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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h Gray Nov 05. 2017

줄어드는 것들- 잠, 그리움, 설렘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는, 나의 줄어드는 것들

줄어든 건 식욕만이 아니었다.


나는 지금도 잠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10여년 전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잠이 많았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하는 것도 많은데 잠이 너무 많은 게 탈이었다. 딱히 체력이 부족했던 것도 아닌데 늘 잠이 쏟아졌다. 내 젊은 날(또는 어린 날)은 잠과의 사투, 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신기하게도, 나의 잠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불면증인지, 수면장애인지 확실히 진단 내릴 수는 없지만 아무튼 나는 잠이 줄어들었고, 잠만 덜 자면 참으로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내 삶은 외려 고통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줄어든 잠만큼 늘어난 시간은 나를 수많은 기억과 생각들에 시달리게 했다.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되었다. 단순히 잠을 자지 못한 신체적 피로도 만만치 않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출근할 곳이 있는 직장인으로서 푹 자지 못해 쌓인 간밤의 피로는 분명, 주적(晝敵) 이었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몸을 혹사시켜야만 잠이 오는, 잠에 들 수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잠에서 깨는 나이. 점점 늙어가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바빴던 젊은 날들아 안녕...

하고 싶은 일도, 해야할 일도, 그것들을 해낼 체력도, 함께할 사람도 줄어만 가는데 왜 이리 시간은 늘어만 가는 거니. 왜 필요할 땐 없고, 필요없을 땐 이리도 넘치는 거니.   


하지만 이보다 더 슬픈 것은, 그 수많은 기억과 생각 속에서 허우적 거릴 때, 더이상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그립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어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내 스스로는 위로되지 않는, 아무리 덮어도 잊혀지지 않는 많은 일들과 사람들은 늘 고통과 후회가 되어 나를 할퀴었다. 그러나 비슷한 일들을 누차 겪으며, 다양한 선택과 결정으로 더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제는 마음으로 공감하기보다, 머리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내 선택은 최선이었구나.'

'그래서 그 때 그 사람이 나에게 그리 했던 거구나.'


내 머리와 마음에서 미지의, 미답의 세계는 줄어갔고 많은 것들이 천천히 그리고 차갑게 식어갔다.


따뜻했던 어린시절은 그저그런 평범한 동화였고, 그 주인공들은 세상 무엇보다 현실적인 드라마의 주.조연으로 내 옆에서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얼마 되지도 않는 학창시절의 몇몇 유쾌했던 순간들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절판된 소설이 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남자친구인 줄 알았던 그 남자는 몇번의 연애경험이 더해지며 '그 때의 내가 어려서 몰랐을 뿐, 결국그저그런 나쁜(또는 어린)' 남자였다. (물론 나 역시 나쁘거나 어렸던)

'애틋함'이란 게 사라진 빈 공간에는 '냉랭함'과 '덤덤함'이 자리를 잡았고 그렇게 나는 그리움을 잃어갔다. 그리움이 사라지니 설렘도 없어져갔다.


시간 지나면 다 똑같았다. 설렐 필요가 없는 세상이었다. 많은 것들은 쉽게 예측되었고, 예측된 대부분의 것들은 뻔하게 흘러갔다.


나날이 '재미가 없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노화인지, 얼마나 무서운 불치병인 지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재미가 없고, 기대가 없는 삶이라....


혼자 심드렁하게 드러누워, 천장을 보 새삼 곱씹어 본다.


줄어드는 내 잠을, 내 그리움을, 내 설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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