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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Dec 16. 2018

22. 잘 되는 방식으로는 하고 싶지 않아

제목부터가 글러 먹었다

나는 수년간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아닌 다른 회사, 다른 가게, 다른 브랜드를 대신 마케팅하고 브랜딩 하는 일을 해왔다. 작게는 오프라인 가게나 제품 하나를 홍보하는 일을 하기도 했고, 크게는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브랜드의 연간 혹은 장기적인 계획을 함께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마케팅 기술들을 습득하게 되었는데, 왜인지 모르게 정작 내 가게에는 그런 기술들을 사용하고 싶지가 않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보통 장사가 조금이라도 더 잘되려면 아는 것은 물론 모르는 것까지 다 끌어 써야 맞을 텐데 말이다.


진짜 배부른 소리이자 아직 뭘 모르는 초보 자영업자에 답답한 소리가 아닐 수 없을 텐데, 그럼에도 왜인지 다 잘 되는 방식으로는 하고 싶지가 않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미 너무 많이 알아버려서, 또는 그 방식들과 프로세스에 너무 지치거나 질려 있어서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과는 조금 결이 다른 이유가 있는 듯하다.


마케팅을 해 본 이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긍정적 의미의 마케팅과 부정적 의미의 조작은 정말 미묘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같은 행위를 두고도 그렇게 포장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대부분이 하고 있는 방식들 가운데도 그저 다수가 아무 문제없이 하고 있을 뿐이지 따지고 보면 조작에 더 가까운 방식들도 많다. 가끔 뉴스에서 선거 관련 부정행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땐 마케팅을 했던 사람으로서 저건 마케팅에서 흔히 벌어지는 (사용하는) 일이라 무덤덤할 때가 많다. 그것이 단지 세금이 동원되거나 정치와 관련된 민감한 문제여서 그렇지, 일반적인 홍보라는 이름하에 진행되는 마케팅 수단으로 자주 활용되는 동일한 방법들이 적지 않다. 


마케팅은 비교적 직접적이고 빠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아니,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광고주들은 내가 쓴 돈이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방식들을 원한다. 이건 절대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 효과. 돈을 지불한 광고주를 설득할 수 있는 눈으로 보이는 '결과'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면 여러 가지 정상적이지 않은 수법들을 쉽게 동원하게 된다. 사실 수많은 광고주들을 만나면서 미팅을 할 때마다 더 길게 보고 진행할 수 있는 방식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대부분은 잘 안됐다. 그건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앞서 말한 것처럼 돈을 지불한 입장에서는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결과가 필요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설령 내가 (내가 맡은 브랜드가) 하지 않더라도 다른 경쟁 브랜드들은 모두 이런 방식을 쓰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즉, 냉정한 현실을 두고 이상적인 소리만 하는 꼴이다.


그 이상적인 소리를 내 가게에 적용해 보는 중이다. 적어도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는가.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릴 수 있고, 또 그런 오랜 시간을 들였음에도 효과는 미비할 수 있는 위험성마저 있지만 그래도 천천히 하고 싶은 방식대로 (아직은)해볼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현실적으로 절실해지면 그걸 알면서도 시도해볼 수 있는 여지가 전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린 아직 가게를 연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았고, 더디기는 하지만 아주 천천히 계획대로 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배운 도둑질을 최대한 쓰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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