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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Apr 11. 2019

40. 가장 잘한 일은 지방을 선택한 것

서울에만 살았다면 절대 몰랐을 것들

이치 밖에도 또 다른 이치가 있다.

즉, 내가 알고 있는 세계 밖에도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그곳에는 내가 몰랐을 뿐이지 또 다른 이치가 존재한다는 것. 내게 있어서 그런 경험은 아마 군산으로 이사를 오게 된 일일 것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한꺼번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던 거다. 직장인에서 자영업자로. 태어나 서울, 경기에만 살았던 수도권 거주자에서 지방민으로. 가게를 군산에 내기로 결정하면서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이제 겨우 9개월 남짓 살고 있을 뿐이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느낀 점들이 참 많다. 서울에만 살았다면 평생 몰랐었을 것들에 대해.


서울 사람은 대부분 본인을 서울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소속감 자체가 다른 지방에 비해 거의 없는 편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들이 서울 위주로 돌아가고 제공되고 진행되기 때문에 모든 것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너무 당연시된다. 아니, 당연하다고 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냥 원래 그런 것, 자연스러운 것 정도로 일부러 따졌을 때 생각될 뿐이다. 평생을 지방에 사셨던 분들이 들으면 코웃음에 빅웃음까지 들 이야기지만, 이제 겨우 반년 넘게 산 내 입장에서만 봐도, 서울, 수도권 외 지역에 산다는 건 자연스럽게 어떤 소속감으로 연결이 된다. 그 지방을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가끔 지방으로 여행 갔을 때 숙소에서 티비를 보면 지역 뉴스를 볼 때가 있는데 그때는 단 한 번도 집중해서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질감이 들어서 바로 전국방송으로 채널을 돌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지방에 살게 된 이후로는 지역 뉴스를 일부러 찾아보게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편성 시간을 기다리게 됐다. 아직 애정이라고 까지는 말 못 하겠지만 관심이 드는 건 분명하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어떤 일이 있는지 수도권에 살 때보다 훨씬 더 예민하게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수도권에서 살면서 아주 가깝게 많은 것들을 누리던 것에 비하자면 직접적으로 불편한 것들이 훨씬 더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정반대로 전혀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된 경우도 많다. 입장이 달라져서 라고 해야 할까. 전혀 다른 시각으로 동일한 사안을 바라보게 되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되고, 예전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가장 놀라운 건, 요새도 매일매일 깜짝깜짝 놀랄 정도인 건 서울 밖에도 정말 예쁘고 아름답고, 멋지고, 궁금한 공간들이 많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네책방이나 카페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서울 외 지방에도 이렇게 많은 멋진 공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내가 지방에 오고 난 이후에서였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직까지도 문화 공급에 있어서는 서울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볼 수 있겠으나, 적어도 퀄리티 면에서는 더 이상 지방이기 때문에 아쉬운 경우는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확실히 시대가 달라진 탓도 있겠고, 이런 공간들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달라진 탓일 거다. 굳이 서울에서만 할 필요가 없다는 걸 느낀 이들이 더 자신의 꿈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지방을 선택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게 되었고, 그 결과 '와, 이런 곳이 여기에 있다니!'싶은 발견을 자주 하게 되었다.


SNS를 통해 검색을 하다 보면 정말 멋진 공간이 있어 '와, 여긴 도쿄 어디쯤인가 보다'하며 체크를 하려고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지방일 때가 많다 (그냥 '있다'가 아니라 '많다'는게 포인트다). 서울에만 살았다면 이런 공간이 지방에 있다는 걸 보고도 '의외네?' 하는 선에서 멈추거나, 아예 발견조차 못했을지 모른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같은 기초적인 발견이 아니라 '이젠 더 이상 지리적 위치에 제한받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구나'라는 걸 깨달을 때가 많다.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가 선택한 곳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많이 배우게 된다. 물론 서울과 수도권에 자리 잡은 이들도 마찬가지다. 지방에 터를 잡으며 깨닫게 된 건 일종의 사고의 전환 혹은 확장이라고 해야겠다. 서울 중심에서 서울과 서울 외로 나누는 것을 넘어서서, 전국을 그냥 하나의 공간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아마 나처럼 지방에 자리 잡은 지 얼마 안 된 터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군산'은 내게 있어 마치 나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처럼 들린다. 누군가 군산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티비 등에서 군산에 대해 나올 때면 마치 내 얘기를 하는 것처럼 귀를 쫑긋하게 된다. 벌써 그렇게 되었다. 서울에 살 땐 전혀 겪어보지 못한 느낌이다. 서교동 산다고, 광명 산다고 관련 뉴스가 나오거나 지명이 호명될 때 특별히 나를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은 받은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최근 가장 잘한 일은 역시 지방을 선택한 일이다. 사고가 확실히 한 발 더 넓어지고 트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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