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킥 서브 6번 중 4번을 성공시켜야 합니다. 사실 저는 애드 코트에서 서브를 더 잘 넣는 편이라 듀스 코트 서브들이 어려워서 고생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시험 때는 제대로 다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시험 후기는 다음 포스팅에 자세히...)
(3) 기타-안전 교육 및 신원조회
실기 시험을 마쳐도 다가 아닙니다. 추가적으로 안전 교육 및 신상조회가 남아 있습니다. 미국은 아동 안전 및 성희롱에 대해서 매우 엄격하다 보니 이에 대해서 추가로 온라인 교육을 이수하고, 전과나 성범죄 기록이 없는지 확인을 받아야 비로소 정식 코치의 자격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며칠 전에 이 모든 과정을 거쳤고, 이제는 결과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락의 가장 큰 관건은 실기 시험에서 개인/그룹 레슨 점수가 얼마나 나오느냐 인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글쎄요 감독관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1~2주 후에 결과를 우편으로 통지해준다고 했으니 그때까지 기다려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