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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h Han 한승환 Apr 09. 2018

분산경제포럼, 탄생 이야기
Deconomy Forum

Deconomy, Distributed Economy


분산경제를 다루는 ‘분산경제포럼 2018(Deconomy Forum 2018)’이 서울에서 열렸다. 


https://deconomy.com/



전세계에서 양일간 2천명 이상의 참석자 그리고 80여명의 세계 최정상급의 연사들이 참여했다.

티켓은 매진됐고, 추가적으로 2천여명이 티켓구매 대기자로 등록됐다.

전세계에서 수백여개의 미디어커버가 됐고, 전세계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회자됐다.

‘세계 최대 블록체인 포럼’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업계인으로써,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인으로써 행복한 경험이었다. 









오프라인 모임의 역사


한국에서 맨처음 비트코인&블록체인 관련된 조직화된 형태의 밋업은 2014년에 등장했다. 


●2014년 1월 18일 - 최초의 비트코인 밋업

http://photohistory.tistory.com/14033

https://www.youtube.com/watch?v=-BqLyCorla8

최초의 비트코인 모임이 서울 종로의 벙커1에서 열렸다. 로저버와 크라켄이 한국에 내한하며 처음으로 진행한 밋업이었다. 그때 아무것도 모르던 친구들 세명을 데려가서 참석했었는데,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재미있던것은, 얼마전에 ‘아야 미야구치(이더리움 재단 총괄)’와 대화를 했는데, 그녀도 당시 크라켄에서 일했는데, 그 밋업에 왔었다는 것이다. 세월을 돌아보게 됐던 순간이었다.



*당시 필자는 훈련소를 막 다녀와서 머리를 민(?) 상태



●2014년 4월 5일 - 최초의 포럼

https://www.ddengle.com/index.php?mid=board_free&page=853&document_srl=592304

https://www.ddengle.com/index.php?mid=board_free&page=838&document_srl=612365

최초의 커뮤니티 포럼이 열렸다. 땡글이라는 커뮤니티에서 주최한 40여명 규모의 ‘코인유저포럼’이었다. 필자는 당시에 ‘어른아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다가 해당 포럼에서 발표를 했다. 그때도 꼭 알아둬야한다면서 친구들 세명을 데려갔다. 온라인 상에서만 소통하던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고 알게 됐다. 이곳에서 만났던 한분은 현재 함께 일하고 있다.


당시 필자의 발표주제는 세가지였다. 

-금 및 수치표현이 가능한 자산의 블록체인상 발행

-은행의 블록체인 기반 화폐발행 가능성

-비트코인이 아닌 블록체인 기술의 중요성 (최초로 데이터의 이중지불 방지)



●2014년 11월 15일 - 최초의 블록체인 밋업

https://www.meetup.com/Seoul-Ethereum-Meetup/events/218615787/

https://www.ddengle.com/board_free/902091

최초의 블록체인 밋업은 필자가 조직하게 됐다. 당시 ‘블록체인 2.0’이라는 밋업을 만들었고, 이 밋업을 향후 ‘서울 이더리움 밋업’으로 바꾸며, 이더리움 백서번역/이더리움 명칭 확정/이더리움 교육/이더리움 댑 개발 등 다양한 활동들을 하게 된다. 땡글 커뮤니티 운영자분과 커뮤니티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시던 미국거주자 한분이 밋업개최를 부탁한 것이 계기가 되어, 처음으로 밋업이란 것을 조직하고 운영하게 된다. 2016년까지 약 3년여간 해당 밋업을 운영한다.


최초 이더리움이라는 이름을 정할 때, 이떠리움/이씨리움/에테리움 등 다양한 명칭이 논의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그러나 ‘이떠리움’와 ‘이씨리움’는 어감이 안좋고, ‘에테리움’는 일본식 발음법의 잔재라는 논리를 통해 결국 ‘이더리움’이라는 명칭으로 한글표기를 확정했다. 이 명칭을 함께 확정한 이들 중 몇분도 현재 함께 일하고 있다.


당시는 국내 거래소에 비트코인만이 상장되어 거래되던 시절이라, 거래소에 찾아가 이더리움의 개념 등에 대해 교육을 하기도 했다.



●2014년 12월 12&13일 - 최초의 비트코인 컨퍼런스

https://besuccess.com/2014/12/inside-bitcoins/

‘인사이드 비트코인(현재 인사이드 핀테크)’이라는 컨퍼런스가 열렸다.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한 규모였다. 그러나 주최측이 산업에 대한 지식이 밝지 않아, 많은 다단계 사기업체들이 행사장 자리를 차지하게 되기도 했다. 역사적인 의미가 있었으며, 필자 개인적으로는 많은 부분들에서 눈을 뜨게 된 날이었다.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산업규모로 확장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벌 규모의 정말 진지한 그리고 산업을 아우를 수 있는 오프라인 모임을 조직하고 싶다는 열망이 가슴 한켠에 자리잡게 된다.



*뒤에 한국 최초거래소인 코빗의 부스




분산경제(Deconomy, distributed economy)의 역사

필자는 우연히 업계에서 활동하던 새로운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도 제대로 된 컨퍼런스를 열고 싶다는 열망 그리고 단순한 기술이나 사업 차원이 아닌 학술적인 부분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가진 이였다. 이 인물이 향후 필자와 함께 분산경제포럼을 조직하게 되는 백종찬(Jeff Paik)이다.


●2017년 5월 - ‘분산경제(deconomy, distributed economy)’ 탄생

분산경제라는 명칭은 2017년 5월 경에 탄생한다. Jeff와 필자가 노트북을 사러 강남 시내를 걷던 도중, 앞으로 그려갈 여러가지 중 학회에 대해 대화하게 된다. 학회의 역할과 존재이유 그리고 이름을 뭘로 정해야할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사실상 당시 존재하던 학회를 포함한 그 어떤 조직도 산업에 기여하는 부분이 없었기 때문에, 이는 중요한 이슈였다. 학회의 이름은 생각외로 아주 단순하게 구상됐는데, 당시 개념이 ‘비트코인->블록체인->분산원장기술’ 형태 등으로 발전하던 시기였다. (사실 아직도 분산원장기술 개념까지는 시장에서 자리잡지 못함) 필자는 블록체인이 결국 기술차원을 넘어서야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분산경제’라고 봤다. 이렇게 너무나 간명하고 자연스러운 맥락을 통해 ‘분산경제’라는 용어가 탄생한다.


●2017년 7월 - deconomy.com 도메인 소유권 획득

이후 deconomy.com을 구매하기로 마음먹게 된다. 어떻게 사용될지, 해당 도메인의 가치는 무엇일지, 왜 사야하는지, 언제 사용할지는 전혀 상관없었다. 완전히 매료되어 반드시 사용하겠다는 생각만이 들 뿐이었다.

당시 도메인 소유자를 찾아내고 연락하고 이를 중개인/대리인을 통해 구매하게 된다. 언젠간 의미있게 활용하겠다는 알수없는 자신감을 가진 상태였다.


●2018년 1월 초 - 포럼 개최 결정

Jeff와 함께 글로벌 포럼을 하자고 논의하게 됐다. 그리고 deconomy는 포럼의 이름으로 잘어울렸다. 이 부분에 이견이 없었고, 최고의 포럼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와 전략들에 대한 구상이 시작됐다. 

포럼의 원칙은 간단했다.


-본질에 집중한다

-ICO, 로드쑈, 영업, 다단계는 없앤다

-시장수준에서 산업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포럼을 만든다


이때부터 본질에 가까운 아젠다는 무엇인지, 그리고 아젠다를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는 최고의 전문가들은 누구인지에 대한 리스팅이 시작됐다.


●2018년 1월 중순 - 포럼 행사일 확정

포럼 행사일이 확정된 것은 필자가 태국여행을 다녀온 직후인데, 태국에서 비탈릭, 조셉푼, 블래드 등의 일정이 4월 초 경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됐다. 그렇게 일자는 4월 3,4일로 정해졌다. 행사가 사실상 두달 반 정도 남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마음은 평온했다. 그러나 동시에, 민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2018년 1월 말 - 포럼 행사준비

할일은 많았다. 해도해도 끝이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의 업무들이 쏟아졌다. 

-홈페이지를 제작하고,

-연사들을 초대하고,

-에이전시를 선택/고용/협업하고,

-통역사, 사회자, 준비인원 등을 구성하고,

-호텔을 계약하고, 

-아젠다와 연사들 배치도를 구성하고,

-행사의 세부사항을 결정하고,

-전체적인 디자인들을 구상/컨펌하고,

-스폰서들을 모집하고,

-부스 디자인과 설계를 하고,

-무대를 구성하고,

-식사와 파티를 계획하고,

-마케팅과 컨텐츠 제작을 하고,

-향후 전략적 용도를 준비하고,

-확장성을 고려하고,

-스토리텔링을 통해 생명력을 불어넣고,

기억도 안날 만큼의 어마어마한 양의 업무들이 처음부터 행사 마지막날까지 이어졌다.


필자와 Jeff를 포함한 4명의 하프타임 맴버, 행사컨설팅사, 에이전시, 그리고 다른 많은 이들의 도움과 노고가 들어갔다. 내부적으로는 제한된 인력 수준으로 이런 일들을 해나가는게 도전이었다.


●2018년 4월 3&4일 - 최초의 글로벌 포럼

국내 최초의 글로벌 포럼이 열렸으며, 규모는 세계최대였다. 

필자가 염려한 것은,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봐, 

지출비용이 너무 높을까봐, 

온 사람들의 만족도가 높지 않을까봐 보다는, 

‘혹시라도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에 대한 부분이었다. 


업계 유명인들을 다모아놨으니, 건물에 화재라도 나면, 산업이 사라지고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되는 상황이 오지는 않을까하는 염려였다. 보안인원을 늘리고 끊임없이 안전점검을 했다. 


그렇게 행사가 시작됐다.




Opening Remark로 행사시작을 알렸다. (Ash Han, 한승환)

참여해준 모두에게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 무대를 내려가는 순간 온몸이 알수없는 평온함으로 가득찼다.



분산경제포럼의 첫번째 연사는 ‘데이비드 차움’이었다. (David Chaum, 데이비드 차움)

초기부터 ‘디지캐시(Digicash)’와 차움은 익히 알고 있었고, 구전으로만 전해듣던 역사적 인물이었다. 그가 등장하는 포럼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는데, 이런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데이비드 차움’은 행사의 공동주최자인 ‘백종찬(Jeff Paik)’이 섭외에 성공했는데, 긴 통화를 마치며 드디어 섭외에 성공했을때 그가 그리고 모두가 느낀 성취감은 대단했다.


행사는 이틀간 진행됐으며,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다. 다양한 내용들은 ‘deconomy’나 ‘분산경제포럼’으로 구글링하면 나오며, 추가적인 컨텐츠는 blockinpress.com 및 부가채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공개된다.


의미깊던 행사였고, 개인적으로는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중에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많은 분들이 정말 많은 고생들을 해주었다. 빗썸과 한화, 에이전시, 계약인원, 직원들 모두가 많은 역할을 해주었고, 특히나 Jeff의 핵심적인 역할없이는 이 모든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음 개최 장소 중 하나로, 북한 평양이나 영국 런던의 프리메이슨홀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




분산경제포럼 2018, 그 이후

Deconomy Forum은, 블록체인을 ‘상업적’으로만 이용하는 것을 넘어서, 블록체인 업계가 '시장'에서 ‘산업’으로 성장하려면, 진짜 업계 사람들이 진짜 아젠다를 다루며, 이것이 산업에 영향력을 미치고 산업 규모의 토론과 논쟁 그리고 합의가 이루어지는 장이 있어야 한다는 의식과 함께 설계됐다.


다음의 3개 라운드로 구성될 수 있다.


●산업의 구성원 정의와 화합

전세계의 산업 구성원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만나는 자리를 가지며 서로 소통한다. 산업과 산업의 구성원들이 정의되며 화합한다.


Deconomy Forum 2018은 암호학의 시초부터, 해시, 비트코인, 이더리움, 기타 기술, 투자 및 사업에의 적용 등의 연대기 순으로 구성됐다. 또한 기술뿐 아니라, 학술, 사업, 자본, 커뮤니티, 미디어 등을 포괄하는 산업적인 접근으로 구성됐다.


●산업의 확장

단순한 블록체인 산업을 넘어서, 기존의 금융, 기존의 경제와 마주한다. 이 장에서 이해와 개선 그리고 융합과 대체가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세계관의 탄생

구성원들의 이해와 합의를 통해 인류를 움직이는 세계관이 탄생하며, 이는 역사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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