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쉬타카 May 22. 2019

51. 돌아오지 않는 CS의 달인

그는 더 이상 없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재입고된 인기 아이템 덕에 하루 종일 DM 메시지를 체크하고 답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는 본격적인 온라인 쇼핑몰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누구나 다 쉽게 만드는 스토어팜도 만들지 않았기에, 택배로 발송하는 주문은 모두 SNS 다이렉트 메시지를 통해서만 받고 있다. 


동시에 여러 명이 한꺼번에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하고, 그 가운데 소수는 또 실제 구매를 하고 하는 등의 안내를 하다 보니 문득 예전 회사 다닐 때 하던 CS가 떠올랐다. 나는 이른바 운영팀의 팀장으로 고객 대응 관련한 일을 오래 그리고 주도적으로 해왔었는데, 그땐 나름 자부심이 있었다. CS에 대해 잘 모르거나 회사의 경영진은 고객 응대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더 심하게 말하자면 아무나로 대체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많이들 생각하는데,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짧게 정리하자면 영혼을 담은 CS는 분명 의미가 있고, 그 의미는 고객에게 좋은 경험으로 전달되는 것은 물론, 회사에도 이 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였다. 


실제로 수년간을 저런 모토로 열심히 일했고 또 많은 직원들에게 교육도 했었다. 그때는 그런 것이 좋았다. 힘들다기보다는 진짜로 희열이 있었다. 이를 테면 고객이 게시판에 새벽 시간에 안 보겠지 싶어 문의 글을 남겼는데, 거의 실시간으로 답변을 정성껏 해주는 거다. 그 외에도 이른바 업무 외 시간이라 할 수 있는 시간들에도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으면 최대한 빠르고 정확한 답변을 했고, 단순 속도뿐만이 아니라 퀄리티에 있어서도 매번 정성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답변과 처리를 하는 것에 나 스스로가 더 만족했다.


하지만 정작 내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는 절대 이런 식의 고객 응대는 하지 않는다. 이건 회사 후기에 다른 직원들에게 했던 말이기도 한데, 끝까지 같은 속도와 정성을 쏟을 수 없다면 처음부터 평범한 수준, 하지만 전혀 문제는 되지 않는 정도로 응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맞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응대를 하는 직원도 응대를 받는 고객도 서로 열정적이고 감동하지만, 그 강도가 커질수록 그 높아진 기대치를 조금이라도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돌아오는 실망과 질책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몇 번 새벽 시간에 답변을 하게 되면 나중에는 새벽 시간에 자연스럽게 질문을 올리게 되고, 영업시간이 되기까지 답변이 달리지 않을 때 한참이나 답변이 없었다는 불만이 생기게 된다. 실제로 수많은 경우가 그렇다.


그래서 끝까지 그 정도를 유지할 수 없다면 처음부터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맞다. 오해가 있을 까 봐 단어를 더 정확히 하자면, 넘치는 정성을 쏟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딱 필요로 하는 정도로 정상적인 범위 내에서 고객 응대를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서로에게 덜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요새도 가끔은 새벽에 메시지로 문의가 올 때면 확 답변해 버릴까 싶다가 '아니지!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네!' 하며 그만둘 때가 많다. 바로 답변을 해 버리면 제일 편한 건 사실 고객이기보다는 당장 나 자신이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견디기가 답답하더라도 영업시간이 될 때까지 끝까지 참는다 (물론 심각한 CS라면 바로 답변해야겠지만 다행히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지금은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해왔기 때문에 아무도 답변이 늦거나, 밤늦은 시간 답변이 없다고 문제 삼지 않는다. 


아, CS의 달인이었던 그는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것일까?

아마도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52. 의외로 아찔한 롤러코스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