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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h Gray Jun 07. 2018

'설레는 기다림'인지, '기다리는 설렘'인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힘

아빠는 매일 저녁 술을 마시고는 술에 취해 짜증을 냈다.

"사는 게 재미 없어."

라고.



말 그대로, '짜증' 이었다.

술에 취해, 풀린 눈으로 허공을 보며, 듣는 이도 없는데 부리는 주사.



그 때는 아빠가 이해가 안되었다.

아빠의 모든 게 이해가 안되었다.

지금은 반절 정도 이해되지 않는다.

하여 그 때의 아빠처럼 혼자 술 마시며 생각한다.

'아빠는 왜 삶의 재미를 스스로 만들지 않았을까?'



그래, 뭐, 이런 걸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세상은 의문 투성이다.

그 사람은 왜 그걸 훔쳤을까?

그 사람은 왜 잘못 해놓고도 사과하지 않았을까?

그 사람은 왜 그걸 용서하지 못 했을까?

그 사람은 왜 꼭 그걸 고집했을까?

그 사람은 왜 그(그녀)와 헤어졌을까?

뭐 이런 식으로.




살아갈수록 재미가 없어지는 건

뭐 가장 큰 이유는 '돈이 없어서' 겠지만

그 돈이 없는 상황까지 곰곰 생각해 보면

아마도 '기다려지는 것', '설레는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도 결국은 이 지점에 종착할 거라 생각된다. 나는 돈이 많아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럴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수입이 늘었을 때 처음엔 더 행복해졌지만 이내 그 수입에 적응해 그 돈이 당연하게 생각되면 다시 삶이 지지부진해졌기 때문이다.)



기다려지는 것, 설레는 것이 없어져가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이젠 더이상 안해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첫 소풍(요즘은 '체험학습'이라 한다), 첫 연애, 첫 키스, 첫 경험, 첫 출근, 첫 아이......

삶을 살아낼수록 '처음 해보는 것'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처음' 이 주는 묘한 긴장과 설렘, 흥분은 그렇게 잊혀져간다.



'첫 이별', '첫 죽음'.

뭐 이런 걸 기다리는 사람은 없을 거다.

또한 애써, 일부러 '처음'을 만들어내는 '어른 사람'도 많지 않다.

'도전', '모험', '시작'.

나이 먹을수록 꺼려지고 망설여지는 단어들이다.



익숙하고 예측가능하며 안전하다 못해 지루한 삶. 삶이 재미없어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재미없는 삶에 자신을 가둬두고는 사는 게 재미 없다고 신경질 내던 아빠를 이제는 반절 정도 이해한다.



스스로 만든 그 감옥을 깨고 나오는 데에 얼마나 큰 용기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지 이제는 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봤자 삶은 이내 모든 것에 적응하게 만들고, 익숙해지게 만드니, 사는 건 결국, 다시 재미없어질 것'이라는 경험적 깨달음이

'쓸 데 없는 용기 내어 괜한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조용히 돈이나 모아(또는 '벌어', 또는 '아껴')' 라고 이미 무의식에 조언해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설레는 기다림'인지 '기다리는 설렘'인지

알 수 없지만

돈과 시간, 노력을 조금 들여서라도 즐거운 일들을 일부러 만들기로 했다.

조금씩조금씩.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겠지만 가다 끝나면 그 때 가서 뭐든 또 새로 만들지 뭐.



어차피 내려올 거 알며 산에 오르듯

시들 거 뻔히 알며 꽃을 사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중에 양치질 하게될 줄 몰라 지금 음식을 먹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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