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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Aug 13. 2019

75. 나의 아픈 손가락

난 너희들을 항상 신경 쓴단다

우리 같은 작은 가게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첫 째도 재고, 둘 째도 재고다. 규모의 여유가 있어서 넉넉하게 쌓아두고 맘 편하게 판매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작은 가게일수록 재고는 그 자체로 직접적인 비용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재고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하느냐가 결국 가게 운영에 핵심이라고 까지 말할 수 있다.


전에도 한 번 얘기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래도 재고 대비 판매되는 품목의 비율이 좋은 편이다. 즉, 매입한 아이템의 판매 확률 (적중률)이 제법 높은 편이다. 이미 취급하는 아이템의 수가 적지 않고 앞으로 점점 더 많아질수록 이 확률은 떨어지겠지만 마치 류현진 선수가 가장 신경 쓰는 지표가 승수가 아닌 방어율인 것처럼, 나도 전체 매출만큼이나 이 적중률을 지키는 데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가끔씩 규모가 커져서 시원시원하게 품목당 몇 백개씩 주문도 하고 (예전 온라인 쇼핑몰 초기 직원으로 일하며 주저 없이 주문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물론 끝은 좋지 않았음) 그래서 품절될 걱정도 안 하고 쌓여가는 재고에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싶은 꿈도 꾸지만, '꿈'이라고 얘기한 것처럼 아마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시네마 스토어라는 타이트한 업종을 선택한 이상은.


그렇게 자평하기에 적중률도 좋은 편이고 타이트하게 재고를 가져가는 편임에도 가끔씩 예상(?)과는 달리 잘 팔리지 않아 점점 재고가 되어 가는 아이템들이 있다. 아주 가끔 최소 주문수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많은 양을 주문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가 원하는 만큼 주문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재고는 내 의도(?)에 맞춰 주문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의도에서 벗어나는 제품들이 바로 그렇다. 가끔은 나도 반신반의하면서 주문을 하는 아이템들도 있다. 이를 테면 나는 확신이 없는데 조사를 해보면 시장에서는 수요가 있는 아이템들이다. 이런 경우야 안 팔려도 속으로 그럴 수 있겠다 싶은데, 가끔 확실한 자신감을 가지고 주문한 아이템들이 한참이나 손님 손에 들려 집으로 가지 않을 땐 (정말로) 마음이 쓰리다.


단순히 재고가 쌓여서 점점 부담이 되겠구나.. 싶은 생각에 쓰린 것이 아니라 마치 내 자식 마냥 어서 더 큰 세계로(?) 훌훌 떠나지 못하는 상황이 미안하기까지 한 마음에 가슴이 쿡쿡 쓰리곤 한다. 가게를 1년 정도 가까이하다 보니 이제 이 공간 안에도 그런 아픈 손가락이 몇 개 생겼다. 나는 이 아픈 손가락을 어떻게든 팔아보려고 전시 위치도 여기저기로 바꿔보고 소개 문구를 직접 써서 안내하기도 하는 등 더 많은 정성을 쏟아보는데, 그 정성만큼 바로 판매로 이어지지는 않아 항상 마음이 쓰인다.


그러다가도 아주 가끔 이런 아이템이 드디어 한 개라도 판매될 때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다. 속으로 '암, 그렇지 그렇고 말고. 드디어 가치를 알아봐 주시는 분이 방문해 주셨군'하며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엇그제도 나의 아픈 손가락 중 하나가 아주 오랜만에 판매되었다. 다들 어서 좋은 주인 만나 내 곁에서 독립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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